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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함박눈이 내리던 한겨울 어느 날에.
작은 고아원이었다. 나이를 국한하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주로 살았다.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제 밥을 벌어먹을 수 있을 나이가 되면 대개 자처하여 떠났다. 고아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제 나이를 모르는 일이 태반이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퇴소 날을 키로 어림했다. B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가고자 마음을 먹은 건 그가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굶주리고 메마른 고아원에 지친 것도 아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생겼다.
무언가를 원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키가 나타내는 나이로 그는 열여덟을 앞두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제 삶을 개척하겠다는 열의에 불탄다거나 나이를 먹어가며 드는 기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여정에 떠나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을 품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알았다. 성인이 되면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번다는 건 즉 자유로워지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는 종종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삯을 받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용병질이라고 불렀다. 심부름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었으므로 B는 자신을 용병이라 일컫는 호칭을 아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불림으로써 일과 삯이 늘어난다면 반길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B는 퇴소를 앞두고 지나는 하루하루마다 깊어지는 갈증을 느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확하고도 확실한 목적이 B의 입안을 바짝 말렸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둠이 스민 침침한 방안에서 촛농에 붙인 불에 의지한 채로, B는 불현듯 결심했다. 떠나야겠다. 고아원을. 마을을. 멀리 나가 용병이 되어야겠다. 돈을 벌어야겠다. 충분히 벌어서 집을 살 것이다. 제게 허락된 열 걸음의 공간이 아닌. 정말로 하나의 번듯한 집. 가능하다면 퇴소 전 A를 데리고 나올 것이다. 설령 퇴소 시기를 맞추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많다. A가 충분히 자란 후 함께 지낼 공간이 있으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까닭은 명징했다. A는 그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니까.
그가 데려온 아이. 책임져야 할 존재. 열 걸음이면 벽과 벽이 닿는 좁은 방에서도 군말 없이 지내주던, 어쩌면 유일한 가족과도 같은 꼬마. A는 아직 작았다. 고아원 퇴소까지는 몇 년이고 남았다. 필연적인 이별을 예고하는 일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희망적인 사실이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타인의 도움에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B의 결심은 어찌 보면 응당한 것이었다. 독립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 몰랐다. 이보다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사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B는 용병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유에 빠져드는 철학자와는 다른 부류였다. 그는 확실한 결과를 원했다. 되도록 빠르고 물질적으로.
한번 결심한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B는 자신을 돕는 용병과 대화를 마쳤다. 지역 일대에 낀 눈보라와 먹구름이 가시면 그들은 떠날 것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니 보호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길잡이 정도는 있는 편이 나았다. 창밖에서 몰아치는 세찬 한기에 몸을 잘게 떨며 B는 조용히 시선을 옮겼다.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 커다란 가죽 가방과 수통이 쓰임새를 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B?”
그때였다. 문간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였으므로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허리쯤에 닿을 듯 말 듯한 작은 아이가 문고리를 붙들고 서 있었다. 검은 눈동자 속에 B가 파문처럼 일렁인다. B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시선을 피했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
“A.”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아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키지 않았음에도 아이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꺾어 들었다. 조용한 질문이 뒤따랐다.
“어디 다녀왔어?”
“아랫마을에.”
B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덧붙였다. “……지난번에 말했던 용병 아저씨, 기억해? 그분이랑 대화하고 왔어.”
“왜?”
거침없고 망설임 없는 어투로 A가 물었다. B는 잠시 A를 내려다보았다. 어리다는 말 외로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작은 아이. 실감해 본 적 없는 낯선 떨림이 심장께를 강타한 건 그때였다. 미세하고도 다소간 냉랭하게. A를 떠나겠다는 마음에서 파생된 것이 확실한 요동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퍼졌다.
알 수 없어, 하고 그는 뇌까렸다. 술렁이는 이 감각은 무엇이지. A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한 순간 제 발밑에서 들리고 느껴지는 갈라짐. A를 본다. A 또한 B를 본다. 침묵한 공백은 길지 않았다. 마침내 B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계획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랬다. 자신을 돕는 사람이 전직 용병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냐는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이제 그는 용병이라는 호칭을 단 잔심부름꾼에서 정말로 어엿한 용병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 A는 용병이 되고 싶었냐고 물었다. B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조금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왜야?
