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A는 괜찮아요.”
“하지만,”
“으응, 괜찮으니…… 말씀하세요.”
짧은 침묵이 남기는 기다란 흔적이 있었다. 선고는 보이지 않는 자상과도 같아서 하릴없이 웃음이 났다.
“삼 개월.”
“…….”
“앞으로 삼 개월입니다.”
*
계절이 불분명한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슬슬 겨울이었다.
스산한 복도는 기다랬고 또 침침했다.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난 동그란 창문들 너머에서는 불규칙적으로 번개가 내리쳤다. 끝무렵의 가을에 어울리는 냉기와 희미한 겨울 냄새가 침잠한, 상념에 빠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공간을 배회하듯 걸으며 A는 절실히 곱씹었다. 의문은 미지하고도 지난해서 결코 눈 돌릴 수 없는 인력으로 그를 끊임없이 떠밀었다. 물음을 향해서. 난제를 향해서.
그러니까, 죽음을 앞두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뼈가 시리도록 몸을 적시는 절망이나 좌절, 허무함 같은 건 없었다. 이것은 부정과도 결이 다르다고 그는 생각했다. A는 분명히 문장을 빠짐없이 이해했다. 지금 그가 맞닥뜨린 고난은 오히려 납득이 선행되었기에 다다른 경유지와 비슷했다. 무작정 품은 아집보다는 차라리 필연적인 의문이나 궁극적인 목적에 가까운 것.
앞으로 삼 개월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A는 앞으로 삼 개월 후면 죽는다.
“A.”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A는 잠시 느슨해졌던 정신을 단숨에 일깨웠다. 이왕 스펜이었다. 자신을 빠르게 훑어내리는 시선에선 채 숨기지 못한 걱정이 묻어났다. 염려가 어린 낯에 A는 잔웃음을 터트렸고, 그러자 스펜은 눈썹을 찌푸리며 따라 웃었다.
“소식은 들었어. 몸은 좀 어때?”
“으응, A는 괜찮아요. 멀쩡한걸요.”
“그렇지만…….”
“아프지 않아요. 거동에 문제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하고 스펜은 말을 흐렸다. 그의 시선이 A의 레귤레이터를 짧게 주목하고는 떨어져 나갔다. A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머리에 달린 자그마한 장치를 손끝으로 굴려보았다. 딱딱하고, 아주 조금 뜨거웠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듯 미약한 기계음이 났다.
계절이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 삼 개월.
삼 개월 후면 A는 이 장치 안의 존재가 된다. 마치 장인이 정성 들여 작업한 박제품처럼 새로움을 잃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영구해질 것이다.
정말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명확히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A는 무녀였다. 사람들의 둘도 없는 소원에 경청하는 것이 A의 역할 중 하나였다. 그들이 강한 원을 품게 되는 일은 대체로 몇 가지 갈래로 정리할 수 있었는데, 개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빼놓을 수 없었다.
A는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알았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았다. 그 불가능성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알았다. 재회와 재현의 불능이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처절함의 최초이자 최후의 목격자였고, 죽음을 대항하려는 반역자들을 숱하게 보아온 책사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모두가 실패하는 것을 바라본 방관자였다.
죽음이 멀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그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주 잡은 손끝에 힘을 주면서, 마찰하는 살결에 집중하면서, A는 벼락 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보랏빛 뇌우로 가득 찬 하늘에 천둥이 칠 때마다 제 앞에 무릎 꿇은 채 망자를 되살려달라고 부르짖던 아우성을 떠올렸다.
제 죽음에도 누군가는 그렇게 슬퍼할까? 생명의 단절에는 필연적으로 그런 처절함이 깃드는 걸까? 애당초 A 자신이 그것을 바라기나 하는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A는 생각했다. 신생 알렉산드리아 연왕국에서 죽음이란 영원한 단절이 아니므로. 하지만 현상과 그것을 정의하는 단어 자체에서 비롯되는 어감, 낱말을 이루는 획과 여백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은 A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기실 그의 모든 걱정은 단 하나의 존재를 향했다.
“A가 죽으면, 조라쟈님의 기억도 지워질까요?”
포갠 손이 서로를 강하게 움켰다.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A가 중얼거렸다. 스펜은 침묵했다. A는 멈추지 않고 이어 물었다.
“A가 죽으면, 조라쟈님은 슬퍼하실까요?”
