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류자들
00.
당신이어야 해.
01.
미국 표준 시각 새벽 세 시 사십이 분, 외우주 한복판에서 인류 최후의 과학자 사망. 그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선고를 내리기까지 쉰네 번의 교신 시도와 스물두 번의 무의미한 수리, 세 번의 발작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삼십육 개월의 갈피 잃은 항해가 있었다.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육중한 사명이나 자신을 증명하겠다는 온갖 부담을 지고 나섰던 임무였다. 실상 우주에 나오니 그런 것들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우주 공간이 선사하는 환상적인 무중력 덕분에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그것들을 제멋대로 유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찜찜한 쾌감까지 느꼈다. 그가 부여받았던 임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그는 조소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그에게 예비되었던 운명마저 무중력 상태에 떠밀려 둥둥 떠내려가고 만 것일 테다.
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태양열을 차단하는 페트로바선과 그것을 이루는 아스트로파지가 지구 생명들을 절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외계 침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대비책도 부실했다. 높으신 분들은 대체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무기를 실은 우주선을 몰고 와 별을 쑥대밭으로 만들리라 생각한 듯했다. 어리석고 비루한 상상력이었다.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들밖에 없다는 양 인류는 거침없이 선택을 내렸다. 그들은 유능한 과학자들을 쓸어모아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페트로바선을 역추적해 그들이 지나온 궤적을 게걸스럽게 뒤따랐다. 아스트로파지가 거친 모든 별은 황폐했다. 고행 끝에 과학자들은 간신히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오로지 하나만이 살아남았다. 아스트로파지가 파괴하지 못한 별은 단 하나뿐이었다. 결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우주에 나갈 파일럿과 기술자와 과학자가 하나씩 뽑혔다. 그들을 실은 우주선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지구를 박찼다. 희망을 쏘아 보냈다고 매스컴은 연이어 떠들어댔지만 그는 그걸 몰랐고, 뒤늦게 자신들이 지구의 영웅이니 뭐니 하고 추대되었다는 사실을 듣고서 본인이 혼수상태였다는 사실에 약간이나마 안도했다.
단지 그게 실책이었다. 혼수상태. 광속으로 이동하는 우주선이었지만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걸렸으므로, 탑승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내린 별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깨어나지 못하리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던 듯했다. 그가 깨어났을 때 파일럿과 기술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의 기상을 반기고 열여섯 시간 후에 선체 총괄 AI는 돌연 과부하 상태에 빠지더니 깨어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는 AI를 주먹으로 몇 번 두드려보았지만 변화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는데, 그가 파일럿과 기술자와 선체 총괄 AI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자신에게는 그들의 분야에 관한 지식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02.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절망했다.
두 가지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첫째. 그는 선체 총괄 AI가 어째서 과부하에 이르렀는지 알게 되었다. 목표 궤도에 다다랐음에도 탑승자들이 기상하지 않자 내린 독단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수많은 가능성을 연산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능숙하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AI는 결국 자신에게 오류가 발생했다는 엉뚱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게 얼마나 기이한 결말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로 AI는 제게 주어진 사명, 그러니까 자신에게 발생한 오류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긴 계산 끝에 AI는 어쩌면 이곳이 목표 지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했고, 목적지였던 타우 세티 궤도를 벗어나 연고 없는 항해를 시작했다. 기표 잃은 유영 속에서 다다를 곳을 물색하던 AI가 끝내 과부하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궤도를 벗어났다면 돌아가야 했다. 따라서 그는 지구와 교신을 시도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지구에서 명맥을 잇고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계획은 단순했다. 지구와 교신하고, 임무가 실패했음을 알리며, 복귀를 통보한다는 것이었다.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더욱 급박해지겠으나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따라서 그는 지구와 통신을 시도하고자 했다. 계기판에서 교신기를 찾아 영상을 보냈고, 한참 동안 기다렸다. 대기에만 이틀을 허비한 이후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휴지통에서 발견한 지구에서 온 마지막 영상을 재생했고, 곧 할 말을 잃었다. 깨진 화면은 완전히 무너진 잔해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간신히 보이는 풍경에는 모포에 덮인 모르는 얼굴과 광폭하게 몰아치는 눈보라가 있었다. 고글에 가린 진갈색 눈동자가 화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외쳤다.
—거기 뭐 있어?
—아니. 웬 카메라. 그리고 해골.
—젠장, 인류 최후의 연구소니 뭐니 하던 것들 다 튀어나오라 해! 아무것도 없잖아, 빌어먹을!
