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모드 토글 들여쓰기 토글
약 8천 자, 실제 작업물, FF14 기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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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b 2026.06.04.  14:13


“냐, 결심했어. 집을 살 거야!”


고즈넉한 돌의 집의 평온을 단숨에 깨부순 건 A의 우렁찬 선언이었다. 의자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던 야슈톨라와 위리앙제가 가장 먼저 고개를 갸웃 기울였고, 벽면에 기대어 서 있던 산크레드가 얼굴을 찌푸렸으며, 온갖 서적을 두고 말씨름하던 그라하와 르베유르 남매가 제각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지막으로 바깥에서 일을 보던 타타루마저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을 보며 A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갑자기?”


산크레드가 되물었다. 돌의 집을 박차고 들어온 내내 얌전하다 싶었는데, 이런 종류의 결과를 저 작은 머리통 속에서 대뜸 도출해 낼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고민에 시달려야 집을 사겠다는 결론이 나는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황당함을 애써 감추려는데 A는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는다는 양 대꾸했다.


“문제없지?”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문제야 당연히 없지만…….”


“집을 사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그럼 냐는 지금부터 집을 보러 가야겠어! 냐 집 마련 성공하면 연락할 테니까, 기다리시라!”


“잠깐, A,”


자리에서 일어난 A가 우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산크레드는 손을 뻗었고 알리제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지만 돌진하는 그들의 모험가를 막아서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돌풍이 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것만 같아서 산크레드는 그만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그러니까, A, 집이라는 건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게 아니야, 하고 뱉으려던 말이 끝내 목구멍 너머로 도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돌의 집에 내려앉은 황당한 침묵을 깬 건 타타루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모험가님, 괜찮으실까용…….”


타타루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새벽의 일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상상이 있었다. 누군가가 사기를 당하거나, 등쳐 먹힌다거나, 아니면 땅문서를 도둑맞는다거나. 물론 그 대상은 A가 아닐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주일지도 모르고. 하물며 A는 근래 영웅으로 불리며 좀도둑다운 면모를 많이 죽이고 다니기야 했지만, 뭐랄까. 지나치게 밝고 활달한 모습에서 자꾸만 오포오포 같은 면모가 엿보이는 그들의 모험가가 집을 사겠다며 무슨 대형 사고를 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건 A를 향한 개인적인 신뢰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래, 애정 어린 걱정에 가까운 것이다. 적어도 산크레드는 스스로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시선을 주고받는 새벽의 혈맹 일원 모두 그와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산크레드 워터스는 익히 잘 알았다.


“등쳐 먹힐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혹시 몰라. A도 집을 사는 건 처음일 거잖아! 아무리 출신이 출신이라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분야가 달라지면 역으로 잡아먹힐 때가 많다고 들었어. 그렇지, 산크레드?”


“그걸 나한테 묻냐. 뭐, A는 눈치가 빨라서 괜찮을 것 같긴 하다만……. 난 오히려 그 녀석이 모험가 전용 토지를 구매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게다가 세금 문제는 또 얼마나 복잡한데용! 그런 건 전문가가 있어도 시간이 걸리는데, 모험가님 혼자서 감당하시기엔 역부족일지도 몰라용.”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우려를 한마디로 정리한 건 야슈톨라였다. 그는 비운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산크레드는 새벽의 혈맹이 자랑하는 마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알 수 없는 불길한 직감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저건 그냥 미소가 아니었다. 구미가 진하게 당기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으레 짓곤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럼, 우리 중 하나가 가서 도와주는 것이 낫겠군요.”


“아! 그게 좋겠어. 이런 쪽으로 능숙한 경험자가 말이야.”


“기왕이면 모험가님의 돌발 행동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네용!”


“모험가 전용으로 나온 토지들의 장단점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영웅이 한 나라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나오는 파문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정치적인 밑 작업도 필수적일 거야. 그런 면에서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어.”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잠깐, 잠깐. 기묘한 분위기에 산크레드가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하고 얼버무리려는 그의 미력한 목소리는 그러나 곧 맥없이 꺾였다. 턱을 쓰다듬으며 골몰하던 알피노가 단박에 얼굴을 밝히며 외친 것이다.


“산크레드, 자네가 적임자겠군!”


“크흠.”


“……야슈톨라, 웃지 마라.”


“웃지 않았어요. 잠깐 숨이 헛나온 것뿐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그걸 웃음이라고 부른다.”