“죽는 게 아니야. 구름 위로 올라갈 뿐이야. 알잖아, A.”
“구름 위로…….”
스펜의 말을 곱씹으며 A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뇌운으로 가득 찬 하늘 탓에 구름이 숨긴 광경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때마침 하늘에서 보랏빛 번개가 내리쳤다. A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후회 없이 지내고 싶어요.”
“응.”
“해보지 못한 것, 보지 못한 것, 해보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그런 것들, 남겨두고 싶지 않아요.”
“응.”
“조금은, 으응……. 욕심을 부려도 되겠죠?”
스펜이 어색하게 웃었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A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역시 미련 같은 건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제아무리 구름 위로 올라갈 뿐이라지만 A는 겁쟁이였다. 비행 같은 걸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저, 도와주실 수 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스펜을 향해 A는 웃으며 말했다.
“조라쟈님이랑 같이, 눈을 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전부 저질러 버려야겠다고 A는 다짐했다.
복잡한 표정을 지은 스펜이 잠시 고개를 떨궜다. 맞잡은 두 손을 오랫동안 문지르던 그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고, 망설임이 묻어나는 느린 목소리가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눈이라는 것 말이지.
“여긴 번개 에테르로 편향된 세계야. 만능 물질인 일렉트로프에 얼음 속성을 주입한다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번개 에테르에 잠식되겠지. 내리는 데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길지는 않을 거야.”
“괜찮아요. 그 정도여도 괜찮아요. 아주 짧더라도 괜찮으니까.”
“으음, 그렇다면야…….”
스펜의 승낙에 A가 웃었다. 그는 상상하고 있었다. 조라쟈와 함께 마주하는 눈을. 뇌운으로 뒤덮인 하늘에서 내리는 흰 싸라기들을. 조라쟈님은 눈을 보신 적이 있을까? 그분은 항상 A보다 더 멀리, 더 넓은 곳을 향하기에 분명 A가 보지 못한 광경을 셀 수도 없이 봐왔을 것이다. 거기에 눈이 있을까? 세상이 희게 물든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입체가 되어 사람을 압도하는 그 순간을, 조라쟈님은 겪어본 적 있으실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를 때였다. 떠나지 않은 스펜이 한 걸음 다가왔다. 다소 망설이는 듯한 태도로 그는 입을 몇 번 여닫았다. 불온한 시선이 창문 바깥을 향했다가 곧 A에게 기울었다. 의문스러운 태도에 A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던 순간에야 스펜은 물었다.
“그거면 돼?”
“네에?”
“너는 그거면 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A는 잠시 눈만 끔뻑였다. 그건 무슨 의미냐고 되묻기도 전 스펜은 고개를 내저었다. 망설임이 묻어나던 낯은 사라지고 말끔한 이왕의 표정이 덧씌워졌다. 상냥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얼버무린 스펜은 곧 등을 돌렸다.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스펜의 뒷모습을 A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상념은 궤적을 좇는 시선만큼이나 길게 이어졌다.
그거면 되는 거야?
이왕의 말을 아무리 혀로 굴려봐도 정답을 알 수 없었다. 미지한 물음이 주는 낯선 분리감은 A에게 멀미를 일으켰다. 어지러운 머리를 짚고서 고개를 내저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배회하던 시선은, 그러나 창밖에서 뇌우가 내리치는 순간 그곳을 향해 명확히 고정되었다.
진보라 번개. 거기에 잠식된 세계. 엄습하는 겨울과 조라쟈님.
정답을 적지 않은 빈칸을 여백으로써 남겨둔 채로 A는 발을 뗐다.
준비는 의외로 진전이 빨랐다. 눈을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된 계획은 이왕의 도움 아래에 착실히 진행되었다. A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질 거라는 의사의 불길한 예고와는 달리 시종일관 팔팔했기에 그는 더더욱 망설이지 않았다. A는 온종일, 마치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을 만끽하는 것처럼 뛰어다니거나 솔루션 나인을, 나아가 헤리티지 파운드를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들의 계획은 실로 단순했는데, 아무렴 애써도 번개 에테르로 가득 찬 헤리티지 파운드에 통째로 눈을 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차라리 특정 구역을 지정하여 제설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얼음 에테르를 유도한 일렉트로프를 뇌운 너머로 쏘아 올린 후 외부에서 에테르를 주입해 균형을 깨트린다면 그것을 전기 신호로 받아들인 일렉트로프가 눈을 생성하는 원리라고 연구원들은 설명했다. A는 반을 알아듣고 반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체로 이해했다는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렉트로프에 얼음 속성 에테르를 주입하는 것, 그 속성을 고정하는 것, 눈이 내리게 유도하는 것. A는 이왕과 그 휘하의 연구자들이 빠른 속도로 완성해 나가는 이론의 최초 목격자를 자처했다. 코앞에서 목격한 그들의 분투는 실로 신통방통한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던 이론은 열흘이 채 지나기도 전 첫 번째 시연을 가졌다. 실험실 내부였고, 정제된 공간이었다.
