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여물거든 뱃놀이를 가자. 버드나무가 드리운 연못에 배를 띄우고, 차양 밑에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자. 너울 치는 수면에 비치는 우리네 얼굴에 꼭 닮은 기쁨이 어려 있을 테니…….
*
끝에서 비로소 질문한다. 거짓이었을까.
작렬하는 여름 뙤약볕 아래 무릎을 꿇은 채로 버석한 땅을 그러쥔다. 끔찍한 살해였다. 천형죄인이라는 낙인에서 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일이 있었고, 또한 그보다 많은 일이 생길 것이다. 언젠가 무당이 점쳤던 팔자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 꿇은 채, 그는 질문한다.
거짓이었을까? 그 전부가? 모든 약속이?
피비린내가 난다. 머리가 어지러운 탓에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버거운 숨이 목구멍을 턱턱 막는 탓에 그는 가슴께를 쥐어뜯는다. 지옥 불에 불타는 것 같은 생생한 고통 속에서, 생리적으로 흐르는 눈물에 뺨이 젖는 와중에도, 그는 닿지 않을 물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어째서.
상냥한 사람이었잖아, 당신은.
다정했다. 진실로 그러했다. 망나니일지도 모른다는 걱정과는 달랐다. 흠잡을 곳 없이 번듯한 왕자였기에 더더욱 그가 왕실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문을 믿게 되었다. 삼왕자를 보고 나서야 그는 알았다. 특별한 사람은 태가 난다. 범인凡人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특유의 광채를 띤 채 찬란하게 빛난다.
특유의 시선이 제게 향할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옷자락 한번 스칠세라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걷기도, 담대하고도 서투른 몸짓으로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지. 돌이킬 수 없는 때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든다. 검붉게 물든 시야가 이지러진다. 입술을 질끈 악문 채로 그는 가슴팍을 그러쥔다.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당신의 웃음, 손길, 맞닿은 이마에서 느껴지던 상냥한 온기는 여태 그의 마음 안에서 꽃을 틔운 채다. 당신이 속삭였던 말들을 토양 삼아 아직도 피어 있다.
이를 짓씹는다. 떨리는 목소리가 바람을 타지만 폭죽처럼 터지는 소란에 힘없이 묻힌다. 죽음에의 공포가 명징하다. 목구멍을 강하게 틀어막은 듯 숨을 쉬기 어렵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괴롭게 하는 건 가슴을 틀어막은 답답함이다. 통증과 비슷한 박동으로 숨통을 쥐었다가 펴는 그것. 물렁물렁한 과실 같던 심장을 단단한 알맹이로 굳게 하는 것.
침잠해도 좋으니 배를 띄우고 싶다…….
멀리서 당신의 머리가 보인다. 여름 특유의 열을 머금은 채 부는 습기 어린 바람에 머리칼이 나부낀다. 채 가을을 맞지 않아 낮은 하늘을 찌르는 첨탑인 양 드높고 날카롭게 당신은, 당신의 머리는 솟아 있다.
그 순간 그는 미래를 간명히 점쳤다.
제 머리도 곧 나부낄 것이다. 드높은 성벽에서 불어닥치는 여름바람을 맞으면서. 혼조차 거두어지지 못하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 그 자체가 되어 이승을 떠돌 것이다.
그러나 서글픈 까닭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야.
입을 움직여 발음하는 순간 B은 ‘그’로부터 탈락脫落했다.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고 그를 억지로 당기는 것만 같은 압력이었다. 아차 할 틈도 없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B!”
A이 큰 소리로 외쳤다. 교실의 이목이 순식간에 몰리다가 흩어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B이가 졸았나 본데, 따위의 부산스러운 수군거림이 뒤따랐다. 자신을 힐끔거리는 아이들의 시선을 어색하게 흘리며 A이 B을 응시했다.
책상을 지지대 삼아 상체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팔과 팔 사이에 파묻혔던 얼굴이 느리게 드러났다. 오랫동안 눌려 있던 탓인지 뺨에 머리칼이 붙어 있었다. 잠기운에서 채 헤어 나오지 못해 연신 끔뻑이는 눈 위로 한낮의 여름볕이 따갑게 떨어졌다. 여전히 꿈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꾸벅꾸벅 조는 B을 향해 A이 한 번 더 말했다.