“그런가요?”


능글맞은 대꾸에 산크레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알피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 할 일이 있는데 말이지.”


“A보다 중요한 할 일이라니, 정말 중대한 일인가 보군.”


“이럴 때 보면 알피노, 너는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으응?”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피노를 뒤로 하고서 산크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쩐지 야슈톨라에게 휘말린 것 같다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지만, 뭐, 그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단숨에 자리에서 뛰쳐나간 A가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럼 다녀온다.”


“우리 영웅님을 잘 부탁해요, 산크레드.”


잠깐, 내가 또 눈치가 없었던 건가? 여전히 풀지 못한 의문에 갈피를 잃은 알피노를 등지고서 산크레드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희미한 야슈톨라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그는 문을 닫았고, 돌의 집을 나섰다.


A를 추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를 수소문하고 곳곳에 연락을 돌리자 그의 종적은 쉽게 잡혔다. 돌의 집을 처음 나섰던 시각으로부터 십여 분 후 산크레드는 라벤더 안식처로 향하는 보랏빛 나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라, 산?”


얼마 지나지 않아 쌍사단 단원 하나와 A가 나타났다. 제게로 달려오는 A의 두 손에는 아직 땅문서로 추정되는 양피지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산크레드는 조금쯤 안도했다. 그래도 무모하게 벌써 계약을 치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집 사겠다며. 도와주마.”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산크레드는 짤막하게 말했다. A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문장을 오래도록 곱씹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이내 완전히 소화를 마치고선 단숨에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타고 다다른 라벤더 안식처에서 A는 기다렸다는 듯 산크레드를 이끌고 다녔다. A의 손에 붙들린 채로 이리저리 나부끼며 산크레드는 깨달았다. A쯤 되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지금까지 계약을 마치지 못했다는 건 물리적인 까닭이 있어서라는 사실을. 에테라이트가 너무 멀다느니 장터가 가까운 게 좋다느니 집사 초인종이 너무 멀면 불편하다느니, 요구 사항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마음에 드는 집터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므로 그들에게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다음 구를 외치는 A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수밖에는.


열여섯 번째 구에서도 마땅한 터를 찾지 못했을 무렵 산크레드는 불현듯 이질감을 느꼈다. 앞장서는 A의 손짓대로 이끌려 가던 산크레드가 걸음을 늦췄다. 그리고 쌍사단 단원을 힐끔 곁눈질했다. 길잡이를 도맡은 그는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돌아가서 추가 수당이라도 주라고 언질을 둬야겠군, 생각하며 산크레드는 슬며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A를 향해 작게 물었다.


“대형 집 위주로 보는 것 같은데.”


“음, 냐는 집이 클수록 좋아.”


긍정이었다. 그러자 거기서 파생되는 또 다른 의구심이 있었다. 산크레드는 이것을 물을까 말까 한참이고 고민하다가, 모든 조건을 만족하지만 소형 집이라는 이유로 다음 구로 향하는 A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쌍사단 단원이 반쯤 우는 표정을 지었을 무렵 다시 허리를 숙였다.


“너, 돈은 있고? 대형 집은 터만 해도 오천 길이다.”


A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콧노래를 불렀다. 어떤 직감이 산크레드의 머릿속을 스친 건 바로 그때였다. 자신을 이끄는 손길에 따르지 않고 산크레드가 우뚝 멈췄다. 팔랑팔랑 앞장서던 A가 냑, 하는 특유의 소리와 함께 허우적거렸다. 균형을 잡기 위해 버둥거리는 A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산크레드는 다시 한번 물었다.


“A.”


“냐?”


“돈. 있지?”


산크레드는 A가 입꼬리를 올리는 것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쌍사단 단원이 저기, 저기요, 죄송한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 하고 애처롭게 중얼거렸지만 안타깝게도 당장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산크레드의 표정이 점점 굳는 반면 A의 얼굴은 점점 녹았다.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던 A는 곧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곤 작게 말했다.


“뭐, 문제가 되나.”


“너 정말이지…….”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대답이었다. 끙, 하고 앓은 산크레드가 제 이마를 짚었다. 이건 잘된 일인 건지, 뭔지. A가 수중에 돈이 있었더라면 벌써 집을 세 채는 계약하고 남았을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멀거렸다. 산크레드는 잠시 고개를 내저었고, 그게 당최 무슨 말이냐고 허망한 표정을 짓는 쌍사단 단원을 잘 달래어 멀리 의자에 앉혀두고서, 살금살금 도망치려던 A의 목덜미를 잡고 구석으로 조금 더 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동자와는 달리 잔뜩 뻣뻣해진 꼬리가 어설프게 퍼덕거렸다.