거기서 B는 잠시 멈췄다. A의 어두운 눈동자는 물기 하나 없이 깨끗했으나 B는 어째서인지 아이의 설움이 뺨에 닿는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그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A는 다시 물었다. 나를 떠나는 거야? B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의 안색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느긋한 몸짓으로 그가 손을 뻗었다. 어두운 눈이 언뜻 반짝였다.
“같이 가자.”
A가 말했다. B가 무슨 반응을 내놓기도 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정했다. 조금 더 단단하고 고집 있는 말씨였다.
“같이 갈래.”
B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A의 굳건한 말투만큼이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거기서부턴 소요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대화였다. A는 이유를 캐물었으나 B는 단호했다. 어린아이를 여정에 동행할 수는 없었다. 원론적으로 위험했다. 가장 단순한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산재한 길이었다. 버는 돈은 대개 목숨값이었다. A는 아직 죽기에 어렸다. B는, 뭐, 자신의 나이에 관해서 적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합격이라고 생각했고.
안 된다는 말을 열댓 번쯤 반복했을 때,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꼈을 무렵 A가 고개를 떨궜다. B는 고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두고 가는 게 아니야. 그 반대야, A. 나는 지키려는 거야.”
“뭘?”
“너랑 나를.”
그러자 A의 입술이 비틀렸다. 미묘하게 볼을 부풀린 낯이 B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믿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B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이었으니까. 떠나야겠다는 결심도, 돈을 벌겠다고 한 결의도 결국에는 하나로 귀결한다. 지켜야 하니까. 기실 B가 바라는 것은 명확했다. A와 함께 살 수 있는, 내부를 전부 돌기 위해선 열 걸음보다 많은 보폭이 필요한 오두막. 자신의 모든 걸 포용해 준다고 느끼는 안정감 있는 집. B와 A와 집, 셋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목적은 성립할 수 없다.
“어려서 그래?”
“그것도 그렇지만.”
“그렇지만?”
“너는 무기를 잡아본 적 없잖아. A, 나는 용병이 되려는 거야. 잡일꾼 같은 게 아니야. 용병의 쓸모는 오로지 무기를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려. 그 험한 곳에 널 데려갈 수는 없어.”
A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는 고개를 들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이의 눈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으로 번득였다.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사람처럼 단단한 얼굴을 하고서 A가 물었다.
“무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나를 데려갈 거야?”
B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뺨을 적시는 메마른 냉기가 잠기려던 정신을 일깨웠다. 마른침을 넘기며 그가 생각했다. 오래 걸릴 테다. A는 아직 어리고, 검은커녕 무기조차 잡아본 적 없으며, 그의 몸은 아직 무엇인가를 휘두를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일이 년으로는 안 될 테야. 그렇다면. B는 속으로 A가 자신과 함께 떠날 시기를 어림해 보았다. 그가 자라고, 무기에 능숙해져서 그네들 관계에 동료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보다 B가 돈을 모아 오두막을 사는 시기가 빠를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그때, 떠나자는 A에게 말하면 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정착할 거라고. 이 오두막을 우리의 집으로 삼지 않겠냐고. 그렇게 내 곁에 머물러달라고.
“그래.”
B가 대답했다. A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B는 짐을 쌌다. 고아원의 몇 없는 수녀들이 B를 도왔다. 그들은 제각기 안타까워하거나 뿌듯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없는 형편임에도 그들은 B에게 가는 길에 쓰라며 은화를 몇 닢 쥐여주었고, B는 그것을 돈주머니 안에 조심히 밀어 넣었다.
떠나는 날에도 눈이 왔다.
시야를 언뜻언뜻 가리는 미약한 싸락눈이었다. 착실하게 쌓이는 눈을 내려다보며 B는 A에게 따라 나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했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다져진 눈이 얼음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A는 아쉽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수긍했다.
그들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눴다. 최대한 빨리, 그리고 자주 돌아오겠다고 B는 말했다. A는 기다리겠노라고 대답하고 B를 크게 한번 껴안았다. 따끈한 아이의 온기가 품을 타고 심장께에서부터 퍼지는 것을 느끼며 B는 물러났다. 짧은 대화가 두어 번 오갔다. A의 코끝이 발갛게 물들 무렵 B는 조심스럽게 그에게서 떨어졌다.
“약속한 거야.”
