/ Un-lasting Eternity
성공했다.
린다는 제 앞에 떠 있는 커다란 홀로그램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동그랬다. 빗금으로 뭍과 물을 구분해 둔 그것은 하나의 행성처럼 보였다. 손을 들어 홀로그램을 툭 건드리면 그것은 린다의 손가락을 따라 핑그르르 돌았다. 팽이처럼, 그러나 그보다는 느린 속도로 사방에 푸른 빛을 뿌리며 자전하는 홀로그램을 응시하며 린다는 다시금 중얼거렸다. 성공했어.
세계 구축 프로토콜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시작했는지는 린다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시작은 단조로웠다. 마침, 시간이 남았고, 린다는 권태로웠으며, 그의 눈앞에는 영원인들의 세계를 구축할 때 사용했던 세계 구축 프로토콜이 존재했다. 그것은 생명이 순환할 수 있는 객체의 별을 탄생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돌려주는 일종의 계산 프로그램이었으며 운이 좋게도 린다는 프로토콜의 작동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심심풀이로 건드린 것이라고 린다는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자각으로부터 눈 돌릴 수는 없다. 무료했던 건 첫날이었다. 이튿날에도 린다는 연구실에 와 세계 구축 프로토콜을 건드렸다. 연이은 실패에 묘한 욕망을, 승부욕과 닮았고 절박함과 엇비슷한 무언가를 느끼며 계산을 이어 나갔다. 린다가 구축한 별에선 사람들이 물이 부족해서 죽고 대지가 메말라 죽고 들불이 번져 죽고 전염병이 돌아 죽었다. 떼거리의 시체를 양산한 사흗날 밤 린다는 세계 구축 프로토콜 완성도가 구십구 점 팔구 퍼센트라는 수치를 맞닥뜨렸다.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사흗날에 그는 별 하나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애당초 린다는 왜 세계 구축 프로토콜에 손을 댔는가? 첫째 날과 둘째 날 끈질긴 실패에 포기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이 느닷없는 간절함은 대관절 어디에서 왔나? 린다는 질문했고 답을 찾지 못했다. 하다 못한 린다는 자신이 완성한 세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일정한 방향과 일정한 속도로 자전하고 있는 푸른 홀로그램 별, 화면으로 설정한 계절은 겨울이나 그에게는 어떠한 추위도 와닿지 않는다…….
“완성했군.”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린다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별을 등지며 린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문간에 기대어 선 사람이 있었다. 어김없이 칼릭스였다. 흥미롭다는 눈으로 린다와 별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발을 끌며 걸어왔다. 린다를 지나쳐 프로토콜 조종간을 조작하더니 곧 떠오른 정보값들을 차근히 읽어내렸다. 기계적인 몸짓에 웃음기 없는 낯이지만 그 눈동자에만큼은 희미한 흥미가 깃들어 있었다.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배경에 나직이 깔린다. 짙푸른 홀로그램의 잔광이 그들 위로 쏟아진다. 일렉트로프 벽면을 타고 올라오는 찌릿찌릿한 냉기에 손을 천천히 그러쥐며 린다가 말했다.
“그래.”
“완성도가 제법 높아. 단시간 내에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말 실존하는 것만 같군.”
“…….”
“떠나고 싶어?”
칼릭스가 불현듯 물었다. 린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칼릭스는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린다가 볼 수 있는 건 그의 뒤통수뿐이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린다는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떠나고 싶냐니. 그게 무슨 의미야. 묻고 싶었으나 질문은 적절한 답이 될 수 없었다. 속절없는 피로감을 느낀 건 그때였다. 망막에 진득하게 눌어붙는 무게가 있었다. 찌푸린 미간을 손끝으로 지그시 내리눌렀다. 희미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우주로…….”
“그래, 우주로.”
잠시 뜸을 들인 린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칼릭스의 곁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오랫동안 별을 올려다보았다. 꼬박 사흘이 걸린 제 구십구 점 팔구 퍼센트짜리 결과물이 시선 끝에 걸렸다. 손끝이 저렸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사백여 년 동안 몸이 이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또 오랜만이었다. 알 수 없는 질량에 짓눌리며 린다는 불현듯 과거의 제 말을 떠올렸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던. 갈 거라면 불변하는 영원으로, 무한이 감히 모사한 곳으로, 그러니까 다른 곳도 아닌 우주로 떠나고 싶다고.
느닷없는 충동과 함께 린다는 홀로그램 확장 버튼을 눌렀다.
홀로그램에서부터 터져 나온 빛이 시리게 번쩍였다. 좁은 연구실이 푸른 휘광으로 가득 찼다. 아, 하고 짧게 탄식하며 린다가 눈을 가렸다. 비틀거리는 그를 누군가가 붙들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칼릭스일 것이다.
기실 이곳엔 그들 둘밖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오직 둘만을 위해 구축된 세계니까.
빛이 잦아들었을 때 그들은 천천히 눈을 떴다. 벽면을 가득 채운 홀로그램 탓에 린다는 자신이 정말로 낯선 별에 발 디디고 서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다다른 별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춥고, 메마르고, 척박했다. 적요했고 단조로웠다. 연구실 내부에 들어차 있던 가구들마저 녹아 사라진 듯 보이지 않았다. 시야에 펼쳐진 건 광활한 지평선이었다. 하늘과 맞닿은 회색 들판이 아득히 멀리 이어져 있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과 흩뿌려진 눈을 맞으며 웃자란 풀들이 박자에 맞추어 흔들렸다. 홀로그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린다의 입이 벌어졌다. 잇새에서 숨이 흘러나왔다. 호흡이 하얗게 일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시감을 느끼며 린다는 고개를 돌렸다. 심장을 관통하는 기묘한 자유, 이 아득한 도피감을 너 또한 느끼고 있냐고 질문하기 위해서.
그러나 눈이 마주친다. 린다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기로 한다.
칼릭스는 별이 아닌 그를 보고 있었다.
—홀로그램 확장을 종료합니다.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금 빛이 번진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그들은 다시 연구실이었다. 강철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그들을 감쌌다. 느리게 자전하는 홀로그램 행성의 푸른 잔광에 뺨을 적시며 그들은 서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린다는 사흗날 탄생한 완성도 구십구 점 팔구 퍼센트의 별을 생각했다. 자신을 이끌었던 해방감 혹은 절박함과 거기서부터 재탄생했던 또는 부활했던 제 의지를 천천히 되짚었다. 그러며 칼릭스를, 그의 눈을, 단둘만을 위해 예비된 별이 아닌 린다 자신을 향하던 고요한 응시를 해부하려 애썼다.
“떠나고 싶다며.”
그때 문득 칼릭스가 말했다. 한 걸음 다가선 그가 지그시 린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시험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떠날래?”
그 순간 린다는 사흘 동안 세계 구축 프로토콜 속에서 그가 죽였던 이지 없는 존재들을 떠올렸다. 정교하게 설계되어 생명 반응을 모사하는 것들, 이름 없는 것들의 시체, 거듭된 삭제와 조정의 기록에 남았을 그들의 데이터 찌꺼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린다는 고개를 저었다.
칼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연구실을 찾았을 때 린다는 자신의 사흗날 프로토콜의 홀로그램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프로토콜에 접속해 조정한 이니셜 C의 흔적과 티끌 없는 완성도 일백 퍼센트를 보았다. 사흗날 이전의 기록이 말끔하게 지워져 있는 것까지 두 눈에 새긴 이후 린다는 망설임 없이 세계를 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