“일어나, B.”
빛없이 탁하던 눈동자에 그제야 이채가 돌았다. 눈을 쏘는 볕에 으엑, 하는 괴상한 효과음을 낸 B이 쭉 기지개를 켰다. 길게 앓는 소리와 함께 그가 늘어지는 하품을 했다. 그리고 시선이 맞닿는다. 입꼬리가 히죽 올라간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A은 퍽 난감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냥 눈 마주치고 웃었을 뿐인데도 그랬다. 뒤통수를 긁적이고, 눈을 찡그린 채로 한숨을 푹 쉰다. 그런 A을 관찰하듯 바라보며 B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상한 일이다. 제 웃음에 설렜다거나, 가슴이 두근거려서 놀랐다거나, 아무튼 그런 종류의 표정은 아닌데.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알 수 없는 곤란함에 스스로 휩싸인 것만 같다. B은 잠시 뺨을 긁적이다가 힐끔 시계를 곁눈질했다. 점심시간 끝나기 이십육 분 전. 아이들은 삼삼오오 저들끼리 모여 있었다. 창밖에서 찢어지는 매미 울음 사이로 운동장을 뛰노는 축구부의 외침이 연달아 뒤섞였다. 벽면에 붙어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머리칼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습하고 텁텁한 여름볕이 뺨을 쬘 때.
앞에 선 A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닮았으나 다른 사람이었다. 때에 맞추어 길고 검은 머리가 흔들린다. 내려다보는 두 검은 눈에 검붉은 이채가 언뜻 반짝였다. 크고 장성한, 어딘가 낯익은 누군가가 볕과 응달의 경계선에서 B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 그가 속삭인다.
계절이 여물거든…….
“뱃놀이…….”
“B!”
A이 외쳤다. B이 퍼뜩 눈을 크게 떴다. 맴, 하고 우는 맹렬한 매미 소리가 직전의 적요를 산산이 깨트린 것만 같다. 뺨에 와닿는 후덥지근한 공기에 놀라기를 잠시, B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너무 더워서 그런가. 아지랑이를 본 걸까.
“너 괜찮아?”
A이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B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멈칫했다. 으음, 하고 눈을 굴리다가 어깨를 으쓱인다. 책상에 턱을 괴고서 A을 올려다보면 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성큼 한 걸음 다가온 A이 B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이상한 꿈이라도 꿨어?”
“단이는 눈치도 빠르지. 아, 아니면 보였어?”
강세를 준 단어에 A이 입을 딱 다물었다. 주위를 한번 힐끔 곁눈질하더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망설이는 것처럼 어물거리는 얇은 입술을 빤히 응시하며 B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누구지, 그 사람. 꿈에도 나온 그 사람.
“……그냥, 뭔가 이상했어. 잠들어 있는데.”
“걱정했어?”
“휘말리면 번거로워지니까 그랬을 뿐이거든?”
뾰족한 대답에도 굴하지 않고 B이 웃었다. 턱을 타고 떨어진 머리칼을 매만지면서. 그러다가 문득, 무심코 떠올린 이야기가 있다는 것처럼, 혹은 중요한 일을 잊었다가 막 떠올렸다는 양, 불현듯 내뱉는 것이다.
“여름이라서 그런가, 덥다.”
“여름이니까.”
“한여름에 뱃놀이한 적 있어, 단아?”
A이 입을 다물었다. 일그러졌던 낯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낯설지만 그렇기에 익숙한 얼굴이다. B은 짐작한다. 자신의 ‘체질’이 엮인 일일 것이다. 그들 세계와 자신이 한 발쯤 걸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또 까다로운 것이 들러붙었거나. 둘 모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찌 되었든 이것은 제가 발 디딘 세계의 일이 아니다.
그러니 너도 그런 낯으로 나를 보는 거겠지.
“무슨 꿈을 꿨어, B?”
똑같은 질문이다. 이번에 B은 순순히 답했다.