깡통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끝이었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그는 마지막 영상이 송부된 시기를 찾아보았다. 일 년도 전이었다.
그는 유능한 과학자였고, 그의 머리는 특출나게 비상했으며, 따라서 그에게 어떤 연산은 숨 쉬듯 이루어졌다. 그는 우주선과 탑승자들이 표류한 시간은 지구가 영구동토층으로 완전히 뒤덮이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계산해 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 영상 속 사람, 자신을 들여다보던 진갈색 눈동자를 지닌 이 사람조차도 지금은 죽어 없을 것이다. 연구소가 무너졌다면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존재 또한 없을 것이다. 아니, 애당초, 통째로 얼어붙은 별에서 생존자가 있을 확률 자체가 요원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가 이 우주에서 표류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전송 시스템 자체가 고장이 난 것이 아닌지 의심했고, 쉰네 번의 교신을 시도했으며, 교신기를 스물두 번 수리했고, 그러는 와중 발작을 일으켜 세 번 기절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서, 아스트로파지를 이용한 연료조차 석 달 전부터 바닥나기 일보 직전인지라 이제는 완전히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중에 깨달은 후, 그는 결론을 지었다. 그는 죽었다.
조종대에 반쯤 기대어 누운 채로 그는 느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심장이 가쁘게 뛰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만은 고요했다. 그는 꼭 유체 이탈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하는 실없는 상상이나 하면서 눈을 깜빡였다. 사방을 뒤덮은 계기판과 조종간, 화면과 거기에 찍혀 점멸하는 좌표 따위가 오감을 자극하는 탓에 끝도 없이 피곤했다. 이대로 그냥 잠들까. 도로 잠들어버릴까.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는 행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에게 예비된 길은 그가 싫어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정처 없는 우주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무중력, 무의미, 무생명 사이에서 허덕이다 맞이하는 영원불멸의 소실.
몹시 피곤했다.
03.
쿵.
그때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는 이것이 연료 부족으로 인한 중력 이상이 일으킨 사소한 사고겠거니 했다. 따라서 드러누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여긴 무중력의 우주였으나 그는 어째서인지 자신을 짓누르는 기묘한 압력을 느꼈다. 임의로 설정해 둔 중력과는 결이 맞지 않았다. 정체 모를 힘에 눌리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모든 감각을 차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시답잖게 했다.
얼마 후 다시 소리가 들렸다. 쿵.
그는 어쩌면 자신이 오판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소하다는 단어를 문장에서 제거했다. 중력 이상이 일으킨 사고만이 남았다.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았지만 뭐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봐야 이른 폭발이나 느린 폭발이었다. 모든 건 조만간, 그러니까, 지구상의 천문학적 개념을 도입하자면 조년과 만년 간에 필연적으로 일어날 터였다. 게다가 그는 이미 죽었으므로 조년과 만년 간에 일어날 우주선 폭발 같은 데에 구태여 쓸 여력 같은 건 없었다. 당장의 사고에 별다른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 번째 소리가 났다. 쿵.
그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자 충분히 좁혀진 거리 덕분에 이 소음이 무언가를 두드릴 때 나는 진동과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소리의 근원지를 보았다. 창문으로 이어진 복도 쪽이었다. 설마, 하고 그는 조금 더 일어나 앉았다. 살아 있었던 걸까? 파일럿과 기술자 중 하나가? 하지만 그들이 살아난들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기나 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뒤따랐다. 게다가, 그는 비록 의사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유능했으므로, 사람의 맥이 뛰지 않는다거나 사후 경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느냐 정도는 알았다. 그들은 명명백백히 죽어 있었는데.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건가. 그렇다면 우주는 무죽음의 영역이기도 한 건가. 실없는 생각이나 할 때 다시, 쿵. 흔들흔들. 빠끔빠끔.
그러더니 기막힌 우연처럼 눈이 마주쳤다.
04.
“귀환은?”
“—.”
“죽음은?”
“—.”
“표류는 어때.”
“—, ——.”
“잠깐, 이해하지 못했어.”
“—.”
“좋아.”
05.
