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모드 토글 들여쓰기 토글
약 6천 자, 실제 작업물,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기반 BL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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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b 2026.06.04.  13:53




이번 회차도 실패다. 신재현은 차분하게 결론을 내렸다.


눈이 굴러 땅으로 향했다. 지난 몇 년간 숙소로 삼았던 아파트 옥상에 그는 서 있었다. 꼬이고 되풀이되는 시간 속에서,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 숙소로 옮겼더랬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은 사십이 층 옥상. 난간에 기댄 채 신재현은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잇새에서 새어 나오는 망울진 숨이 찬바람을 만나 하얗고 꼬불꼬불하게 올라갔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돌이라는 직업 특성상 일분일초 단위로 삶을 쪼개는 데에 익숙했음에도 그랬다. 스마트폰을 꺼두었고 시계도 두고 나왔다.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는 천천히 빌딩 숲 너머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태양뿐이었다. 저녁쯤 되었을까. 대여섯 시? 조금 더 넉넉히 잡는다면 일곱 시쯤? 신재현이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바닥에 두툼히 쌓인 눈더미에서 까치놀이 산란했다. 옆얼굴이 천천히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느껴졌다.


직장인들이 퇴근할 시간대였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몸을 실은 채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즈음이었다. 소속사에서 스마트폰에 불이 나도록 연락을 보냈지만 받지 않았다. 사고를 터트린 멤버를 질책하지도 않은 까닭은 간단했다. 시각이 나빴다. 시기도 안 좋았다. 울상을 짓다가, 머리를 쥐어뜯다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멤버에게 벌컥 소리를 지르고 드잡이질하는 꼴을 가만히 내버려두고서 옥상에 올랐다. 찬바람을 맞으니 머리가 식었다.


결심은 아니었다. 그렇게 결연하지도 않았다. 마음이 비장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런 진지한 단어를 붙이기에는 턱없이 가벼웠다. 단순한 선택에 가까웠다. 멤버가 터트린 사고, 때마침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시간대,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네 번째 컴백 뮤직비디오가 선공개될 시각. 신재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위험성이 조금 있어도 춤 하나는 잘 춰서 어떻게 고쳐보려고 했는데. 역시 사람은 안 바뀌는 모양이다.


하늘이 맑았다. 높고 청명했다. 검붉은 빛으로 느리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커다란 태양이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모습을 신재현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며 생각했다. 높낮이 없는 어조로, 마치 점심 식사 메뉴를 읊듯이.


여기서 떨어진 것도 몇 번이더라.


아니, 지금이 정확히 몇 번째였더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듯했다. 난간에 체중을 실어 기댔다. 땅을 내려다보는 눈이 잠잠했다. 고인 물보다도 어둡고 깊게 빛났다.


숙소 옥상에서 뛰어내린 건 아마 열댓 번쯤 될 것 같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게 가장 간편하니까. 숙소 창문을 열고 그대로 뛰어내리는 짓도 몇 번 해봤다. 높이 때문에 몇 번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이후로는 옥상만 찾았다. 사람의 목숨은 생각보다 질기다는 걸 그런 경험을 통해서 배웠지. 태평하게 제 죽음을 곱씹던 신재현이 언뜻 멈췄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까 찝찝한 실패가 있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던 남자애가. 어딘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주제에, 멤버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자신을 찾아왔었지. 돌이키려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답지 않은 고함을 쳤었고.


그때도 옥상이었다. 지금과 같은 아파트, 같은 위치, 같은 시각. 신재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닫힌 옥상 문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아주 조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기에 그는 문을 등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떠한 가능성이 머릿속 한 편에서 피어올랐다. 손끝을 간지럽히고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어쩌면, 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가슴께에서 일렁였다.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박이 기대감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신재현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신재현은 확실하게 준비했다.


위험성을 최대한 배제하자고 그는 쉰여덟 번째로 마음을 먹었다. 연습생 신분은 오히려 준비에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직접 살을 부대끼며 몇 시간씩 연습실에 갇혀 있다 보면 온갖 인간군상을 한눈에 보게 되기 마련이니까. 신재현은 신중하게 멤버를 골랐다. 밀어줄 아이와 밀어낼 아이를 솎아 냈다. 심혈을 기울여서, 마치 오랜 기간 실전되었던 유물을 복원하는 것과 비스름한 마음가짐으로 그는 작업을 재개했다.


개중에는 B도 있었다.