“그래서.”


“냐, 냐아?”


“문제가 되냐는 그거. 무슨 말이냐.”


A가 입을 오므리곤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사기 행각을 발각당했을 때 으레 짓곤 하는 낯이었다. 난감하다는 얼굴과는 달리 저 작은 머리통 속에서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온갖 생각이 순식간에 스치고 있을 터였다. 산크레드의 눈이 한층 가늘어졌다. 대답해, 하고 목소리를 깔자 A가 슬금 시선을 피했다.


“큰 집만 보러 다니지 않았어. 작은 집도 생각해 뒀어.”


“그럼 라벤더 안식처에선 왜 대형 위주로 돌아다닌 거냐.”


“갖고 싶으니까?”


이걸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솔직해서 장하다고 해야 할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버릇처럼 한숨을 내쉰 산크레드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A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에 몸을 내맡기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라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줄은 몰랐다. 이런 행위는 뭐라고 불러야 좋은 걸까. 집착? 미련? 갖은 단어를 골라 보아도 영 마땅치가 못해 산크레드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덧 저녁이었다. 해가 느리게 기울며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세상의 명도가 점점 낮아지며 사위가 부옇게 흐려지는 때. 라벤더 안식처 특유의 습하고 푸릇한 바람이 그들을 스쳐 지나갈 때 산크레드는 고개를 들었다. A는 그새 시선을 돌린 채였다. 그 끝에는 잘 꾸민 대형 집이 있었다. 문득 산크레드가 그를 살폈다. 두 손을 질끈 쥐었고, 입은 살짝 벌어졌으며, 동공은 활짝 열렸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머리칼이 나부꼈으나 그런 것 따위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야 산크레드 워터스는 자신의 패착을 직감했다. 여태껏 돌아다니면서도 그는 A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깨달은 것이 차라리 다행인 걸까? 잠든 아이를 깨우려고 먹은 마음만큼이나 부드럽고도 조심스럽게, 산크레드가 입을 열었다.


“애당초 말이다. 왜 집을 사고 싶어진 거야. 그것도 갑자기.”


A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선은 여전히 대형 집에 꽂혀 있었다. 돌아보지 않았으나 산크레드는 되레 그것이 일종의 허락 같다고도 느꼈다. 따라서 그는 멀리 떨어진 쌍사단 단원을 한번, 그리고 A가 바라보는 대형 집을 한번 곁눈질하고선 말을 이었다.


“네가 마땅히 지내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갑자기 거기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A, 집이라는 건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말고 할 만한 무게가 아니라는 건 네가 가장 잘 알 거다.”


“으음, 뭐.”


“궁금해서 그런다. 너를 돕고 싶어서. 이유가 뭐야?”


말을 마친 그제야, 마침표를 찍고 산크레드가 입을 다문 후에야, A가 고개를 돌렸다. 아주 느리게. 눈과 눈이 마주쳤다. A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하고 그는 의외로 순순히 입을 열었다.


“집이잖아.”


“…….”


“집은 쉴 곳이고, 가장 편안한 곳이고, 돌아갈 곳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기다리는 곳이야.”


가족. A가 그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산크레드는 옛적의 대화를 떠올렸다. ‘산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어.’


“그래서 냐도 가지고 싶었어. 기왕이면 큰 집. 드림 하우스 같은?”


그 말을 끝으로 A는 웃었고, 산크레드는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제 머리를 한번 헝클이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모험가라는 건 어딘가를 떠나와 방황하는 존재. 그렇지만 떠나온다는 건 결국 돌아갈 곳이 존재한다는 것.


이러면 내가 널 혼낼 수가 없잖아.


고민은 깊었고 결정은 빨랐다.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기야 했다. 산크레드는 잠시 미심쩍은 눈으로 쌍사단 단원을 돌아보았다가 A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다. A, 하고서.


“대형은 무리지만 중형까진 어떻게든 가능하게 해볼 순 있어.”


“냐아?! 진짜?!”


“될지 안 될지는 장담 못 한다. 네가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릴지 몰라. 그러니 네가 정해라. 할지 말지.”