최초의 조우는 별개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그는 선체 주위를 뱅뱅 맴도는 외계인을 우주선 안으로 들였다. 약간은 미친 짓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뭐,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선체 선장이자 최고 권력자는 그였다. 독단적인 결정에 반발할 사람도, 분노하거나 염려할 탑승객도 없었다. 대신 사출구를 열기 전 그는 외계인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는 방호벽 하나를 내렸다. 본래는 외부 관찰 용도로 개발된 특수 유리였지만 방어벽으로 사용하기에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사출구가 열리자 새까만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잠시간 서서 기다렸다. 처음에는 속으로 초를 셌지만 백오십쯤 셌을 때 관두었다. 외계인은 곧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소간 끈질긴 마음으로 서 있던 그가 단념하기 일보 직전, 사출구 위쪽에서 흐늘흐늘한 머리카락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다. 그다음은 창백한 손가락이었다. 사출구 문을 붙잡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외계인은 그를 발견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고, 곧 조심스럽고 느린 몸짓으로 선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바닥에 발을 딛고서 외계인은 몸을 덮은 흰 원피스 같은 옷을 두어 번 매만졌다. 그리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도망칠 생각이 없다고, 눈이 말했다. 망설이던 그는 열린 해치 입구를 천천히 닫았다. 필요하다면 외계인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수 있을 만큼 굼벵이 같은 속도로.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고 외계인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장 십여 분 만이었다.
06.
그는 마침내 노트북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이제 말해봐.”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났다. 음성 볼륨을 조율하면서 그는 새삼 요즘 TTS가 참 잘 나왔다는 생각이나 했다.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나머지 결정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야 했지만. 그래도 뭐, 고심한 보람은 있었다. 목소리는 ‘그’와 잘 어울렸다.
“와, 신기하다. 이거 전부, —, ——, —.”
“잠깐, 천천히. 아직 데이터가 부족해서 너무 빠르게 말하면 인식을 못 해.”
“아, 그렇구나. 그럼 이렇게, 느리게, 끊어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그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상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인류를 닮은 외계인이라 그런지 웃는 방식이나 모습이 제법 유사했다. 외계인이 사람과 이렇게 닮았다니, 공상과학 작가들이 알면 까무러치겠군. 인류와 외계인의 첫 교류가 성우의 TTS를 사용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더욱. 이 역사적인 만남을 알릴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조금 유감스럽긴 했다. 외계인은 인류와 엇비슷한 신체와 외모를 가졌지만 피부가 핏기 없이 창백해 거의 대리석 같았다. 게다가 눈동자에 박힌 테 덕분에 동공과 홍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차이점을 제외하고선 그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노트북과 소리 수집 프로그램, 그리고 TTS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명제를 깨달아버린 탓이었다. 처음에는 문장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한가득이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성우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끊기는 일은 드물어졌다. 입력되는 단어가 늘어갈수록 외계인이 묘사하는 세계는 더욱 자세해졌다. 그것은 생생함이나 생동감이 넘치게 되는 일과는 조금 달랐다. 외계인은 때때로 웃거나 고개를 숙였고 그럴 때마다 인간의 머리칼을 닮은 기관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벽 너머의 침침한 전등, 빛이 비치는 깊은 그림자, 어둠을 따라 굴곡진 얼굴의 곡선, 그 끝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은 놀라우리만치 적막했고 그의 것과 닮아 있었다.
외계인의 별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외계인의 별도,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동족을 우주로 쏘아 보냈다. 인류가 그러했듯이. 그들은 인류와 다르게 잠깐이라면 우주를 유영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하나의 커다란 본부를 두고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돌아오기를 거듭했다고 했다. 그 본부를 묘사하면서 외계인은 눈을 반짝였다. 정말 크고 아름다워, 그 —는, 미안, 지금 들리지 않았지, 그렇지만 이건 무슨 말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니 그냥 범선이라고 할게, 그 범선은 우리 별의 자랑이었거든……. 외계인이 눈을 반짝였고 그는 입을 열었다. 뾰족한 마음이 혀끝에서 대롱거렸다.
“지금은?”
“응?”
“너희 범선 말이야. 지금은 어때.”
외계인은 웃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외계인도 인류와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방법으로 미소를 사용하는 듯했다. 적어도 외계인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으므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외계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렇군.”
“사고였어. 아무도 의도하지는 않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비상 탈출용 —을, 그러니까 작은 우주선을 타고 도망치는 것밖에 없었어. 정신이 없어서 흩어졌는데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아.”
외계인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잠시,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인류를 닮은 외계인의 낯에 텁텁한 그림자가 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전등이 만들어내는 응달보다도 짙고 어두웠으며 탁했다. 콧대와 입가를 타고 얼굴 반을 뒤덮고는 천천히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자리에 선 채로 녹아내리는 것 같기도, 검은 형체 자체로 굳어가는 것도 같았다.
