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ate of Winter
변화는 설령 두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오감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또한 그렇다. 갈수록 들뜨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들 대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연회라거나. 필치가 힘겹게 벽에 거는 겨우살이, 후플푸프 기숙사에서 소문을 타고 전해지는 온갖 이야기들.
A는 거대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올해는 체리로 장식한 초콜릿케이크였다. 마법으로 잘린 케이크 조각들이 우아하게 온 연회장을 날아다녔다. 그러나 제 접시에 안착한 케이크를 즐기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좌절하는 친구들을 내려다보며 A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연회 한 달 전부터 내기를 걸었다. 초콜릿케이크냐, 생크림 케이크냐. 작년에도 초콜릿이었으니 올해에는 생크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물 흘리는 친구를 발로 툭툭 밀며 A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놔.”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뭘 새삼스레.”
A가 코웃음 쳤다. 흘리지도 않은 눈물을 닦으며 친구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갈레온 초콜릿과 개구리 초콜릿 한 뭉치가 서로 뒤섞여 나왔다. 갈레온 초콜릿은 안주머니에 넣은 A가 혀를 끌끌 찼다. 포장이 벗겨진 개구리 초콜릿은 있어야 할 카드가 없는 맨몸이었다.
“카드 어디 뒀어.”
“그건 좀 봐줘라. 며칠 전에 다른 애랑 교환했다가 잃어버렸어.”
“나더러 이미 뜯은 걸 가지라고? 장난하냐?”
“아, 한 번만!”
손을 싹싹 비는 친구를 내려다보며 A가 혀를 끌끌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위험해도 실제 돈을 걸걸 그랬다. 소액이었더라면 교수님들도 크게 꾸짖지는 않았을 텐데. 몇 해 전 내기에서 갈레온 몇 닢이 오갔다고 기숙사 점수까지 까먹었던 기억이 있어 조심했더니, 이번엔 이렇게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A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호그와트는 이제 막 크리스마스 연회를 시작한 참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연회는 한층 열기를 올릴 것이다. 학생들은 푸짐한 음식을 먹으며 저들끼리 쉴 새 없이 떠들었고, 교수들은 단상 위에서 자신들이 준비한 연회를 뿌듯하게 내려다보았다.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는 촛불 하나에까지 종을 단 건 너무 무리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뭐.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렇듯 떠들썩한 분위기라면 사람은 어렵지 않게 주위에 감화되고는 했다. A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민해진 귀에는 소음이 지나치다는 단점이 있기야 했지만, 그걸 대놓고 드러낼 만큼 A는 어리석지 않았다. 게다가. A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뿌연 시야였지만 A는 알고 있었다. 상대는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우롱할 의도로 포장 벗긴 개구리 초콜릿을 줄 만큼 악독한 놈이 아니었다.
기분도 나쁘지 않겠다, 좀 봐줄 수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예민한 청각이 우글거리는 학생들의 말소리 틈에서 익숙한 이름을 잡아챘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래번클로 학생들이 모여 앉은 책상 쪽이었다. 흐릿한 시야는 A가 찾고자 하는 상대를 명확히 보여주지 못했다. 눈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찰나였다. 우르르 앉아 있던 학생 중 누군가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B, 진짜 가게?”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은 그를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금방 돌아오라는 말을 뒤로하고서 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린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종종 떠났다.
“A?”
싹싹 빌던 친구가 고개를 갸웃했다. A는 긴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개구리 초콜릿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단숨에 밝아진 목소리로 묻는 친구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봐줄 거야?”
“그런 걸로 해. 나 간다.”
“어디?”
“있어.”
짤막하게 대꾸하자 친구는 더는 붙잡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A가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를 둘러싼 시끌벅적한 소음은 연회장 문을 닫는 순간 잦아들었다. 머리를 한번 쓸어올린 A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멀어진 다음에야 알겠다. 예민해졌던 청각과 함께 신경도 함께 날이 섰던 모양이다.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그가 주위를 살폈다.
어둠이 내린 복도는 적막했다. 드문드문 벽면을 밝힌 횃불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A는 괜히 눈을 한번 비비다가 말았다. 곧장 따라 나온 건데도 B는 보이지 않았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간결했다. A는 우선 발을 뗐다. B를 찾겠다는 목적도 분명히 있었지만, 뭐랄까. 저 시끌벅적한 연회장 안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인적 드문 호그와트를 탐방하는 쪽이 훨씬 구미가 당겼다.