A가 단숨에 눈을 반짝였다. 고개를 어찌나 열렬히 끄덕이던지 이러다간 목에 담이라도 오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명백한 긍정이었다. 산크레드는 하릴없이 나려는 웃음을 꾹 삼키고 몸을 틀었다. 그리고 여태껏 대기 중이던, 또는 휴식 중이던 쌍사단 단원에게 걸어가 말했다.


“카느 에 센나님께 연락 한 번만 넣어주면 고맙겠어. 영웅과 새벽의 혈맹 산크레드 워터스가 만남을 요청한다고 말이야.”


단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산크레드는 속으로 다짐했다. 역시 추가 수당 챙겨달라고 확실하게 말해둬야겠군.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였다. A와 산크레드가 만남을 요청한다는 말에 카느 에 센나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A는 산크레드의 당부대로 얌전히 앉아 있었고, 그러나 가끔 경험에 새겨진 본능에 따라 시기 적절하게 말을 한두 숟갈 얹었으며, 그런 모습을 토대로 삼아 산크레드는 제 앞에 선 카느 에 센나에게 열렬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어쩌면 설명을 빙자한 설득이었고 설득의 탈을 쓴 부탁에 가까웠다. 단지 카느 에 센나 또한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웠고, 게다가 산크레드는 중간중간 제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되짚느라 말을 더듬었지만, 어찌 되었던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지며 세상이 검붉게 물드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 그들은 마침내 라벤더 안식처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땅문서를, 다른 손에는 주택 건설 허가증을 든 채로.


“오오오!”


땅문서를 하늘 높이 치켜드는 A를 바라보며 산크레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완전히 진이 빠졌다. 요 몇 시간 사이에 지나치게 많은 일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산크레드의 활약과 A의 적절한 조력, 결정적으로 카느 에 센나의 너그러운 허락을 통해 그들은 대형 토지를 중형 값에 구매하는 데에 성공했다. 예상한 것보다도 큰 수확이었다. 비록 그에 따른 편두통과 약간의 멀미를 얻었지만. 슬슬 울렁거리기까지 시작한 속에 이마를 짚은 채로 산크레드가 A를 힐끔 곁눈질했다. 장터와 에테라이트가 가깝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집사 초인종이 있는 좋은 땅이었다.


“마음에 드냐.”


“완벽해!”


A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주택 건설 허가증을 받았으니 아마 일주일 안에 정말로 번듯한 건물이 들어설 터였다. 그때가 된다면 A는 정말로 돌아올 곳, 집이라고 부를 곳이 생기는 것이다. 고생을 좀 하기야 했지만 결과만 본다면 꽤 나쁘지 않군.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산크레드가 몸을 일으켰다. A는 여전히 제 토지에 관심이 팔려 있었기에, 그는 열렬한 호기심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외쳐 말했다.


“그럼 난 간다. 나중에 집 지으면 다 같이 집들이나 하자고.”


“잠깐, 산!”


그대로 발을 돌리려던 산크레드가 멈췄다. 왜 그래, 하고 몸을 돌렸을 때 산크레드는 보았다. 토지를 등지고서 A가 서 있었다. 검게 퍼지기 시작한 어둠을 뒤로 하고서 그가 활짝 웃었다. 휘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그를 바라보는 눈이 마법처럼 반짝였다. A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듯 활짝 웃었고, 또 말했다.


“집이 완성되면 말할게. 그러니까 냐 집에 놀러 와. 제일 먼저. 이것, 초대 맞아!”


뜻밖의 제안이었다. 산크레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고, 곧장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 직후에야 자신이 조금쯤 당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을 두어 번 여닫고서 산크레드는 되레 물었다. 괜찮겠냐. 제가 하려는 말에 감을 잡지 못한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는 탓에 산크레드는 뒤통수를 긁적이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먼저여도 괜찮겠냐는 거다.”


“왜 안 돼?”


“가족을 위한 곳이라며. 집이라는 건.”


이번엔 A 차례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이번엔 팔짱을 끼더니 다시 산크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대답하는 것이다.


“산이라면 괜찮아.”


그 목소리는 단단하고 한 치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산크레드는 그것이 숫제 선언과도 같다고 느꼈다. 새삼스럽게 A의 말이 떠올랐다. 산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하던 그 모험가는 가족을 위한 장소인 집에 거리낌없이 산크레드를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너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할까.


어떤 마음은 자각조차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산크레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잘. 그렇기에 산크레드 워터스가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A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말로써 공고히 약속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