개성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보다 춤을 잘 추거나, 더 잘생겼거나, 소위 말하는 스타성이 넘치는 연습생들은 많았다. 하지만 신재현은 B를 콕 집어서 골랐다. 실장은 만류했다. B 걔보다는 다른 애가 낫지 않겠니, 하고 이런저런 연습생들을 추천했다. 스물다섯 번째 회차에서 음주 운전을 했던 메인 보컬, 서른두 번째 회차에서 술 마시고 행인과 드잡이질한 서브 댄서, 일곱 번째 회차에서 마약 파티를 벌였던 서브 래퍼 따위가 실장 입에 올랐다.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시구나. 신재현은 그 말을 꼭꼭 삼키고 싱긋 웃었다. 그리고 차분한 투로 말했다. B는 할 수 있어요. 오히려 기대되는걸요.


그렇게 B를 영입했다. 데뷔 예정조에 합류해 함께 연습하던 어느 날, B가 돌연 신재현을 찾았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어딘가 머뭇거리는 듯하던 그가 느리게, 미적거리는 태도로 물었다.


“왜 나야?”


실장에게서 들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질문이라고 신재현은 판단했다. 걔보다는 다른 애가 낫지 않니, 와 왜 나야, 하는 물음은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신재현은 다시 웃었다. 실장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은 미소였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B는 잠시 긴장한 듯 몸을 굳혔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신재현이 가볍게 B의 어깨를 두드렸다. 상대를 너무 짓누르지 않고, 그러나 너무 허용하지도 않는 그 적절한 선 위에서. 힘을 뺀 채 두 번, 툭툭.


“기대하고 있어.”


고개를 떨궜던 B가 느리게 얼굴을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투지나 의지에 불타는 것 같진 않았다. 어딘가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이걸 서운하다고 해야 할지. 예상외라고 해야 할지. 신재현은 손을 뗐고 B는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연습 때부터 그는 조금 더, 정말이지 미세한 차이로, 열심히 했다.


데뷔 자체는 수월했다. 신재현은 팀이 이상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데뷔곡도 괜찮았다. 멤버들의 합도, 실력도, 구멍 없이 좋았다. 데뷔곡부터 공중파에서 1위를 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화상처럼 화끈거렸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멤버들 사이에서 신재현도 함께 발을 맞추었다.


브이틱은 달려 나갔다.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백기가 석 달을 넘기지 않았다. 컴백과 컴백을 거듭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신재현은 심혈을 기울였다. 멤버들이 풀어지지 않도록 단속했다. 애당초 위험성 없는 애들이었으니 어렵지도 않았다. 하나같이 순박하고 착했다.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여러 번했다. 썸머 송으로 리듬감 있는 후크송을 들고 와 대박을 친 해,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도 탔다. 숱한 1위로 더는 무대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던 멤버들이 울었다. 신재현은 그들을 의젓하게 달래고, 카메라가 보일 듯 말 듯한 틈에서 눈물을 훔치는 척 땀을 닦고, 수상 소감을 읊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상승세는 무서운 속도로 꺾였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시작은 A&R팀의 교체였다. 후배를 양성하겠다는 대표의 강경한 의지가 개입된 것 같다고 매니저는 설명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A&R 1팀 대신 2팀이 음원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어느 시간에서 신재현은 2팀과 함께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후에 터졌다. 짧은 컴백 기간, 작업이 익숙지 않은 2팀. 1팀과 2팀은 작업 방식이 상당히 달랐다. 급조한 팀이었기에 팀원 간 연대감도 느슨했다. 그들은 곧잘 서로에게 날을 세웠다. 한숨과 자그마한 욕지거리가 다반사였다. 신재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환경에 그는 단련된 참이었다.


하지만 B는 아닌 듯했다. 컴백 한 달을 앞두고 슬럼프가 터졌다.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다고 B가 말했다. 2팀 팀장은 그럼 이게 내 잘못이냐고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다. 메인 보컬이 슬럼프에 빠지자 음원 퀄리티는 당연히 떨어졌다. 퍼포먼스로 커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쯤부터 신재현은 천천히 직감했다. 끝이다. 종점이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이 회차도 이제 종막을 향하고 있다.


컴백은 망하지도, 흥하지도 않았다. 케이팝 마니아들과 팬덤 사이에서만 잠깐 시끄러웠다. 평론가들은 메인 보컬의 역량 부족을 콕 집어 비판했다. 팬들이 몸을 갈아가며 스트리밍한 덕분에 얻은 1위에서 신재현은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인트라넷을 뒤적였다. 그 1위가 진짜 1위냐는 글과 댓글들을 읽었다. 솔직히 애들 스타성도 별로라는 비난조의 말들도 읽었다. 그냥 재미가 없다는 자칭 탈덕한 팬의 장문도 읽었다. 그리고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 짙게 보이는 하락세를 받아들였다.


