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를 잊어주세요.
*
B가 죽었다.
생전 B는 몸이 약했다. 어렸을 적부터 원체 그랬다. 잔병치레로 시작한 다양한 고비를 넘어왔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를 건 없었다. 여전한 제 몸을 모른다는 것처럼, 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B는 자기 자신을 혹사하듯 살았다. 그러니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임종을 지킨 건 조라쟈뿐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임종을 지키는 게 가능했던 사람은 그뿐이었다. 조라쟈는 죽어가는 B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제 품에 기대어 앉은 여자가 시시각각 얇아지고 흐려지는 것을 바라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제가 비치지 않는 눈을 감겨주며 조라쟈는 생각했다. 애당초 이곳은 B와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알렉산드리아는 번개 속성에 치우진 세계였다. 세계를 이루는 에테르 균형이 깨졌을 때 사람은 나약해진다. B는 견디지 못했다.
조라쟈는 눈 감은 B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불을 켜지 않았기에 사방이 어두웠다. 칙칙한 어둠 속에서 B는 그늘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엷고 희미한 막이 그를 덮은 것 같았다.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다소곳이 모은 두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옅게나마 엿보였다. 조라쟈가 손을 뻗었다. B의 손등 위로 손가락이 배회했다. 딱딱하게 굳기 시작한 피부 위를 스치듯 지나친 직후. 조라쟈가 불에 덴 사람처럼 두어 걸음 물러났다. 비늘이 떨렸다. 거친 소리가 났다.
B는 깨지 않았다. 두 눈을 감은 채로 딱딱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마지막 열기를 품고서 저변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채 조라쟈가 B를 보았다.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며 속으로 뇌까렸다. 죽었다. B가 죽었다. 죽음이라는 게 없는 세상에서, 그가 죽었다.
이상한 일이다.
레귤레이터를 노려보던 조라쟈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방을 나서며 그는 B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유언이라고들 부르는 말이었다. B는 조라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미약한 힘으로 제 손등을 매만졌다.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마저도 벅차다는 것처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입을 몇 번 빠끔거렸지만 결국 B가 말한 건 문장 하나였다. 고작 단어 두 개였다. B를, 잊어주세요.
조라쟈가 우두커니 섰다. 그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일렁이고 울렁였다. 더할 나위 없이 또렷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이질적이었다.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직전까지 B가 잡고 있었던 손이었다. B의 눈을 완전히 뒤덮어 감겨주었던 손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발광체에서 백색 빛이 떨어졌다. 푸른 비늘에 산란했다. 조라쟈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하나하나 구부리다가 폈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기를 잠시, 다시 손을 편다. 마치 처음 보는 미확인 생물체를 구경하는 사람과 비슷한 태도로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잊어달라니. 레귤레이터를 머리에 달았기는 하지만 조라쟈는 B를 하늘 위로 보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혼을 표백하지 않고, B의 존재를 망각하지 않고 간직할 생각이었다. B의 유언은 어딘가 기이한 구석이 있었다. 혹여 알기라도 했던 걸까? 조라쟈가 기억을 삭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부탁한 걸까? 망각이라는 순리에 따르라고?
하지만 그들은 연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그토록 손쉽게 인정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이 알렉산드리아 왕국에서.
말로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확실하게 존재하는 이질감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조라쟈가 고개를 들었다. 억눌렸던 숨이 파, 하고 터져 나왔다. 눈을 부릅뜬 채로 그가 천장을 쏘아보았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찰나였다. 얼마 후 조라쟈는 고개를 떨궜다. 멈췄던 발을 뗐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아갔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었다. 돌아가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길고 까다롭게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멈춰 섰다. B가 잠든 방문 앞이었다. 문틈으로 죽음의 흔적이, B를 덮은 장막이, 그를 감싼 요람이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조라쟈가 문을 열었다. 다시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B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죽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당연한 걸까. 그렇지만 이곳은 알렉산드리아다. 삶과 죽음이 융합한 곳이다. 하나로 뭉치더니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 세상이다. 그런 세계에서도 죽은 자의 몸은 미동이 없는 게 맞을까.