A는 오랫동안 갈피 없이 걸었다.
한창 연회 중인 호그와트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다못해 유령들마저도 뜸했다. 래번클로 기숙사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가 한참을 내려와 앞뜰을 거닐었다. 문 닫힌 강의실에도 한 번씩 들렀지만 B를 찾지는 못했다. 여섯 번째 강의실에서 허탕을 쳤을 때 A는 작게 혀를 찼다. 잠깐 나갔다가 온다더니. 혹시 연회장으로 돌아간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마주친 건 강의실 복도에서였다. 사람을, 아니, 상대를 만나는 건 연회장에서 나선 이후 처음이었다. 닉이 A를 지나치기 직전 A가 그를 불렀다. 닉, 하고 외치자 돌아본 그는 정중하게 특유의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혹시 B를 본 적 없어? 래번클로 학생.”
“래번클로? 안타깝게도 본 적 없군. 슬리데린이나 그리핀도르가 앞다투어 뛰어가는 건 봤지만 말이야. 나도 막 연회장에서 나온 참이거든.”
“연회장 안에선?”
수다스러운 닉이 말을 잇기 전 A가 잽싸게 다음 질문을 건넸다. 닉은 할 말을 방해받자 조금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이봐, 학생. 연회장 안엔 래번클로가 수십, 수백이야. 그중에서 B가 누군지 알 도리가 있겠어?”
“그것도 그렇네. 가봐.”
“이렇게 내쫓다니. 요즘 학생들 같으니라고.”
A가 눈알을 한번 굴렸다. 닉의 투정을 받아줄 시간도, 생각도 없었다. 그가 매정히 등을 돌리자마자 닉이 황급히 달려와 앞을 가로막았다. 지나치게 성말랐던 나머지 A를 완전히 관통해 버렸다는 게 유감스러운 점이었지만.
“잠깐! 이렇게 가려고?”
“그럼. 당신도 바쁜 것 아니었어?”
“마침 심심했단 말이야. 연회장에서 내 주특기를 보여주다가 목이 완전히 굴러떨어질 뻔했거든, 내가 그 수없는 관심을 뿌리치고 연회장을 나선 것도 그 탓이지…….”
“난 찾을 사람이 있어. 네 얘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단 뜻이야. 이해했으면 간다.”
다시 발을 뗀 A를 닉이 한 번 더 막아섰다. A가 삐딱하게 팔짱을 꼈다. 슬슬 성가셔지려고 한다. 으름장을 놓듯 말하자 닉이 손을 내저었다.
“진정해, 학생. 난 도우려는 거야.”
“뭘.”
“사람을 찾고 있다며. 모르는가 본데,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소문이 있거든.”
“소문?”
닉이, 그럴 리가 없음에도, 마치 눈을 반짝거리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나 격렬했는지 붙어 있던 목이 제자리에서 탈주하는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허겁지겁 목을 제자리에 붙이는 닉을 올려다보며 A는 제 저주받은 시야가 이번만큼은 제 할 일을 훌륭히 완수했다고 생각했다. 당황이라도 한 것처럼 이마를 훔친 닉이 다시 말을 이은 건 그때였다.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진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보름달이 뜰 때마다 달빛을 받은 검은 호수에서 신비로운 궤짝이 떠오른다던데.”
“궤짝?”
A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유난히 떠들썩하게 소문이 돌기는 했다. 궤짝이니 소원이니 하던 이야기들. 그 자세한 내막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A의 태도에 무언의 가능성을 느낀 것인지 닉이 한층 정중하게, 그러나 약간은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그래서야. 학생들이 자꾸만 연회장을 빠져나간 건. 아까 보았던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 누가 먼저 궤짝을 찾나 내기를 걸었다더군.”
“그렇단 말이지.”
“B라는 친구가 어디로 갔는진 몰라. 그렇지만, 연회를 빠져나와서 모습을 감춘 거라면 소문을 확인하러 갔을 확률이 높지 않겠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B가 정말로 호수에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닉의 말마따나 가능성은 있었다. A는 닉을 향해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곧장 걸음을 틀었다. 보답은 해달라고 외치는 닉을 두고서 거침없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앞뜰을 지나 비탈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물비린내가 코를 찌를 무렵에야 멈췄다.