발을 떼기 전 A가 그렇게 말했다. B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걸음을 내디딘 순간 미약한 두통이 일었다. 뜻 모를 피로감이 그를 휘감았다. 새로운 여정에 들뜸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소복한 눈이 쌓인 길을 걸으며 B는 제 위로 떨어지는 안개눈만큼이나 조용히 결심했다.
찾아낼 것이다. 우리의 집을.
“나도 같이 갈래.”
맥주잔을 기울이던 B가 잠시 멈칫했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 특유의 당혹스러움이 무미건조한 낯을 짧게 스쳤다.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검은 시선 두 개가 허공에서 얽혔다. 기묘한, 알력 싸움 비슷한 분위기가 흐른다. 용병은 개입하는 대신 눈을 한번 굴렸다. 그리고 묵묵히 맥주잔이나 기울이다가 안주를 시켰다. 그것들을 차근히 입안에 밀어 넣으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린 것이 벌써 눈을 맹랑하게 뜨기는.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용병단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그네들은 사람이 몇 없었다. 애당초 첫 출발이 B와 그, 두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무슨 조직이든 쓸 만한 인력이 많을수록 선택지가 늘어난다. 오랫동안 용병으로 구른 그였기에 사람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았다. 같이 가겠다는 말, 저건 아마도 B와 함께 용병단에 합류하고 싶다는 말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연산을 마치고서 그는 소년을 슬쩍 훑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그와 대조되는 창백한 피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 곳곳에는 무기를 잡은 흔적이라고 해도 될 법한 굳은살들이 박여 있다.
열다섯, 열여섯쯤 되었을까. 아직은 머리도 여물지 않은 녀석이 말한다. 나도 이제는 한 사람 몫 정도는 할 수 있다고. B는 어딘가 복잡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가, 잠시 고민하다가, 곧 입을 열어서 하지만, 하고 말을 잇는다. 소년은 B의 이야기를 들은 체도 하지 않는 가벼운 태도를 일관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조곤조곤한 말들은 B의 주장을 꼼꼼하게 정면으로 반박한다.
일련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용병은 생각한다. B는 소년이 용병이 되기를 원치 않는 걸까. 만류하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조금쯤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망설이는 듯도 하고. 이해는 간다. 용병 본인도 제 자식이 용병이 되겠다고 나서면 정신 차리라고 일갈할 테니까. 이거야 원, 고집 센 자식과 고민 많은 부모의 다툼을 보는 것 같군. 다소간 즐거운 마음으로 그는 맥주잔을 기울인다. 소란스러운 여관 식당에서 나누기 적합한 대화지, 그래.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 B의 머뭇거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가볍게 재치 있게, 그러나 어딘가 미묘한 어투로. 말이 이어질수록 B가 눈을 찌푸린다. 맥주잔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손길에 시선이 붙박인다. 그들의 대화에서 탈락한 채, 자신을 유리한 채, 완전한 제삼자로 존재하는 채로, 용병은 문득 속으로 중얼거린다. 흔들리고 있군.
“B가 그랬잖아. 무기를 쓸 줄 알게 된다면 데려가겠다고. 나, 이제 제법 능숙해.”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발목 잡지 않을 거야. 약속해. 설마 나, 못 믿어?”
B가 입을 다물었다. 용병은 말없이 안주로 나온 마른오징어를 입안에 던져넣었다. 말간 시선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새카만 눈동자가 일순간이지만 제게 꽂힌다. 착각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식간이지만 그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집어 들었던 오징어 다리를 내려놓고서 그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끌벅적한 식당을 한번 쭉 둘러보고서 다다른 종착지는 다름 아닌 소년이다.
소년이 그를 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웃는다. 천진한 웃음이다. 얼핏 본다면 그저 평범한 아이가 지을 법한 평범한 미소. 하지만 용병은 아니다. 그는 잔뼈 굵은 용병이다. 온갖 것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그렇게 단련한 직감이라는 녀석이 순간적으로 바짝 날을 세운다. 눈이 가늘어진다. 팔짱을 꼈던 손이 풀린다. 허벅지에 찬 가터, 그 안에 있을 날 벼린 단도 손잡이를 손끝으로 천천히 매만지며 그는 자그마하게 중얼거린다. 뭐지. 방금.