조라쟈가 손을 뻗었다. B의 머리에 달려 있던 레귤레이터를 떼어냈다. 윤기를 잃은 머리칼이 손끝에서 부스스 떨어졌다. 흐트러진 머리칼이 감은 눈을 덮었다. 조라쟈는 말없이 손끝으로 B의 머리를 정리했다.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은 오히려 빳빳한 볏짚과 같은 느낌이 났다. 뺨을 감쌌다. 차가웠다. B가 누운 침대보다도 냉랭했다. 딱딱했다. 안에 들어찬 것이 사람의 뼈, 피,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형용할 수 없는, 구체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눈앞에 떠다니는 것만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주어를 빼먹은 감각, 그 불분명하고도 흐릿한 느낌이 말해주고 있었다. 조라쟈가 천천히 물러났다. 떠나기 전 그랬듯이. 잠든 B를 내려다보았다. 속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는 얼굴을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흉통을 보았다.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들린 자그마한 레귤레이터가 있었다.
고민은 짧았다. 행동은 거침없었다. 선택하기로 결심한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며칠 후 조라쟈는 스펜을 찾았다. 스펜은 조라쟈가, 천하의 조라쟈가 자신을 찾았다는 점에서 놀라워하는 듯했다. 널 먼저 찾는 건 항상 내 쪽이었잖아, 하고 말하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스펜이 덧붙였다. 조라쟈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레귤레이터가 사람들의 기억을 삭제하는 원리.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걸 물을 줄은 몰랐는데.”
“대답이나 해라.”
낮게 깔린 목소리가 으르렁댔다. 스펜이 어색하게 웃었다. 뜻 모를 손길로 왕관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곧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기억을 삭제하는 면에 있어서 레귤레이터는 일종의 보관 장치야. 생전 착용자의 언행을 그대로 수집하지.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상자의 일생을 추적하고 모으는 셈이야. 그렇게 수집한 기억들은 보통, 망자를 하늘 위로 보내기 위한 동력으로 쓰여.”
“…….”
“으음, 실질적인 원리는 조금 더 복잡하지만……. 말하자면, 기억이라는 기름을 태워서 대상자가 탄 열기구를 띄우는 식이랄까.”
스펜이 설명했다. 잠시 뜸을 둔 그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스펜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B도. B는 살아생전 여분의 혼을 지니지 않았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말했음에도 B는 거부했다. 고개를 내젓고 어색하게 웃었다. 항상 서툴게 말을 돌렸다. 조라쟈는 캐묻지 않았다. 어찌 됐든 지금 B는 조라쟈님과 함께인걸요,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B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어찌 됐든 지금 B는. 기계병보다도 딱딱한 낯으로 조라쟈가 눈을 굴렸다. 직전 곱씹었던 문장이 목구멍을 꽉 막았다. 잘못 삼킨 생선 가시 같은 단어가 어딘가에 뒤섞여 있었다. 기도가 따끔거렸다. 손끝이 찌르르 울렸다. 번개를 두 손으로 움키는 것만 같은 통증, 혹은 감각이었다. 조라쟈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의아한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펜을 향해 말했다.
“기계병에게 네 환영을 덧씌우는 것도, 레귤레이터의 일환이냐?”
스펜이 잠시 멈칫했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찰나였다. 스펜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가, 다시 내저었다.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은 얼굴로 그가 말했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해. 일반 레귤레이터로도 가능하기는 할 거야. 모든 기계병에겐 환경 적응 프로토콜이 있는데, 그걸 적용하고 레귤레이터를 착용한다면…….”
스펜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조라쟈는 제 앞에 선 나약한 이왕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기도, 동시에 감조차 잡히지 않기도 했다. 스펜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가 풀렸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 애는 영원인이 되지 않았어.”
“잘된 일이로군.”
“정말로 그렇게 만들 셈이야?”
조라쟈는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높낮이 없는 말투로 되레 물었다.
“영원인과 무엇이 다르지?”
스펜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표정이 지워졌다. 무감한 눈으로 이왕을 내려다보던 조라쟈가 등을 돌렸다.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명징했다.
그날 저녁. 조라쟈는 기계병 생산용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었다. 똑같이 생긴 기계병들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조라쟈는 가장 가까운 기계병을 향해 다가갔다. 선택에는 일말의 고심도, 주저도 없었다. 전원부 뚜껑을 열었다. 스펜이 말했던 환경 적응 프로토콜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위치를 켰다.