“돌아가고 싶어?”
그는 물었고, 직후 후회했다. 입 밖으로 꺼내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있었다. 이것도 같은 종류였다. 비단 외계인을 걱정해서만은 아니었다. 말이란 건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상대를 향해 건네는 것만으로도 칼날이 제게 향했다. 단어는 과거를 연상하게 했고 문장은 그 드문드문한 반추를 조립했다. 그가 입술을 길게 삼켜 무는 것과 동시에, 언젠가 들었던 혼잣말을 떨치려 고개를 내젓는 것과 동시에, 외계인이 말했다.
“응.”
00.
나가서 죽는 거야. 이 임무의 핵심은 거기에 있어. 죽음. 광활한 우주 속의 티끌 같은 죽음.
그런 죽음이라면…….
07.
“넌 어때?”
때마침 외계인이 물었다. 그는 과거의 끈끈한 점액질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왔다. 언제 숙였는지도 모를 고개를 들자 외계인이 훌쩍 가까워져 있었다. 티끌 하나 없는 창백한 피부를 눈으로 천천히 훑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어떻냐니.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보통 사연은 아닐 것 같은걸.”
“글쎄.”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하지 않아도 돼. 강요하려는 건 아니야.”
그거 잘됐네, 나는 말할 마음이 없거든, 하려던 순간이었다. 목이 멨다. 급작스러운 갈증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그가 목울대를 지그시 눌렀다. 물기가 바싹 마른 것처럼 성대가 갈라졌다. 마른침을 삼켜보아도 턱없이 부족했다. 허. 그가 헛웃음을 터트리자 외계인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 그러냐는 질문이 뒤따랐지만 그는 고개만 내저었다. 이 황당함은 공유하기엔 지나치게 원초적이었다. 그는 대신 숨을 골랐고 목을 한 번 더 쓸어내렸으며, 이내 외계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도 같아.”
“…….”
“내 별도 죽어가고 있었어. 살리기 위해서 왔지만 실패했고. 깨어났더니 동료들은 전부 죽었더군.”
제 이야기를 발음할수록 갈증이 사라졌다. 물기가 차올랐지만 그것들은 지그시 삼켜냈다. 지친 낯으로 그가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단지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종류의 갈증을 겪어본 적은 많았지만 해소되는 건 또 달랐다. 이럴 줄은 몰랐어, 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럴 줄은 몰랐어. 외계인 앞에서. 난생처음.
잠시 침묵하던 외계인이 손을 뻗었다. 그들을 가로막은 벽에 외계인의 손가락이 맞닿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한 태세를 풀지 않고서 외계인을 바라보았다. 성큼 다가온 외계인이 벽에 이마를 댔다. 바로 뜬 두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친구네. 우리.”
“…….”
“제대로 인사할게. 나는 —.”
낯선 발음이 튀어나왔다. 그는 순간적으로 외계인의 이름을 혀로 굴려보았다. 끝이 약간 둥글어지고 깎여나갔지만, 가장 비슷한 어감으로 수정한다면 ‘B’가 되었다. 이제는 B가 된 외계인이 그와 눈을 맞췄다. 웃었고, 또 물었다.
“네 이름은 뭐야?”
이름을 알리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그는 자신할 수 없었다. 통성명이란 건 본디 상대를 알아가겠다는 최초의 통보나 최후의 결정과 같았다. 그는 몇 번 입을 여닫았다. 상황이 코앞에 닥치자 그는 선뜻 말할 수 없었다.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홀로 지냈다. 누군가에게 불리지도, 부르지도 않는 채로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이 없었고, 또 약간은 두려웠다.
그러나 ‘B’는 또렷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명확한 시선에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입을 열 수 있었다.
“A.”
그는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제 이름을 되풀이했다. A.
“—.”
B가 아마도 그의 언어일 것으로 이름을 발음했다. 제가 발음한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속도가 빨랐지만, 어찌저찌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몇 번씩 A를 반복해서 말하던 ‘B’가 곧 활짝 웃었다.
“안녕, A!”
08.
B와의 기묘한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고서 사흘째 되던 날 A는 방호벽을 거두었다. 그 두껍고 투명한 벽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낀 탓이었다. 방호벽이 걷히자마자 B가 숨겨두었던 공격성을 드러내 A를 습격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들이 나눈 모든 대화가 진실되었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A를 움직이게 한 건, 설령 B의 손에 살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일종의 체념이고 수긍이었다.