창밖을 뒤덮은 이파리 그림자가 뙤약볕에 짙어졌다. 그래서인지 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말을 마친 B이 입을 다물었다. A이 고개를 떨궜다. 볕뉘와 머리칼의 그림자가 겹겹이 쌓인 탓에 얼굴을 읽기가 제법 까다로웠다. 손끝에 닿은 피부는 습기에 찐득하고 아이들은 소란스럽고 네 얼굴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듯 보인다. 기묘한 향수가 턱 밑에서 찰랑일 때 A이 고개를 들었다.
“꿈은 통로라는 말을 들어봤어?”
“으음, 언젠가 한 번쯤?”
잠시 뜸을 들이고서 A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응달에 잠긴 채로.
꿈이란 반만 열린 통로. 길을 걷던 순간 불현듯 걸음을 멈추게 하는, 반만 열린 문. 천안의 영향을 받아 B은 자각 없이 문에 다가갔을 테고, 저도 모르게 열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과거의 조각을 꿈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었다.
B은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어두침침한 골목과 골목을 오가는 잰걸음.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반쯤 열린 문과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매혹적인 소리에 걸음이 멎는 것이다. 손을 뻗어 열어야 할 것만 같은 부류의 충동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자각 없이 하나였을 때를. 사방에서 울리던 꽹과리 소리, 고함과 욕지거리, 엄습하는 공포와 고통, 저 멀리 드높이 솟아 나부끼는 당신과 다정하던 목소리.
계절이 여물거든 뱃놀이를 가자. 버드나무가 드리운 연못에 배를…….
속삭임에 응하듯 사무치게 저려오던 심장까지.
그 모든 것은 놀라우리만치 생생하고도 진실되었다. A이 구태여 말하지 않더라도 B은 어느 순간 확신했을 것이다. 그건 진짜라고. 일어난 일이었다고. 처절하고도 간절한 몰락의 순간은 과거 어느 순간에 진정 존재했다고.
그렇다면 ‘그’는 끝까지 마주하지 못한 걸까. 그토록 그리던 여름을. A 위에 얹히듯 스쳤던 아지랑이 같은 존재를 되짚는 순간 B은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에 마르는 숨통을 느낄 수 있었다. 꿈속 ‘그’가 느꼈던 고통에 비하면 하잘것없다. 그러나 분명한 갈증이 몸을 일깨웠다.
마른 목을 적시기라도 하듯 A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환각 같은 열기가 일렁이며 짧은 광경이 펼쳐졌다. 나부끼던 머리와 뜨겁게 메말라가던 목. 땅에서 올라온 열기에 온몸이 녹는 것만 같던 순간에조차 자신을 사로잡았던 피맺히도록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저 당신과 여름을 보내고 싶었다는 그 말이.
고개가 돌아간다. 멀고 높은 하늘을 향해 시선이 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창공이 드리운 세계, 버드나무나 연못 대신 모래밭으로 일군 운동장과 소나무가 심긴 세상. 과거의 것을 동정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그’를 헷갈리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을 업신여기고자 함도 아니다. 단지.
이다지도 가까이서 매미가 울고 있지 않나.
이곳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순간이나마 ‘그’와 B은 하나였다. B은 B이 아닌 ‘그’로서 존재했다. 그 자신의 자아가 붕괴한 채 그 모든 일을 겪었다. 치에 떨리는 배신감과 목이 메게 하는 의문을. 살을 에는 듯한 고통과 죽음을 향한 두려움을. 그러나 종내에, 바람에 날리는 당신을 바라보며 느낀 사무치는 슬픔과 과거에의 미련을.
‘그’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대하고 있었다. 충분히 여물기를. 완연해지기를. 꽃망울이 만개하는 날, 구름 한 점 없이 짙푸르도록 청명한 날을.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연못에서 당신과 친우의 사이에 끼어 연못에 배를 띄울 순간을. 끊임없이 그렸고, 기대했고, 바라왔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잖아.
이것은 단순한 호의의 일종이다. 섣부른 동정이나 주제 모르는 아량이 아니다. 단지 B은 좁은 문을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보잘것없는 소원을 마주했다. 일순이나마 B의 심장은 그의 것이었고 그랬기에 마지막의 마지막에서조차 제 박동이 한여름을 그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다.
버드나무 있는 연못을 찾기는 조금 까다로울 텐데.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한 이십일 세기니까. 아주 어려운 것도 없지.
가볍게 생각을 정리한 B이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단아, 이번 주말에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