기계병들에게도 레귤레이터는 지급되었다. 주민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일종의 블랙박스 역할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파손되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탓에 복잡한 내부에는 레귤레이터용 자리가 동그랗게 나 있었다. 전선을 파헤치고 심장부에 B의 레귤레이터를 연결했다. 뚜껑을 닫고 내려다보았다. 기계병의 얼굴에 로딩 중이라는 표시가 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계병의 표면이 지직거렸다. 스파크가 튀었다. 조라쟈는 기다렸다. 우두커니 선 채로. 마치 계시를 기다리는 신도처럼, 결말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형용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그렇기에 이해하기도 힘든 감정에 사로잡힌 채로 기다렸다. 숨이 막힌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무엇인가가 턱끝까지 차올라 일렁였다. 그 또한 알 수 없었다.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의 향연이었다. 물기가 피부에 스미듯 혼란은 조용히 왔다. 발치에서 일렁이다가 천천히 타고 올라왔다.
이것은 익숙했다. 조라쟈는 직감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외면했다.
불규칙적으로 빛을 발하던 기계병이 고요해졌다. 부드러운 감청색 머리칼이 흔들렸다. 툴라이욜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B만의 흔적이 느리게, 아주 천천히 돋아났다. 앞뿔이 솟았다. 비늘이 돋쳤다. 감은 눈이 열렸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점을 잡으려는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B’가 웃었다. 손을 뻗었다. 인간의 체온을 맞추기 위해 발열이 일어난 ‘B’의 손은 따뜻했다. 차갑지 않았다.
이상했다.
여상 같은 미소를 띤 채로 ‘B’가 말했다.
“조라쟈님.”
B는 정말로 ‘B’였다. 그외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라쟈를 대했다. 죽음이 마치 거실 전등을 켜놓고 나오거나 장터에서 지갑을 깜빡 두고 오는 일상적인 사고처럼 느껴졌다. 여상처럼 조라쟈를 껴안고 사랑을 속삭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조라쟈는 자신을 끌어안는 B의 품을 거부하지 않았다. 제 머리를 살살 쓰다듬다가 입을 맞추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시스템 발열 때문인지, 제 착각인지, 아니면 정말로 생전 B의 온기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공식적인 업무가 멈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영혼 자원 시스템도, 비밀리에 이루어지던 연구도, 전부. 조라쟈가 거부한 것에 가까웠다. 하루는 단조롭게 흘러갔다. 매일 새벽 악몽에서부터 소스라치게 깨어 일어나 B를 찾았다. 그리고 제 곁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를 당겨왔다. 품에 닿는 금속질 표면을 생각하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썼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게 되면 그를 뿌리쳤다. 속절없이 물러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두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형용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 미지의 것에 압도되듯 짓눌려 고개를 저었다.
조라쟈는 B를 찾지 않았다. 그러니까, ‘B’가 아닌 B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했다. 문은 여전히 굳게 잠겨 있었다. 출입은 엄중하게 금지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왕국에서 무왕 조라쟈의 시야가 뻗치지 않는 곳은 없다시피 했기에 조라쟈는 알 수 있었다. B는 그 안에 있었다.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죽음 같은 잠, 혹은 수마 같은 죽음에 빠져 있었다. 그 사실을 하루하루 되새겼다. 되새기고 곱씹으면서 조라쟈는 곁에 앉은 ‘B’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대답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느 날, 어느 순간, 문득 중얼거렸다. 하지만 무엇에 관한 대답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조라쟈가 혼란스러워할 때면 ‘B’는 그를 껴안았다. 머리를 쓰다듬고 생각에 잠기지 말라고 속삭였다. 조라쟈님, B가 여기 있어요, 하고 읊조렸다. 생전의 B와 같았다.
아니, 아니다. B와 같다. 생전이든 사후든, 그것들은 B의 이름 앞에 붙을 단어들이 아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에게 생전과 사후란 불분명하고도 일시적인 하나의 상태다. 얼마든지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딱 떨어져 나뉘지 않는 것이다. 양분된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순리요 진리다…….
조라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려졌던 의식이 점차 또렷해졌다. B의 품이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불을 꺼둔 것을 보아 밤이거나 그에 준하는 듯했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감쌌던 B의 손이 맥없이 떨어졌다. 붙잡지 않는 것도 꼭 B 같았다. 대신 B는, 아니, ‘B’는 조라쟈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찡그린 눈에서 우려 섞인 불안이 느껴졌다. 눈이 마주쳤다. B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악몽을 꾸시는 것 같길래요.”
조라쟈는 대답하지 않았다. ‘B’의 얼굴에 불안감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주저하듯 입을 우물거리던 B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어, B 때문에 깨셨나요? 그런, 그런 건가요?”