그날 밤, 현관문을 열고 나서려는 신재현을 막은 건 B였다.


“어디 가?”


B는 차분했다.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다고 중얼거리던 모습과는 대조됐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고작 메인 보컬의 슬럼프 하나로 감정이 요동치기에는 신재현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현관문 문고리를 붙잡은 채 신재현은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가 대답하지 않고서 문을 열었다. 숙소를 나섰다.


B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다. 신재현은 개의치 않았다.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끝나니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엘리베이터는 치솟았다. 덜컹거림 한번 없이 매끄러웠다. 내부는 고요했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기계음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신재현은 생각에 몰두해 있었고 B는, 글쎄, 딱히 무슨 상태든 간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어딘가 불편한, 그러나 그만큼 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신재현은 그걸 깨고 싶지 않았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피로했다.


최상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마자 신재현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B도 뒤따랐다. 어딘가 다급한 걸음으로 그가 계단참을 밟아 올랐다. 옥상 문이 보일 때쯤 B가 뒤에서 외쳤다.


“다시 하면 돼!”


그러려고 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대신. 신재현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등이 켜지지 않아 어둠이 짙었다. B의 얼굴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 흐리게 보였다. 어딘가 절박한 것도, 애처로운 것도, 두려운 것도 같았다. 계단 두 개를 단숨에 뛰어올라 다가온 B가 다시 말했다.


“내가 대표님께 말씀드려 볼게. A&R팀 교체해달라고. 다시 1팀이랑 작업해 보자.”


“안 될 텐데, 그거.”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


“해봤어.”


신재현이 빙긋 웃었다. B의 얼굴이 굳었다. 굴하지 않고 신재현은 말했다. 어절 마디마디마다 힘을 주고서, 또렷한 발음으로.


“내가 해봤어.”


그래, 해봤다. 안 해본 일이 없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해봤다. 그런데 안 돼. 반등은 까다롭고 하락은 손쉽더라. 좌표가 어느 기점에서 꺾인다면 마음이 뜬다. 바닥을 찍고 다시 반등하는 서사를 찍는 것보다 재시작을 선택하는 것이 몸과 마음에 편했다. 알고 있으니까. 이전 회차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다음 회차에서 그걸 피해 가면 되니까. 그게 간편하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B의 눈이 떨렸다. 신재현이 웃었다. 작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가 입을 가렸다. 마음은 이미 떠났다. B가 뭐라고 하든 신재현은 다음 회차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영 걸리는 건.


신재현이 B를 보았다. 얼굴을 찌푸린 채 자신을 붙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건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지금과 가장 비슷한 행위를 벌인 주체는 일흔 번째의 B였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어느 순간, 어느 때에 신재현은 불현듯이 직감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라는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리 고개를 내저어도 눌어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관자놀이를 짚고서 그가 한숨을 쉬었다. B를 응시했다. 자신을 막아선 존재. 비슷한 형태와 형상, 행동과 어조. 회차와 회차, 행간과 행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이질감.


말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던 남자애. 어딘가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주제에, 제가 회귀를 결심하자마자 막아선 그 애. 돌이키려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고, 답지 않게 고함을 치고.


그때도 옥상이었다. 지금과 같은 아파트, 같은 위치, 같은 시각.


신재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닫힌 옥상 문을 들여다보았다. 언뜻 벌어진 입에서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B를 보았다. 어쩌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B는. 어쩌면 B도.


동시에 신재현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뭐가?”


B가 되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눈에 힘을 주고서 꿰뚫듯이 응시했다. B가 눈을 찌푸리고 재현아, 하고 그를 불렀다. 신재현은 손에 힘을 주고 B를 떼어냈다. 그리고 계단을 한 걸음 올라섰다.


기대와 희망은 사람을 나약하게 했다. 무언가에 의지하고자 하는 건 연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것과 같다. 부푼 마음은 나눌 수 있지만 좌절은 오롯하다. 고독은 나눌 수 없다. 엄연하고도 엄밀한 개인의 것이다.


그러니 경계해야 해. 그리고 확인해야 한다. 조금 더 명확하게. 확실하게. 정답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만큼.


신재현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손을 뻗었다. B의 어깨를 힘을 빼고 두 번, 부드럽게까지 느껴지는 손길로 툭툭 두드리고서 그는 말했다.


“기대하고 있어.”


B의 낯이 일그러졌다.


이번 회차도 실패라고, 신재현은 차분하게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