검은 호수는 어두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A의 흐린 시야로는 제대로 사위를 판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둑했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하기를 세 번, A는 슬슬 이런 곳에 B가 있을까 의심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B가 위험을 감수하고 탐험심에 불타는 인물이던가? 래번클로이니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껏 A가 알던 B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A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 안주머니에 걸어두었던 지팡이를 꺼내 속삭였다.
“루모스.”
미약한 빛이 지팡이 끝에서 번졌다. 갑작스러운 밝기에 눈을 살풋 찡그리는 것도 잠시, A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고민은 발목을 잡기 마련이었다. 웃자란 풀들을 헤치며 A는 꿋꿋하게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B가 검은 호수에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밤중에 걔 혼자 돌아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해.
예민한 청각에 물소리가 잡힐 때쯤, 그는 호수 언저리를 알짱거리는 반딧불이 같은 빛 알갱이들을 발견했다. 눈을 조금 더 좁히며 A가 걸음을 재촉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반딧불이, 혹은 밤에 빛을 내뿜는 마법 동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것의 움직임이 영 수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A가 혀를 찼다. 아무래도 밤중에 등불이 필요한 건 저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뭐하냐.”
“악!”
바닥을 헤집던 학생이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들고 있던 지팡이가 들판 쪽으로 휙 날아갔다. 놀랐네, 하고 칭얼거리는 학생을 두고서 A는 무심히 물었다.
“B 못 봤어?”
“B?”
놀란 가슴을 붙잡던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중 모를 시선이 A를 빤히 바라보다 사라졌다. 학생은 곧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흔들리는 불빛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
“아까부터 저쪽을 뒤지더라. 내가 발명한 수맥 탐지기로는 이쪽이 확실해서 도와달라고도 했는데,”
“간다.”
“잠깐! 지팡이 찾는 건 도와줘!”
자신을 붙잡는 학생의 머리를 쥐어박고서 A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애처롭게 아씨오 지팡이를 외치며 바닥을 기는 학생을 힐끔 곁눈질하다가 걸음을 뗐다. 일렁일렁 흔들리는 불빛을 향해서.
불분명한 윤곽이 어렴풋하게 잡힐 때쯤부터 A는 자신의 인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러 목을 가다듬는다거나 발을 조금 세게 굴렀다. 그들 사이 일종의 약속이었다. 서로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한 방어책 비슷한. B는 갑작스러운 접근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차피 규칙을 지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별 소요가 없다면 지켜주는 편이 좋다고 A는 생각했으므로, 그들은 서로에게 접근하기 전 항상 이렇듯 기척을 냈다. 이제는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땅과 하나가 된 듯 어기적어기적 기어다니는 B의 어깨를 툭 쳤다. 루모스 주문의 흐린 빛 너머에서 B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였다.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듯하던 그는 곧 무릎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대뜸 손을 뻗었다. 흙투성이 손이 얼굴에 닿았다. A는 그걸 뿌리치는 대신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이마를 지나 눈썹을, 콧등을 타고 입술과 턱까지. 가벼운 손으로 얼굴을 한번 훑고 나서야 B가 활짝 웃었다.
“정답. A.”
“흙 다 묻었네.”
“그럼 뿌리치면 되잖아.”
“……뭐 하고 있었어. 여기서.”
B가 실없이 웃었다.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달아오르는 것만 같은 낯에 A가 짧게 혀를 찼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그는 손을 내밀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B는 그 손을 잡았다. A가 조심스럽게 이끌면 B가 따랐다. 흙과 진흙에서 빠져나온 그들은 검은 호수에서 멀지 않은 들판 어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습기 어린 바람이 날카롭게 불었다. 겨울 특유의 메마른 냄새가 호수의 비린내와 뒤섞여 그들의 머리칼과 옷자락 곳곳에 묻었다. 커다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점멸하는 반딧불이 같은 루모스 주문을 멍하니 들여다보며 A는 잠시 침묵했다. 곁에 앉은 B가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어느 순간 그마저 멈췄다.
“뭐하러 왔어?”