조라쟈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 그는 보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웠기에 비로소 볼 수 있었다. B의 얼굴 위에 얇고 희미하게, 스미듯이 덮인 장막 같은 어둠을. B가 미간을 얼핏 좁혔다. 안절부절못하는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고개를 떨궜다. 결이 좋은 머리칼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얼굴을 가린 그늘이 짙어졌다.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조라쟈는 그 순간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하는 탄식이 들렸다. B가 허겁지겁 뒤따르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서 조라쟈는 B를 들여다보았다. 처음 만났던 날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다. B는 여전했다. 시간의 흐름에서 비켜난 존재처럼 ‘B’는 서 있었다. 다음 순간 조라쟈가 고개를 거칠게 털어냈다. 두통이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그가 크게 비틀거렸다. 머리를 쥐었다. 잇새로 신음이 튀어나갔다. B가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며 뛰어왔다.
‘B’의 손을 뿌리쳤다. 억센 힘에 그가 뒷걸음질 쳤다. 조라쟈가 거칠게 숨을 골랐다. 골이 통째로 울리는 것 같은 두통이었다. B가 그를 끌어안았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혹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얼굴이 B의 품에 파묻혔다. 뜨거웠다. 어디선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고도 가깝게 느껴졌다.
이튿날 조라쟈는 ‘B’와 함께 방을 나섰다. 따라오라는 말에 B는 망설이지 않고 뒤따랐다. 그들은 함께 걸어갔다. 향하는 내내 조라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B는 연신 주위를 힐끔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의식이 몽롱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도 같았다. 이성이 흐린 상태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동시에 그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발을 끌고 걸으며 조라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전의 B와도 이렇게 걸은 적이 있던가. B는, 생전의 B는 밖에 오랫동안 돌아다니지 않았다. 다름아닌 제가 허락하지 않았다. B는 제 불안을 이해했다.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조라쟈님 마음을 알아요, 하고 웃으며 스스로 족쇄를 찼다.
B가 조라쟈를 이해했듯 조라쟈 또한 B를 이해했다. 이해관계는 밀접하고도 촘촘한 그물처럼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었다. 생전의 B는 그에게 의문을 남긴 적이 없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은 물을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살아있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주어지는 법이었다. 그래. 살아있다면.
왕국 알렉산드리아에서 그건 일종의 특권이었다. 살아있다면 주어지는 기회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지 않으니까. 죽어도 되살아나니까. 깨끗하게 표백한 영혼 자원으로 다시 자신들을 구동하니까.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는 일들만이 일어났다.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는 사건만이 일어났다. 별의 순리조차 거스를 수 있었다.
죽음이라는 게 없었다.
단절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걸음을 멈춘 곳은 기계병 생산 구역이었다. 영혼 자원 관리소 바로 아래에 붙어 있는 장소였다. 특급 기밀 구역이기도 했다. 허락된 사람이 아닌 민간인이 발을 들이는 건 아마 처음일 터였다. 조라쟈는 생산 구역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자신이 계획하고 개조한 곳이었다. 스펜은 내심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B도 그랬을까. B를 처음 만났을 때 생산 구역은 이미 완공된 후였다. 조라쟈가 일부러 내보이지도 않았으므로 그는 생전 이런 기관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조라쟈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갑작스럽게 그는 제가 읊조렸던 단어를 집어 들었다. 생전. 혀끝에서 굴러가는 낯선 단어. 혀를 튕기듯이 발음하는, 삶과 직결되는 문자. 비늘이 희미하게 떨렸다. 미세한 소리가 났다.
생산라인을 등지고 B를 바라보았다. 조라쟈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입이 언뜻 벌어져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나지막이 아아, 하고 탄식했다. 탄성 같기도, 한숨 같기도 했다. 정체를 캐묻는 대신 조라쟈는 B를 불렀다. B가 고개를 숙였다. 눈이 맞았다. 그가 웃었다.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같은 미묘한 낯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들여다보다가 조라쟈가 말했다.
“툴라이욜라를 침공할 계획이다. 그들에게 내가, 이 조라쟈가, 알렉산드리아의 무왕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말하면서도 조라쟈는 자신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끝에서 뜨겁게 일렁이는 열기를 억누르려 그가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딱딱한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따끔거렸다. 불현듯 그는 떠올렸다. 미확인 생물체를 구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던 그날, 그 방을. 어두컴컴한 어둠을. 엷은 장막 같은 어둠이 감싸고 있을, 침대 위에 차갑고 딱딱하게, 살아 있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굳어 있을 B를.