천천히 올라가는 방호벽 앞에 A는 묵묵히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자신을 바라보는 B가 급작스럽게 돌변하기를 바라는지, 이 기묘한 평화가 유지되기를 원하는지. 이 의문은 어쩌면 의도된 여백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A는 구태여 자문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일을 우려하고 두려워하고 기대하는 건 생존 욕구에 기반한 산 사람의 특혜였다.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건 어떻게 되어도 정말, 진심으로, 상관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령 그것이 외우주에서 만난 최초이자 최후일 외계인의 배신이라거나 본인의 육체적인 죽음일지라도.
철컹, 하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방호벽이 완전히 걷혔다.
09.
B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느리게 첫 발을 디뎠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가 다가왔다. 자신을 가두다시피 하던 외부 해치에서 발을 내디뎌 선체 내부로 걸어왔다. B의 창백한 발이 철제 복도에 첫 발자국을 찍었을 때, 발가락부터 시작되어 느리게, 그러나 매끄럽게 발뒤꿈치까지 빨려 들어가듯 달라붙으며 탁 소리를 냈을 때, A는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맨발에 철제라니. 시릴지도 몰라. 온도를 높여야겠어.
“대단해.”
두 발을 내디디고서 B가 중얼거렸다. 대단해, 하고 그는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고서 되풀이했다. 그런 B를 바라보며 A는 나직이 되물었다. 뭐가?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야.”
“특수 합금이야. 단단하지만 가볍지. 우주선은 무거워선 안 되니까.”
“뭐가 들어간 걸까? 내가 과학자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며 B는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하얀 원피스에서 풀썩 공기 꺼지는 소리가 났다. 그가 손을 뻗어 특수 합금 복도를 매만졌다. 차갑고 뾰족해.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A는 하릴없이 궁금해했다. 과학자가 아니란 말이야. 과학자가 통상적으로 우주에 나오지 않기야 하지마는 B의 어투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복도와 연결된 벽면을 더듬거리기 시작한 B를 바라보던 A는 잠시 고민했다. 묻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호기심은 기어코 이성을 이겼다.
“과학자가 아니었단 말이야?”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전혀.”
그러자 B는 혼잣말처럼 이런,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다니, 하고 중얼거렸다. 쪼그려 앉았던 몸은 어느새 A의 눈높이까지 일어나 있었다. 이제 B는 천장에 달린 창문 너머가 뚫어지라 응시하는 중이었다.
“나는 —야.”
“……잠시만. 단어 등록이.”
“아아. 그렇지. 그러게, 풀어 설명하면 어떻게 되려나?”
말을 이으면서 B는 돌아보지 않았고 A는 그것을 조금쯤 다행스럽게 여겼다. 눈이 마주쳤다면 분명 표정 관리를 엉망으로 했을 것이다. A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그 또한 쭉 뻗은 복도를 구경하고자 한다는 듯이. B를 바라보지 않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군, 하고.
A는 조용히 노트북에 B의 직업을 두드렸다. 타자 소리가 멎자마자 B가 말했다.
“네 말로는 내가 하는 일을 뭐라고 불러?”
A는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09.
“사람을 살리는 사람.”
“…….”
“산 사람도 살리고. 죽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이제 알겠어? A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며 생각했다. 이상해. 정말이지 이상해. 인제 와서 B를 만나게 된 데에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지금 이 만남이 앞으로의 그를 어떻게 바꾸게 될까? 그렇지만 그는 이미 죽었고, 그건 불변하는 존재로의 박제를 의미하고, 무엇보다 B 본인이 어떠한 의사도 밝히지 않았을뿐더러…….
생각이 깊어지자 피곤해졌다.
10.
과학자 A와 의사 B는 제법 합이 잘 맞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A는 B가 상당히 유능한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B는 A가 지구를 대표하는 과학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B는 왕실 의사였다고 했다. 왕실 의원이 어쩌다가 이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 나가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자원했어, 하고 말했다. 사람들이 소중했으므로,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살리는 직업이었으므로, 우주에 나가 대책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B는 대답 끝에 질문을 덧붙였다. A는?
A도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거짓말은 이제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잘 재단한 파편 같은 진실을 박음질하는 마음으로 A는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태양이 점점 죽어가고 있었고. 그 성긴 박자에 맞추어 지구도 죽어갔고. 그렇지만 여전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살려야만 했고. 이야기는 드문드문 끊겼지만 B는 끼어들지 않았다. A의 대답이 끝났을 때 B는 다시 한번 물었다.