실험은 신중하고도 정직하게 이루어졌다. 정제 일렉트로프 하나에 얼음 속성 에테르를 주입하는 과정을 A는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사람이 오십은 족히 들어갈 널찍한 공간임에도 소속 연구원 대여섯과 A는 손바닥만 한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사면에 투명한 벽을 세운 상자 안에는 청보랏빛 물체가 떠다녔다. 원통형 일렉트로프였다.
“에테르 주입합니다.”
연구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투명한 상자 안에서 부유하던 일렉트로프를 향해 실금 같은 에테르가 이어졌다. 숨소리가 잦아들었다. 긴장한 태가 나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A는 숨을 참았다. 시간이 꼭 끈적한 토피처럼 늘어난 것만 같다고 생각하면서 숨을 입에 동그랗게 머금고 두 손을 꾹 쥐었다. 그리고 하나, 둘, 셋.
“와아!”
일렉트로프가 작은 폭죽처럼 터졌다. 불꽃을 대신해 내리는 건 희고 반짝이는 먼지였다. 그것들이 상자 바닥에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을 때 연구원들이 몸을 물렸다. 그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바닥을 마주치며 기쁨을 나누는 동안 A는 상자 안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하얗고, 작고, 희미했다.
“성공인가요?”
A가 그렇게 묻자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안정화 작업뿐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아무래도 공간 하나를 메울 만큼의 일렉트로프에 에테르를 대량으로 주입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하고 덧붙였다. A는 이해했고, 그래서 떠나는 연구원들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상자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갈 때까지. 더는 눈이 내리지 않게 될 때까지.
조라쟈님이 좋아하실까? 저린 손끝을 문지르며 A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실 거야. 분명해. 조라쟈님은 A와는 달리 투랄 대륙 곳곳을 다니셨지만, 여전히 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라쟈님은, 하고 A는 중얼거렸다. 조라쟈님은 A가 주는 선물이라면 뭐든 좋아하실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로?
A가 질끈 가슴께를 쥐었다. 입에 머금었던 동그란 숨이 이제는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만 같았다. 속이 울렁이는 바람에 그는 잠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눈앞이 캄캄해지자 비로소 A는 인정했다. 무언가가, 아주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A의 마음에 잔떨림을 일으켰다. 요동치는 마음이 슬금슬금 그의 발목을 잡아채려고 했다.
이것이 어떤 종류의 망설임인지 A는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나 숨이 막혔고, 그것과 똑같은 강도로 가슴이 아팠다.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병증과는 무관한 통증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병과는 별개의 고통이, 딱딱하게 굳은 밀랍보다도 단단한 형태가 되어 심장을 한 겹 감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뻗은 가시가 마침내 A를 사방팔방 찔렀다. 끄집어낼 수 없도록 깊숙하게 박힌 지금에야 A는 그 사실을 간신히 깨달았다.
이건 무엇일까? 이토록 꽉 찬 알맹이를 지니고도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A는 숨을 들이켰고, 잠시 참았고, 다시 내쉬었다. 두 손을 질끈 쥐었다가 가슴팍 위에 올리기도, 고개를 숙여 얼굴을 품에 묻기도 했다. 그러나 종내엔 그 모든 행위가 무의미했음을 인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건 예전부터 간직해온 소원이었다. 그는 겨울을 여러 번 지냈지만 눈을 본 적은 없었다. 툴라이욜라뿐 아니라 투랄 대륙을 통틀어봐도 눈은 희귀했다. 기껏해야 워코 조모 산봉우리 정도일까. 따라서 그에게 계절이란 현상이라기보다는 시기였다. 달력상으로 이쯤 되었으니 이런 계절이겠지, 하는 어렴풋한 자각만 있을 뿐 또렷한 변화를 체감한 적은 드물었다.