찰나였다. 하지만 확실하게 느꼈다. 재차 확인하기 위해 용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B의 시선이 단박에 돌아왔다. 어디 가십니까, 하는 질문에 용병은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술기운 좀 빼려고. 앉아 있어라. 차분한 대답에 B의 안색에 미약한 안도의 기미가 스민다.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소년을 바라본다.
소년은 영 불만스러운 것 같다. 무엇인가가. 자리를 비우기 직전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앳된 눈동자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다시금 샐쭉 초승달 모양으로 접혔다.
기시감을 뒤로하고서 용병은 걷기 시작했다. 수상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그는 우선 여관 주모에게 다가갔다. 저쪽 테이블에 식삿거리, 아니 안줏거리 말고 식삿거리 말이요, 아무거나 한 접시 좀 갖다주시오. 용병이 가리킨 테이블을 힐끔 곁눈질한 주모가 짧게 혀를 찬다. 어딘가 불쾌한 기색이 얼굴을 순식간에 스치고 사라진다. 용병은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눈동자에 비친 사람이 B인지 소년인지, 혹은 그들 일행 전부를 향한 적개심인지 알 필요가 있다.
“실례합니다.”
막 접시를 들고 가판대 너머로 나서려던 주모가 얼굴을 찡그리고 올려다본다.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뒤따른다. 외지인을 향한 배척과 닮은, 그러나 미묘한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에 용병을 짐짓 친절한 낯을 하고서 그를 응시했다.
“무신 일이유.”
“여쭤볼 것이 있어서 그럽디다. A라는 아이를 아오?”
“B 옆에 있는 아 아니요. 나보다 B가 더 잘 알 거요. 옛적부터 함께 지냈으니.”
“뭐 아는 것 없소?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영 신경이 쓰여서.”
주모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진다. 이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젓는다. 묘하게 망설이는 듯 눈을 굴리다가 곧 폭풍 같은 기세로 용병을 쏘아보았다.
“B가 떠난 후부터 A는 고아원에서 혼자 지냈소. 나는 거기서 종종 일손을 도왔기에 알지.”
“…….”
“그런데 언젠가,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돌아오지 않는 거요. 수녀님들은 손이 바빠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내게 부탁하는 게 아니오. 그래서 찾으러 나갔더니.”
“그랬더니?”
주모가 서슬 퍼렇게 날을 세웠던 눈을 내리깐다. 쯧, 하고 작게 혀를 차고는 목소리를 낮춘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용병이외니 아시겄지만 이 계절의 곰은 영 사납기 그지없소. 그런데 고 맹랑한 것이 곰 굴로 들어가는 거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당장 쫓아가려고 뛰쳐나가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포효 소리가 들리외다.”
“…….”
“죽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난 도망쳤지. 그리고 며칠 뒤에, 시체라도 수습해 줄 요량으로 굴을 다시 찾아갔소만……. 부러진 곰 발톱만 나뒹구는 것 아니오.”
주모가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는 짧게 덧붙였다. “그 길로 고아원에 가물었더니 상처 하나 없는 A가 나왔지. 내가 아는 건 그뿐이외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용병이 자리에 돌아갔을 때 B와 ‘A’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용병이 자리에 앉자 B는 눈길을 한번 던졌다. ‘A’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B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용병은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로 손을 두어 번 흔들었고 그러자 그들은 다시 대화에 빠져들었다.
치열한 공방이었다. 적어도 용병이 보기에는 그랬다. 용병이 맥주 석 잔쯤을 비우고 마른 과자를 질겅거릴 즈음 A가 몸을 기울였다.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찌푸린 채로 그가 B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울한 말투로, 마치 당장에라도 실연당한 사람처럼 슬프기 그지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만 B가 데려가 준다고 했잖아. 어렸을 때 그렇게 약속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나, 이제 무기 다룰 줄 아는데. 잘 다뤄. 혼자서도 먹고 살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이랑 함께여도 문제없어.”
B가 얼굴을 살포시 찡그렸다. 고민하는군, 하고 용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A의 시선이 용병에게 향했다. 허공에서 시선이 짧게 얽혔다. 직전에 보여주었던 애처로운 모습과는 딴판이다. 일순이었으나 그는 확실하게 보았다. 냉랭하고 싸늘한 관찰자의 눈으로 A가 용병을 순식간에 훑었다. 그리고 다시 방긋.