“구하고 싶었어?”
“글쎄.”
“그럼, 우주에 가고 싶었어?”
그러자 A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선체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었다. 긁어모은 연료로 엔진을 가동하는 대신 호흡할 수 있도록 산소 생성과 난방에 총력을 기하는 중이었으므로 이제는 좌표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쳐온 궤적만이 점점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A는 길게 이어져 화면 바깥으로 이탈했을 점선을 상상했고,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A는 자신이 뱉지 않은 최후의 질문을 혀끝으로 굴렸다. B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계시 같은 직감은 속으로 삼켰다. 외면한 물음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입안이 쌉싸름해졌다. 침을 삼킬 때마다 쓴맛이 났고 머리가 급격히 무거워졌으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중력 같은 피로가 그를 짓누를 때마다 A는 의미 없이 계기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망향은 사무치지 않았으나 그 불가능성은 고통스러웠다. A는 그와 B가 같은 것을 그릴 때 마침내 중력을 잃고 떠오르는 이 뿌연 안개 같은 적요가 싫었다.
그리워하고 싶지 않았다. 지구 같은 건.
B도 마찬가지이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단지…….
11.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B는 창밖을 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춘 채로. 테가 둘린 시선은 A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향했다. 깊이 매인 입술이나 움직이지 않는 몸, 흔들리지 않는 시선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덩그러니 움직이지 않는 B가, 불변하는 존재로 박제된 것처럼 느껴지는 외계인이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길 기다리는 건 온전히 A의 몫이었다. 그뿐이었다.
12.
기묘한 침묵과 망향을 등에 업은 채로 표류하기를 한 달째 되던 날. B가 잠든 A를 깨웠다. 처음 듣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비몽사몽 깨어난 A가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이었다. 선체가 크게 덜컹거렸다. 마치 어딘가로 우악스럽게 끌려가는 듯한 기울기요 속도였다. A와 B가 뒤얽힌 채 우당탕 쓰러졌다. 기울기 시작한 선체가 가파른 비탈 같았다. 완전히 굴러떨어져 벽에 등을 박기 직전 A가 힘겹게 벽에 난 안전봉을 붙잡았다. 옆에서 구르는 B를 덥석 붙잡고 끌어당겼다.
“페트로바선이야.”
B가 헐떡이며 말했다. 한 마디였지만 A는 이 모든 사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표류하지 않았다. 엔진 가동을 꺼두었지만 연료로 사용할 아스트로파지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연료통 속에서 살아남은 아스트로파지들이 페트로바선을 향해 선체를 이끌었던 것이었다. 두 탑승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 그들은 페트로바선 가까이 진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가고자 결심한 것이다. 두 아스트로파지 뭉치가 서로를 향해 이끌리며 선체가 끌려가고 있었다.
빨려 들어갈 것이다. 페트로바선 정중앙을 향해서.
아스트로파지도 고향을 그렸나. 그들이 자아와 사고를 가졌다는 명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어쩌면 이것은 전부 본능에 따른 복귀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렇다면, 하고 A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존재하는 걸까? 하지만 A는, 고개를 내저으며, 밭은 숨을 참으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구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그의 영혼은, 이제는 그의 뼈만큼이나 희어졌을 그 행성에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A는 이 우주에서조차도, 무중력, 무의미, 무생명 사이에서도…….
그 순간 A와 B는 눈이 마주쳤다. 어쩌면 그들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A는 말하지 못했다. 그만큼의 용기를 싣고 오지는 못했다. 우주선은 가벼워야 했으니까. 입술을 길게 감쳐물었다. 그래선 안 된다고 그는 스스로 윽박질렀다. 말해야 한다고, 부탁해야 한다고, 그래야지만 이 꽉 막힌 고착을 타파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이성을 덩그러니 바라보았다. 외면하지도 손을 뻗지도 못했다. 거부도 승낙도 되지 못했다.
B는 달랐다. 그는 단호했다. 맞닿은 살결이 까끌거렸다.
13.
A와 얽혀 있던 B가 단숨에 그를 멀고 밀어졌다. 생각보다 힘이 셌다. A가 B를 놓쳤다. 하마터면 B가 바닥을 구를 뻔했지만 그는 시시각각 기우는 선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았다. 점멸하는 붉은 등 속에서 두 눈동자가 강하게 빛났다. 괜찮아, 하고 B가 속삭였다. 강렬한 시선이 A에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