그래도 A는 보고 싶었다. 함빡 내리는 눈을. 기왕이면 조라쟈와 함께. 구름 위로 올라가기 전에.
애당초, 겨울이 코앞이지 않은가.
명징한 사실은 지나치게 간결하여 그 어떤 행간을 용납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틈새를 비틀어 열고 여백을 샅샅이 뒤지는 일, 그 안에 숨겨진 제 진의를 파악하는 행위 같은 것엔 도무지 익숙하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연구원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면서 A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엄밀한 수색은 때때로 통증을 수반한다. A는 더는 아프고 싶지 않았다.
그래, 맞아, 하고 걸으며 A는 중얼거렸다. 복도는 여느 때처럼 길었고 그곳에 선 사람은 A뿐이었다. 발치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농익어 짙었고 창밖에서는 여상처럼 번개가 쳤다. 대지를 내리치는 강렬한 뇌우가 그의 낯을 두 쪽으로 가르듯 했을 때 A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주먹을 그러쥐고서 그는 중얼거렸다.
“아프고 싶지 않아.”
육체적인 한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겪어본 적 없는 이들은 모를 것이다.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A는 고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최초의 경험자였다. 굳어가는 손끝과 심장에서부터 균열처럼 퍼지는 통증에 A가 천천히 허리를 수그렸다. 벌어진 입에서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던 밭은 숨이 이윽고 흐느낌으로 변하던 순간 다리가 꺾였다. 손바닥이 가장 먼저 땅을 짚었다. 뒤이어 무릎이 아픈 소리를 내며 단단한 바닥에 부딪혔다. 머리칼이 쏟아지며 시야를 가렸다. 숨이 떨렸고 몸은 공명했다.
삶이 수반하는 필연적인 고통의 거부.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인생을 향해 도모하는 궁극적인 반역을 일컬어 부르는, 죽음. 그러나 투쟁에는 언제나 여파가 뒤따르기 마련이며, 생사의 문제쯤 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파도에 그치지 않는 해일이 되어 우리를 집어삼키기 마련이어서.
멀어지는 의식과 시끄럽게 울리는 기계음,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A는 생각했다. 무서워.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였다. 힘이 빠진 손목에 감긴 헐거운 감각에 A는 눈을 굴려 시선을 내렸다. 이불 위에 놓인 손, 그 주위를 감싼 족쇄는 채 닫히지 않고서 그의 손목을 타고 걸친 채였다.
조라쟈는 그 옆에 있었다. 땅에 두 발을 디디고서. A를 내려다보면서.
“조라쟈……님.”
“말하지 마라.”
조라쟈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낮게 잠긴 목소리였기에 A는 그가 자신의 예상보다도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음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우두커니 A를 내려다보기만 했다는 사실을 더듬어 알 수 있었다. 시선이 다시 족쇄를 향해 떨어졌다. 잠그지 못한 구속구는 A의 미세한 움직임을 따라 요란하게 절그럭거렸다.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공기가 사늘한데도 덮은 이불은 따뜻했다.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불 에테르를 주입한 일렉트로프 담요를 얇게 덧씌운 덕이었다. A는 이것이 누구의 손길인지 잘 알았다.
“조라쟈님.”
행동을 부추기는 가파른 깨달음은 바로 그런 종류였다.
조라쟈가 고개를 저었다. A는 몸을 일으켰다. 몸을 쪼개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그는 반사적으로 입안을 씹었다. 거칠게 헛숨을 삼키며 쓰러지려는 몸을 누군가가 지탱했다. 쏟아지는 머리칼이 갈라진 틈, 그 사이에서 A는 보았다. 벌어진 입과 떨리는 눈. 염려의 또 다른 형태일 미동하지 않는 숨을.
“죄송, 해요.”
“너는,”
조라쟈가 순간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A에게 분노하거나 울분을 토하는 대신 몸을 움직였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조라쟈의 손길을 따라 A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반듯하게 눕고서 A는 거친 숨을 몇 번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찻잔에 남는 은은한 열기처럼 통증은 끈질기게 잔류했다.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몰랐다. 떨어지려는 조라쟈의 손가락을 향해 손 뻗은 건.
“손, 잡아주세요.”
“…….”
“죄송해요…….”