생전 B는 유언을 남겼다. 고작 단어 두 개였다. 문장으로 헐겁게 엮여 있었다. 조라쟈가 제 앞에 ‘B’를 바라보았다. 아직 살아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의 초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B’는 완전한 B가 될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라쟈는 입을 열었다. 후회할 거라는 직감이 그를 강타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실 그는 수많은 순간을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같을 것이다. 결심과도 같은 형태였다.
“잊어달라던 말.”
“…….”
“그건 무슨 의미였지?”
‘B’가 눈을 크게 떴다. 느리게 깜빡였다.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폭발했다.
조라쟈가 손을 쓸 틈 같은 건 없었다. 가슴께 부분에서 불꽃이 튀더니 일순 불이 붙었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열기가 덮쳤다. 조라쟈가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불길과 연기를 피했다. 여진이 멎자마자 그가 허리를 폈다. ‘B’를 보았다. 얼굴이 찢어진 채였다. 살이 패이고 갈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찢어져 있었다. 투영이 깨진 액정 탓에 얼굴 반이 기계병의 매끄러운 은빛 금속이었다. 조라쟈의 시선이 떨어졌다. 연기는 가슴께에서 나고 있었다. 다가갔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처음, 이곳에서 ‘B’를 만들었던 날처럼, 전원부를 쥐어뜯었다.
전기가 튀는 회로가 드러났다. 시커먼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뜨거웠다. 오류가 난 모양이었다. 그래. 오류가. 아주 치명적인 오류가. 자각할 새도 없이 손이 움직였다. 연결해 두었던 레귤레이터를 쥐었다. 뜯어냈다. 힘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붉은빛으로 점멸하던 레귤레이터가 조라쟈의 손바닥에서 얌전해졌다. 환영이 사라졌다. 가슴을 꿰뚫린 채 기계병의 전원이 나갔다.
조라쟈는 기계병 앞에 우두커니 섰다. 새카만 재와 연기가 뒤섞여 하늘로 꼬불꼬불 올라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단전에서부터 무언가가 들끓고 있었다. 꿰뚫린 가슴 너머로 무언가가 일렁였다. 조라쟈가 손을 뻗었다. 기계병의 머리를 잡았다. 힘을 주었다. 놀라우리만치 손쉽게 으스러졌다. 스파크가 튀었다. 균형을 잃은 몸체가 무너졌다. 발치에 잔해가 떨어졌다.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그는 뇌까렸다. 형용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그는 느꼈다. 류우카였던 것을, 아니, 류우카의 탈을 썼던 그것을 내려다보며 조라쟈는 중얼거렸다. 생전. 사후. 이곳에선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단어.
류카를 잊어주세요.
역설적이게도 일상이 된 망각까지.
그 순간 조라쟈는 제가 찾아 헤매던 질문의 답에 가닿았다. 묻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너는 왜 죽었냐고. 유언이, 있지도 않은 단어들로 엮어 만든 문장이라는 것이 왜 하필 그런 형태여야 했냐고.
어차피 레귤레이터를 사용하는 이상 B는 사후 모두에게 잊힐 운명이었다. 그것이 진리고 순리였다. 그런데도 B는, 마치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는 듯하던 낯으로, 조라쟈에게 속삭였다. 잊어달라고. 진리며 순리를 따르라고. 하지만 그와는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알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해일 속에서 침몰하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B는 이해자였다. 조라쟈를 이해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들 사이에 몰이해가 있어서는 안 됐다. 돌이켜야 했다. 무저갱 같은 고독 속으로 다시 떨어질 수는 없었다. 조라쟈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 느껴졌다. 몸이 고동쳤다.
이곳은 왕국 알렉산드리아. 삶과 죽음이 융합된 곳. 무마할 수 있는 사건만이 일어나는 곳. 돌이킬 수 있는 일들만이 일어나는 곳. 단절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런 세상에서 B는 죽었다.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어떠한 가능성도 남기지 않고서.
이제 더는 질문할 수 없었다. 궁금해할 수도 없었다. 유언은, 그 헐겁고 느슨한 문장은 대관절 무슨 뜻이었냐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B의 죽음이 조라쟈의 기회를 박탈했다. 영원한 단절이었다. 몰이해였다. 숨통이 막혔다. 이것은 익숙했다. 조라쟈는 직감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외면했다.
은빛 잔해에 얼굴이 비쳤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이 거울처럼 조라쟈를 투영했다.
며칠 후 그는 군단을 이끌고 툴라이욜라로 출정했다. 함선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닫힌 문을 보았다. 갱도 같은 구멍을 보았다. 까만 눈을 보았다. 얇은 장막 같은 어둠을 보았다. 희미한 온기를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