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킬러 양성 학교의 점심시간이란 총칼과 덮밥이 난무하는 군상극과 다름없기 마련이다. 킬러 지망생들이 모여 맛대가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덮밥을 입안에 욱여넣고 있던 바로 그때. A이 제 몫의 식사를 들고 줄에서 빠지려는데 소란이 일었다. 혈기 왕성한, 적어도 그렇게 포장할 수 있는 무투파 사람들의 집합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으므로 기실 다툼 자체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때 A은 별다른 마음 없이 인파 속에 얼굴을 디밀었다. 마음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오늘 점심이 마음에 안 든 두 사람이 벌이는 혈투 같은 데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정보 수집에 가깝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과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무기를 맞댈 운명이니까. 상세한 정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움 방식이나 얼굴 같은 걸 한 번쯤 익혀두면 손해 볼 것은 없다.
판단은 빨랐고 움직임은 더더욱 날렵했다. 뜻하지 않은 일은 그 직후부터 벌어졌다.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서자마자 A이 오, 하고 어색한 탄식을 뱉었다. 덩치가 큰 남학생의 멱살을 틀어쥐고 막 엎치던 여자애와 눈이 딱 마주친 탓이다. 분홍색 머리칼이 폭풍에 휩쓸린 것처럼 마구잡이로 흩날리다가 멎었다. 허공에서 반 바퀴를 구른 남학생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로맨틱한 사랑을 속삭였을 때, 그러니까 땅에 안면을 박고 기절했을 바로 그때. A이 활짝 웃으며 난장판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야, 타격 시원하다!”
씩씩거리던 여자애, B가 고개를 팩 돌렸다. 사나운 눈초리가 A을 꿰뚫듯 훑고 지나가기를 잠시. 도로 고개를 숙이는 B를 향해 A이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엎어진 채 움찔거리는 남자애를 훌쩍 뛰어넘는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묶는 B의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묻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B의 설명은 간결하고 짧았으나 동시에 어딘가 편파적이었다. A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를 깔끔하게 포기하고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쟤가 나빴네, 그랬네. 네가 잘한 거네, 그러네. 열심히 편을 들자 B의 옆얼굴에서 희미하게 힘이 빠졌다. 매섭던 눈매가 동그랗게 깎여나가는 광경을 힐끔 곁눈질한 A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도 한번만 참아주지 그랬어~. 불쌍하잖아.”
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그다지 현명한 발언은 아니었다.
A은 바보가 아니었다. 킬러의 세계는 원초적인 폭력의 세계다. 힘 있는 자가 잘잘못을 가리면 약자는 그에 따라야 한다. 강자의 폭주를 막기 위해 이런저런 기관을 설립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고용해 안전 막을 만들었다지만……. 킬러 양성 학교의 급식실 같은 곳에서 싸움을 중재해 줄 상냥한 선생님 같은 건 없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일단 패서 이기는 쪽이 정의라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그 사실을 몇 번 이용해 먹은 전적이 있었다. A은 머리가 비상했고 똑똑한 두뇌를 백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러니 B를 매도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농담 삼아 한번 던졌을 뿐인데.
살벌한 주먹질을 날리고서 B가 팩 뒤돌아 사라졌을 때, A은 맹하니 뒤통수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잰걸음으로 떠나는 B의 등을 쫓았다. 야, 야, 하고 열심히 불러봤자 B가 얼굴을 보이는 일은 없다. 희미한 낭패감을 혀로 밀어 삼키며 A이 걸음을 재촉했다. 날랜 몸으로 모퉁이를 꺾어 돌려는 B의 어깨를 덥석 잡아 돌리자마자 보이는 건, 옳지. 사납게 가늘어진 두 눈과 질끈 다문 입술이다.
“왜?”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거.”
B가 불퉁한 말을 꺼내기 직전 A이 입을 연다. 참는 법을 모르는 저 입이 열리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 여전히 어깨를 놓아주지 않은 채 A이 불쑥 외쳤다. 튀어나온 말이 메아리치듯 복도를 선회하더니 먼 곳으로 흩어 사라졌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이, 진심으로 한 말 아니었어. 맞을 만했으니까 맞았겠지. 맞을 짓 안 했어도 뭐. 네가 팼으면 그럴 만한 거지.”
“불쌍하기는 개뿔.”
“맞아, 맞아. 불쌍하기는 개뿔이다, 정말로.”
나 아양 잘 떨지.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은 냉큼 삼키고서 B를 빤히 본다. 뾰족하던 눈에서 힘이 조금쯤 풀어졌다. 순하다고는 말 못 하지만 아주 매섭지도 않은 특유의 눈매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비식거렸다. 배 속에서 기묘한 감각이 울렁인다. 이런 표정은 나한테만 보여주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에서 오는 어떤 불분명한 환희 같은 것.
영리하고 두뇌가 비상한 A, 오늘도 평화롭게 B에게 1패 적립이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A은 그냥 기분 좋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뭐 어때. 원래 사랑하면 져주는 법이랬다. 남학생이 보여주었던 바닥과의 일방통행 짝사랑처럼. 제아무리 킬러의 세계라지만. 아니, 킬러의 세계라는 사실은 더더욱 그것을 부각한다.
패서 이기는 쪽이 정의인 세상에서 무조건 패배해 주는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아?
원초적인 폭력의 세계에서 하는 사랑이란.
잠깐 뜸을 들이고서 B가 불퉁하게 말했다. 매점이나 갈래.
성큼성큼 멀어지는 분홍색 뒤통수를 눈으로 좇으며 A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