B의 질문에 A가 얼굴을 찌푸렸다. 널 찾으러 왔다는 대답에 B가 어깨를 으쓱였다.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눈을 굴린다. 그리고 A를 향해 다시 말했다.
“연회장이 더 재밌을 텐데.”
“시끄러워서 별로야.”
“하긴.”
싱거운 응수를 끝으로 B는 입을 다물었다. 웃자란 풀이 손끝을 간질일 때마다 A는 B를 한 번씩 곁눈질했다. 바람결에 흐트러지는 머리칼이 어렴풋하게,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눈을 찌푸리는 대신 B가 지었을 법한 표정을 상상하며 A는 느리게 숨을 골랐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먼 연회장에서 흥겨운 노래가 하늘을 찌르고, 주홍빛 양초 불빛은 지나치게 길게 늘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A를 잠시 사로잡았다. 파도처럼 철썩이는 호수 수면, 가까운 곳에서 드문드문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웅성거림, 신발이 젖은 진흙과 돌을 밟는 소리. 그 모든 소음의 향연 속에서 A는 중얼거렸다. 고요하다. 그래서 평화롭다.
“어.”
쥐고 있던 지팡이에서 불빛이 꺼진 건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어둠이 덮쳤다. 암순응조차 마치지 못한 눈은 지팡이를 쥐고 있을 제 손조차 찾지 못했다. 눈을 살짝 찌푸린 A가 더듬더듬 손끝으로 지팡이를 어림할 즈음이었다. B가 돌연 입을 열었다.
“궤짝을 찾으러 왔어.”
A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묻힌 B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약한 윤곽만이 간신히 보이는 와중에도 그는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B의 표정, 나부끼는 머리칼, 더러워진 손끝과 신발 같은 것들을.
“소원을 이뤄주는 궤짝 말이야.”
“그래서?”
“한참 찾았는데 없더라. 소문은 소문인가?”
곁에서 노골적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A는 글쎄, 하고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곧바로 주위를 밝히지 않은 까닭을 헤아리기 위해 고민하다가 곧 관두었다. 들판 위에 털썩 소리를 내며 드러누웠다. 밤하늘이 밝았다. 별은 초콜릿케이크 위에 뿌린 슈거 파우더처럼 어둠 속에서 번쩍거렸다.
“그냥 들어가려고 했는데 네가 온 것 있지.”
B가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 식사 메뉴를 묻는다거나 이번 강의 재미 없지, 하고 넌지시 던지는 말보다도 가벼운 어투였다. 매서운 밤바람이 들이닥쳤기에 A는 옷매무시를 조금 더 가다듬었다. 로브를 벗어서 건네는 편이 나을까. B와 엇비슷한, 짐짓 태평한 어조로 물으며 A는 동시에 생각했다. 너도 나와 같을까. 갑작스러운 어둠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느라 되레 태연자약한 목소리를 입었을까.
“뜬소문인가 보지. 뭐 어쩌겠어.”
“그렇지. 어쩌겠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었는데?”
“음,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리멤브럴을 주세요?”
실없는 대꾸에 A가 키득키득 웃었다. B도 마찬가지였다. 맞바람을 맞으며 그들은 잠시 킬킬거렸다.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먼저 입을 연 건 B였다.
“그럼, A는?”
“나?”
“만약에 궤짝을 찾는다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
고민할 것도 없었다. A는 뺨을 간질이는 풀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디 보자. 먹는 순간 족제비가 되는 캔디.”
“어라.”
“거미를 부릴 수 있게 되는 강낭콩 젤리라거나…….”
“그런 건 위즐리 형제의 장난감 가게에도 있지 않을까?”
“그런가. 한번 찾아봐야겠어.”
“누구한테 먹이려고?”
“글쎄.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그들은 다시 한번 키득거렸다.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금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 칼바람이 스치며 뺨에 닿은 풀들이 일제히 몸을 떨 무렵, A는 몸을 뒤척였다. B가 앉아 있을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서 눈을 살짝 좁혔다. 그러면 마침내 윤곽이 잡혔다. 어둠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사람 특유의 어렴풋한 외곽을 천천히 눈을 좇으며 A는 말했다.
“슬슬 들어가지 그래. 추운데.”
“연회장은 영 정신없는데.”