용병이 코웃음 쳤다. B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용병은 고개를 저었다.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B가 믿을지도 관건이고. 게다가 남들이 본다면 단순한 시선 한번, 소문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용병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무의미한 적을 만드는 걸 즐기지도 않았다. 다만.
B를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생각했다.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벌어야 하는 까닭이 저놈이라면 당장 뜯어말릴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짐을 꾸려 도망치는 게 낫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머리 뒤편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이것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다. 오랫동안 생과 사를 넘나들며 단련한 직감이 속삭이는 예지에 가깝다. 예사롭지 않은 놈이다. 용병은 확신했다. 싹수가 노랗다 못해 아주 익어 떨어지겠군. 속으로 뇌까린 그가 B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특유의 무미건조한 눈이 용병을 향한다.
“데려가 주기로 했던 약속, 기억해?”
질세라 A가 말했다. B의 시선이 잠시 흔들리다가 A에게 향했다.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B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잖아.”
용병은 B의 낯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다. B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기에 용병은 먼저 입을 열었다.
“돈 벌 생각은 이제 접는 거냐.”
“아닙니다.”
“어린애 데리고 나서는 게 그런 의미지 뭐겠어.”
B가 고개를 저었다. 침침한 낯이 묘하게 어두워졌다. 머뭇거리듯 입을 어물어물하던 B가 느리게 말했다.
“제게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수단이냐.”
B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갔다. 바라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A를 향했을 것이다. 이탈은 짧았다. B는 다시 용병을 보았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집.”
“…….”
“같이 지낼 집을 구하고 싶었어요. 가족은 그렇게 살잖아요.”
용병은 터지려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비쩍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맥주잔을 기울였다.
며칠 뒤 일행은 마을을 떠났다. 이 마을을 들를 때마다 어린애 하나씩 주워 가는 것 아니냐는 동료의 짓궂은 농담에 용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B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A가 코앞에 서 있었다. 얼굴을 들이민 채로 눈을 깜빡거리다가 시선이 맞자 싱긋 웃는다. B는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야, 하고 대답하자 A가 몸을 물렸다.
산맥을 넘기 전 들른 마지막 마을이었다. 그들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마을과 이곳은 제법 닮아 있었다. 소복눈이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어쩐지 떠나온 겨울을 연상케 했다. 홀로 떠났을 때도, A와 함께 나섰을 때도 눈이 왔었다. 그러니 속절없이 떠올리고야 마는 것이다. 떠나왔던 곳을. 마을을. 고아원을. 침침하던 밤을. 그날 아로새겼던 다짐을.
“집에 관심이 있소?”
푯말 앞에서 건들거리던 남자가 물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뒤편으로 향했다. 번듯한 오두막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성인 두셋이 살기에 적당할 성싶었다. A가 곁에서 오오, 하고 실속 없는 소리를 냈다. B는 다시 푯말을 읽었다. 집을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지금 그가 가진 돈과 A의 삯을 더하면 빠듯하게 살 수 있을 만큼.
이것은 기회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예상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애당초 B의 목적은 집을 사는 것이었다. 용병은 아쉬워하겠지만 머물겠다는 이를 구질구질하게 붙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며칠 지내본 결과 마을 사람들도 순박하고 선하다. 아주 훌륭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조건이다.
“어때요? 관심이 있으면 대화 좀 해볼까 싶은데?”
손님의 가능성을 포착한 중개인이 눈을 빛냈다. 이곳 말고도 몇 자리가 더 있다며 그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 하고 A가 짧게 감탄했다. B는 A와 집, 그리고 중개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몇 년 전의 결심은 여전히 제 심장에 뿌리내린 채임을 알았다.
잠시 뜸을 들인 B가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에이, 실없기는.”
남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행인에게 손짓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B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지키겠다고 결심한 것도 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물질만을 추구할 까닭은 없다. 때때로 어떤 집은 물성 없는 존재기도 하니까. 몇 년 사이에 A는 키가 훌쩍 컸다. 벌어들인 돈은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하고선 전부 모았다. B는 원한다면 어디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정착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안락할 것이다. 곁에 A가 함께일 테니까.
그는 더 이상 그네들의 테두리에 말뚝을 박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유로이 유랑하면서도 그들은 서로를 지킬 수 있다. 집이라는 형태에 종속되지 않더라도 B와 A의 인연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두막은 필요치 않다. 아직은.
“가자.”
그 말을 끝으로 B는 걸음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