A는 침묵했고 조라쟈는 뿌리치지 않았다. 대화는 없었지만 A는 직감했다. 조라쟈는 알고 있었다. 소리 없이, 그러나 재빠르게 엄습하며 A를 덮고 있는 죽음을.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영혼 자원을 사용해라.”
“…….”
“죽지 않아도 돼.”
그런데도 조라쟈는 중얼거렸다.
그제야 A는 심장을 옥죄던 압력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무녀로서 그는 생명을 경시하지 않고 삶과 죽음을 존중키로 맹세했다. A에게 레귤레이터란 쓸모 있는 도구라기보다는 조라쟈의 불안을 잠재우는 조건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이 레귤레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또한 쇠약한 육체로 인한 죽음에서 레귤레이터와 영혼 자원은 별다른 쓸모를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명명백백한 진실은 곧 가능성의 배제였다. 설령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A는 레귤레이터를 사용해 살아남겠기를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메마른 목소리로 조라쟈가 중얼거린 이 찰나의 순간에, A는 생각했다. 가능할까? 영혼 자원과 레귤레이터, 죽음을 향한 그 모독적인 반역이 이 지긋한 공포에서 자유롭게 할까?
바로 그 질문이 A를 서글프게 했다. 두렵게 했다. 분노하게 했으며 고통스럽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후련하게 했다. 응어리진 밀랍 같은 마음을 산산이 깨부수는 예리한 낙엽의 잎맥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A는. 죽는다는 바로 그 말이. 긍지 어린 맹세와 살아온 삶의 자부심마저 내던지게 할 만큼 통렬하게.
“조라쟈님.”
“…….”
“A가, 선물을 준비했어요. 우리, 같이…… 보러 가요.”
A가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으키려는 몸을 부축하는 손길이 있었다. 땅에 발이 닿기 전 몸이 들렸다. 한 손으로 A를 안아 든 조라쟈는 그를 내려보지 않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조라쟈는 묵묵히 움직였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으며 흐르는 침묵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흔들리는 숨과 척추를 타고 흐르는 통증, 가까운 죽음으로부터 엄습하는 냉기에 몸을 잘게 떨면서 A는 조라쟈의 품에 몸을 조금 더 묻었다. 눈을 감고 집중하면 등을 받친 단단한 표피 너머에서 박동하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A가 선택하고 조라쟈가 이끈 그들의 도달점은 한 연구실이었다. 넉넉잡아 사람이 오십은 들어갈 만큼 컸고, 또 추웠다. 안에서 두꺼운 겉옷을 덧입은 연구원들이 저들끼리 삼삼오오 떠들었다. 조라쟈와 A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연구실은 그 온도만큼이나 차가운 침묵에 사로잡혔다. 연구원들은 입술을 옹송그린 채 무왕의 눈치를 보았고, 조라쟈는 우두커니 선 채로 A를 내려다보았다. 날벼락을 맞은 심정일 연구원들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품을 때였다. 이왕이 나타난 건.
“조라쟈. ……그리고 A.”
연구원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스펜은 잠시 말이 없었다. 조라쟈는 스펜을 힐끔 곁눈질했지만 그뿐이었다. A를 내려줄 생각도, 저들과 대화를 나눌 마음도 없는 듯했으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A의 몫이었다. 걱정스러운 낯이 된 스펜과 눈을 마주치며 A는 말했다.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어김없는 사과였다.
“죄송해요.”
“아니야. 그런데 이건…….”
“지금……. 준비한 것, 지금 볼 수 있나요?”
스펜의 뒤에서 주춤거리던 연구원들이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글쎄, 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던 스펜이 슬쩍 어깨너머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A는 연구원들이 고개를 내젓는 것을, 스펜이 저들의 간절한 낯에 대답하듯 눈꼬리를 내리며 웃는 모습을 보았다.
“조금 힘들 것 같다는데.”
“아, 아직은 미완성이라서요……. 어느 정도 쌓일 만큼 내리려면 일렉트로프 내부 순환 시스템을 정립해야 하는데, 그게 준비한 양의 반밖에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용기 있는 연구원이 스펜의 말을 받았다. 그들의 만류에서는 염려가 묻어났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입매를 끌어올리며 A가 고개를 내저었다.
“부탁드려요. 미완성이어도, 응, 괜찮아요. 그러니까, 부디…….”