“기숙사로 가. 독수리 동상이랑 밤새 퀴즈를 주고받는 것도 괜찮지 않냐.”
“음, 정말로 괜찮을지도.”
잠시 후 B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교복을 툭툭 치며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A도 마찬가지로 일어섰다. 그리고 지팡이를 꼬나쥐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루모스.”
다시 빛이 번진다. 흙투성이 얼굴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치자 B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도 역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연회로부터 한 달이었다. 겨울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위기가 해이해진 틈을 타 온갖 사건과 사고가 호그와트를 매일 같이 달구고 식혔다. A는 도무지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교수님의 고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힐끔 곁눈질이나 했다. 반쯤 열린 창문 너머에서 검은 호수가 수면을 흔들고 있었다.
한 달 내내 틈만 나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날 밤. 매서운 추위와 메마른 바람. 진동하는 물비린내와 풋풋한 풀 내음. 회전하던 별들과 보름달. 가장자리를 따라 맴돌던 지팡이 끝의 빛과, B.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 소원을 이뤄주는 궤짝.
B는 정말로 궤짝을 목표로 삼았던 걸까? 그랬다면 어째서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돌아갔을까? 턱을 괸 채로 A는 골똘히 생각했다. B가 어떠한 목적에 목을 매거나 열렬히 몰두하는 상상은 하기 힘들었다. 하기야, 애당초 너는 연회장이 정신없다고 말했지. 어쩌면 궤짝 자체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연회장을 나서기 위한.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연회장을 나서던 B의 뒷모습에선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거침없었다. 그 외의 말로는 설명이 어려웠다. 멈춰 선다면 누군가에게라도 붙잡힐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인 사람처럼. 연회라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뒤얽히기를 거부하는 사람처럼. 그것이 제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처럼.
끙, 하고 A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아마도 B가 느꼈을 감각을. A는 사람이 한꺼번에 뭉친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A의 눈에 인파는 일제히 움직이는 거대한 파도처럼 보였다. 예리한 오감이 수없는 흔적들을 주워섬기는 동안 A는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급류는 쏟아진 만큼이나 빠르게 몸을 물리곤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쫄딱 젖은 채 홀로 선 자신이었다.
이런 사소한 불편감을 공유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실제로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격은 어떻게 해도 좁히지 못하는 종류였다. 그 대상이 자신의 겪은 고난을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수록 더더욱. A는 때때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감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어림하고는 했다. 절제된 언어, 그 행간 사이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동질감이 무엇인지.
동경과는 달랐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외따로 떨어져 나간 듯한 이질감에 가까웠다.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A는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이번 강의를 끝으로 그들의 일과는 마무리될 참이었다.
기숙사에서 준비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냉랭한 추위가 그를 반겼다. 완연한 한겨울이었다. 살을 에는 냉기에 드러난 코가 급속도로 아파졌다. 해가 짧아진 덕분에 초저녁임에도 주위가 어두컴컴했다. 꾹 다문 입에서 피어난 입김이 하얗게 일며 시야를 가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비탈진 길을 내려다보며 A는 잠시 생각했다. 이게 현명한 짓일까. 현명과 우둔함을 논하기 전, A는 이것이 자신다운 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돌아갈까, 하고 그는 등을 돌렸다. 희미한 주홍빛과 온기가 복도에서 A를 반기듯 어름거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오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복도를 잠시 바라보던 A는 곧 등을 돌렸다. 그리고 비탈진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추위는 검은 호수로 다가갈수록 심해졌다. 근방에 다다랐을 무렵 살얼음이 낀 모래사장이 그를 반겼다. 철썩이며 아슬아슬하게 발치를 핥는 파도를 피해 A가 두어 걸음 물러났다. 한 달 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지팡이 끝에서 발하는 희미한 빛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한 달은 뜨겁던 감자가 식어 빠지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하다못해 지금은 겨울이었으니 그 속도가 더욱 빨랐을 것이다.
검은 호수는 칠흑 속에 잠겨 있었다. 깊은 어둠에도 굴하지 않고 A가 지팡이를 뽑았다. 루모스, 하고 작게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흔들자 곧 끄트머리에 빛이 맺혔다. 작았지만 주위를 둘러볼 만큼은 되었다. 희미하게 점멸하는 지팡이를 쥐고서 A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틈틈이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궤짝? 사람? 그도 아니면, B?
