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블링 프루스트
네가 실패하기를 바랄게.
환청처럼 귓가에 달라붙는 말이 있다. 흔한 경험은 아니다. 적어도 A에게는 그렇다.
크지 않은 일인용 캡슐 우주선은 창문조차 비좁았다. 손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반절이 덮였다. 온도 차이로 인해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 너머 외우주는 어두침침했다. 머지않았어, 하고 목소리가 속삭였다. 무엇을 일컫는지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닥터 A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명확히 알았으므로.
단지 그래서 더욱 의뭉스럽다. 후회나 망설임과 닮은, 그러나 A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끈덕지게 그를 따라붙은 것은. 광속을 뛰어넘은 속도로 성간 비행은 엿새째임에도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라는 건 어느 정도의 집념으로 뭉쳤는지 정확히 집계 낼 수 없음에 탄복하며 A는 시선을 돌렸다.
멀리 광원이 있었다. 기실 저것은 별, 그러니까 항성이 아닌 행성이고 저 빛은 별의 표면을 덮은 미끈미끈한 점액질로 추정되는 성분이 가장 가까운 시리우스 항성의 빛을 난반사하여 나타난 결과지만. 그런 번잡한 속내를 전부 자르고 첫인상을 적어 내려간다면 A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별은 빛나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A는 차분히 손을 뗐다. 배 깊은 곳에서 느글거리는 열망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고서 숨을 고른다. 침착한 손놀림으로, 그러나 얕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는 펜과 공책을 집어 들었다. 엿새 동안 그 자기 모습을 낱낱이 적어 내려간 기록 다음 장에 A는 이렇게 적었다. ‘별은 빛나고 있었다. 행성을 덮은 점액질에 계면활성제가 포함되었다는 나의 가설을 뒷받침해 줄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공책을 덮으며 그는 반추했다.
즉흥적인 계획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대담했고 나쁘게 혹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충동적이었다. 성간 비행이 특별히 뽑힌 소수 정예만을 위한 것에서 열성적인 연구원들을 위한 수단까지 내려온 시기였다. 이 시기 지구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별을 향해 쏘아 올렸다. 자진하여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간 비행이라는 특이점을 꼽아 기나긴 출장을 꺼리는 이들도 많았다.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이 성간 비행은, 그렇기에 종종 상급자에게 밉보인 하급자를 향한 매서운 수단이 되기도 했다.
닥터 A. 어쩌고저쩌고 연구소의 어쩌고저쩌고 부서 소속 일개 연구원. 지금 상황에 어느 연구소 어느 부서라고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무심한 낯으로 빼곡히 채운 공책을 다음 장으로 넘기며 A는 펜을 움직이는 손에 조금 더 속도를 붙였다. 그는 지구에,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 있는 내내 새로운 별을 찾아 정리하여 넘기는 업무를 도맡았다. 도중 종종 다른 부서, 이를테면 우주선 부품을 제작한다거나 하는 곳에 불려 가기도 했다. 문제라면 그게 문제였을 것이다. A는 단순 정리 업무를 맡기엔 지나치게 유능했고, 그를 이용하고자 한 터줏대감은 예상한 것보다 멍청했다.
일은 단계적으로 벌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는 일인용 캡슐 우주선에 올랐다. 출장을 빙자한 좌천이었다.
터줏대감은 터줏대감이라거나 괜히 들이받았다고 후회한다거나 하는 실속 없는 일에 심력을 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껍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캡슐 우주선으로 종용하는 상급자를 바라보며 잉크로 검게 물든 손끝을 까딱였고, 눈살을 찌푸리는 그를 향해 말했다. 목적지는 제가 정하겠다고. 거절당했지만 A는 굴하지 않았다. 통보한 것으로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 출발 다섯 시간 만에 시스템을 해킹해 목적지를 바꾸었다.
그렇게, 지금.
느리게 가까워지는 별이 망막에 맺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행성은 점진적으로 가까워졌다. 삑삑거리는 시스템 소음은 점차 멀어졌다. 임의로 조작된 중력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기시감 속에서, 희붐한 빛을 반사하는 별을 바라보며 A는 불현듯 떠올렸다. 당신은 내게 실패하라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출장은 상대를 절벽으로 내모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사내 암투에서 패배한 몇몇 연구원은 이런 식으로 출장을 나섰다가 실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사망 신고 절차를 밟았다. A에게 내려진 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오독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단지, 하고 A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마치 내가 삼 평짜리 캡슐 속에서 벌일 불법 행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닥터 A는 그 순간 B 쉘비스를 떠올렸다.
만류한 사람이었다. 목적지를 스스로 설정하겠다는 포부 넘치는 발언이 면전에서 까인 직후, 상급자가 돌아서자마자 B는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숨기지 않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A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손목을 부여잡고 구석으로 들어간 B는 대뜸 물었다. 갈 거지. 거짓말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므로, 그러니까, 대답의 여하에 따라 그의 선택이 갈리지 않으리라 예상했으므로 A는 대답했다. 그런데요.
거기서 아무도 못 찾을 거라고 B는 말했다.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본디 예상한 경로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라고. 성간 비행이 어느 정도 대중화를 마쳤대도 실을 수 있는 연료는 한정적이니까, 그러니까. 망설이다가 B는 느리게 말을 맺었다. 돌아오지도 못하잖아. 거기서 죽어버리게?
A는 할 말이 많았다. 죽지 않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B는 믿는 것 같지 않았다.
많은 대화가 오갔다. 헐뜯음을 빙자한 설득이었다. 자신을 말리는 B를 향해 A는 거침없이 생각을 늘어놓았다. 겉보기에 표면이 점액질로 뒤덮여 있고 그것을 구성하는 분자가 꼭 계면활성제 같았다고. 정말이라고. 그러니까, B, 그 별은 비눗방울로 가득 찬 행성일 거란 말이죠.
B는 믿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웃었고, 머리를 한번 젖혀 넘겼으며, 곧 A를 바라보지 않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야. 네가 실패하기를 바랄게.
B의 마지막 표정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이것은 망각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운 것 같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며 A는 레버를 당겼다. 연료를 마지막으로 불태워 속도를 붙였다. 거의 부유하는 듯하던 캡슐 우주선에 가속이 붙었다. 행성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질수록 압력에 눌린 몸이 덜컹거렸다. 회상도 함께 흔들렸다.
떠나기 전 B는 A에게 선물을 주었다. 거품이 잘 나는 비누였다. A는 거절했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캡슐 우주선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점액질로 뒤덮인, 하얗고 끈적한 행성이었다. 착지의 여파로 외벽이 일부 깨졌다는 주의보가 떴다. A는 붉게 점멸하는 등을 뒤로 하고서 우주복을 껴입었다. 산소를 충분히 채운 탱크를 등에 메고 고글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다다른 별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 숨을 들이켜는 순간 A는 불현듯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비누 냄새. 비누 냄새였다. B가 주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블루베리 향이 희미하게 코를 찌르는 찰나에 A가 중얼거렸다.
네가 실패하기를 바란다던 말과 거품이 잘 나는 비누. 그를 썰물처럼 쓸어가는, 밀물이 데려온 무언가가…….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