연구원들이 다시 한번 시선을 주고받았다. 짧은 침묵 후에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준비는 빨랐다. 연구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기를 사용해 일렉트로프들을 허공으로 높이 띄워 가렸다. 예상했던 상황과 다른 환경에서 진행하게 되었으므로 약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말했지만, 그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라쟈는 내내 침묵했다. A는 잽싼 연구원들의 손길과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일렉트로프들을 구경했다. 그때였다. 스펜이 말을 건 건.
“괜찮겠어?”
조라쟈를 한번 곁눈질한 스펜이 물었다. 가슴에 손을 얹은 스펜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A는 웃었다. 언젠가, 까마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스펜은 이와 비슷한 질문을 건넸다. 너는 그걸로 되는 거냐고. 같은 선상에 놓인 물음이었다. 이제 A는 대답을 알았다.
“괜찮아요.”
“…….”
“A는, 으응, 이걸로 충분해요.”
“준비 끝났습니다!”
때마침 연구원이 외쳤다. 스펜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돌아섰다. 그리고 그들은 둘이 남았다.
연구실 문은 닫혔고 이내 불이 꺼졌다. 짙은 어둠과 뒤섞인 적요는 질척거리며 그들을 적셨다. A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지직거리는 기계음을 들었다. 머리 바로 위였다. 올려다본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튀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렸다. A는 기다렸다. 참을성 있게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더 튀었을 때 A는 속으로 숫자를 셈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와아…….”
부스러기 같은, 먼지와 닮았으나 반짝이는 싸라기가 느리게 떨어졌다. 첫 눈송이는 A의 콧잔등에 내려앉아 녹았다. 얼어붙은 부슬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A는 천장을 향해 손 뻗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은 까맣고 고요한, 그러나 하얀 눈이 내리는, 조라쟈님과 단 둘이 존재하는 공간.
“이건…….”
“눈이에요, 조라쟈님. 눈이 내리고 있어요.”
손끝에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세상을 희게 물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희미한, 사람에게 닿자마자 녹아 없어질 만큼 작았지만 그래도 눈이었다. 옅은 빛마저 산란하며 난분분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A는 손을 뻗었고, 더 높이, 더 간절하게 손을 뻗었고, 동시에 조라쟈의 팔을 더욱 강하게 붙잡으면서, 생각했다. 이거면 돼. 같은 광경을 보았으니, 이거면 되는 거야.
“이건 가짜예요. 알아요. 으응, A가 만들어달라고 졸랐는걸요. 하지만…….”
지금, 내리는 눈을 향해 손 뻗는 지금에야 비로소, 그는 떠올렸다. 눈을 보고 싶다는 마음. 조라쟈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그 간절함. 그리고 때때로 마음이 일으키는 기적과 절망을 앞지르는 희망은, 틈새를 비틀어 열어 여백을 낱낱이 뒤지는 대신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자연히 드러나는 진의 같은 것이었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A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진짜 눈을 보여드릴게요. 정말로요…….”
“난,”
“두려워요. 하지만, 으응, 믿어요. 분명, 분명히…… 이건 끝이 아니라는 걸…….”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구름 위로 올라가게 되어도, 눈이 되어 내려올게요. 그렇게 조라쟈님과 함께할게요.
속삭이며 A는 인정했다. 이것은 작별이었다. 영원한 이별에 고하는 최후의 인사였다. 돌이킬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현상에 맞서는 궁극적인 준비였다.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닥쳐오는 해일 같은 눈보라에 휩쓸릴 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A에게 계절은 현상이라기보다는 시기에 가까워서 그를 오래도록 헤매게 했다. 지금에야 그는 알았다. 영구한 봄도 끝나지 않는 여름도 불멸하는 가을도 녹지 않는 겨울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극히 자연스럽게 꽃이 피고 녹음이 만발하고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후덥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열매는 차근히 영글고 갈대와 벼는 고개를 숙였으며 그 인사를 따라 날은 추워져 눈이 내렸다. 풍족한 가을 뒤에 얼어붙은 겨울이 뒤따르듯 그네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이건 조라쟈를 향한 고별이요 A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이었다. 찬바람이 불어닥쳐 그들을 얼어붙게 할지라도 종내에 따스한 볕은 내린다는 것. 죽음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영원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보낼 지난한 겨울이 그들 앞에 도래했다. 하지만, 하고 A는 손을 뻗었다. 조라쟈의 손을 품에 끌어안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