기실 궤짝을 향한 열의가 모두 식어 빠진 지금, B 또한 궤짝에 관한 소문을 잊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애는 애당초 무언가를 깊고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주위에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고 발소리조차 제 것 하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고 A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냉랭한 추위가 손끝을 얼려 자꾸만 욱신거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나. 여긴 춥고 차가운데. 희미한 주홍빛과 온기가 감도는 복도를 지나서 안온한 기숙사로. 비록 그곳에서 A는 빛바랜 시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 추위보다는…….
“으악!”
상념에 잠긴 발을 무엇인가가 잡아챈 건 그때였다. 균형을 잃은 몸이 미끄러지며 A가 그대로 넘어갔다. 쓰러지던 A의 머릿속을 스친 건 검은 호수였다. 그는 가장자리를 따라서 걷고 있었다. 이렇게 엎어진다면 꼼짝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버리고 말 테다.
나오지 말 걸 그랬어! 뼈저린 후회에 통탄해하며 A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온몸을 적실 차갑고 비린내 나는 호수 물을 기다렸다.
하지만 웅크린 A를 반긴 건 뼈를 깎는 추위나 질척한 물이 아니었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다급한 외침과 함께 몸이 둥실 떠올랐다. 허공에서 둥실둥실 배회하던 A는 곧 수면과 조금 떨어진 뭍에 안정적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두 손을 내려다보며 잠시 눈을 끔뻑였다. 젖지 않았다. 두 손, 두 발에 옷까지 전부 멀쩡했다. 게다가. 미약한 당혹감과 함께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루모스의 흐린 빛 속에서 어름거리는 익숙한 윤곽을 더듬었다.
“A?”
B였다.
A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B를 올려다보았다. 팔랑팔랑 다가온 B는 곧 A의 옆에 풀썩 앉았다. 맞닿은 어깨에 머리를 슬쩍 기대며 B는 A를 힐끔 올려다보았고, 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고는 말했다.
“웬일이야? 검은 호수에는.”
“너야말로. ……길이라도 잃었어?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호그와트에 새 유령 식구가 생긴 건가.”
“글쎄. 어떨 것 같아?”
B가 키득키득 웃었다. A는 잠시 눈을 굴렸다. 짧은 망설임이 앞섰으나 그는 곧 머리를 저어 머뭇거림을 털어냈다. 그리고 웃는 B를 향해 대뜸 물었다.
“찾으러 왔어? 궤짝.”
눈을 동그랗게 뜬 B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노란 잔광으로 덮인 순진무구한 얼굴이 A를 올려다보았다. 맹한 눈이 세 번쯤 깜빡였을 때 A는 얼굴을 가로저었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벌러덩 드러누웠다.
“수색 결과는?”
“안타깝게도 실패.”
“네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
가벼운 말과 함께 B가 곁에 풀썩 누웠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보름달이 눈이 시리도록 빛을 뿜고 있었기에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호수가 바람을 따라 철썩거리며 뭍을 때리는 소리, 잠잠한 풀벌레 울음이 귓바퀴를 타고 떨어졌다. 나부끼는 머리칼이 뺨을 스치는 탓에 A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B의 손이 지척이었다.
조금 놀랐지만 피하지는 않는다. 대신 눈을 감았다. B의 손길이 이마에서부터 콧대를 타고 턱으로 내려왔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너털웃음. 그제야 A는 눈을 떴고, 미약한 불빛에 의지해 B를 보았다. 희미한 빛에 이기지 못한 B의 윤곽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고 어둠은 짙으며 칼바람이 폐부를 할퀴지만. 그런 와중에도.
“생각보다 괜찮지? 검은 호수.”
“…….”
“교수님들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최고야. 들키면 그땐 좀 곤란해지지만. 당장 기숙사에 들어가라고 엄청 화를 내시거든. 지난주에는 중간에 도망치려다가 기숙사 점수까지 깎아 먹었지 뭐야.”
B는 웃고 있고 A는 혼자가 아니다. 이곳엔 그들 단둘뿐이기에 산발적으로 튀는 물방울에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침묵은 불편함에의 회피가 아니다. 입을 다물 때마다 A는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기껍다.
B도 그럴까?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