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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천 자, 실제 작업물, 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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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b 2026.06.04.  14:03

/ Antifreeze




“A한테 줄 선물이니?”


익숙한 목소리에 B가 고개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생일잔치를 총괄하는 담당 수녀님이었다. 긴장한 것도, 멋쩍은 것도 같은 낯을 하고서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B가 살짝 물러나 자리를 만들었다. 부엌에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겨울 시기의 보육원이 으레 그러하듯 부엌 특유의 음식 냄새도, 풍족한 식재료도, 하다못해 지글거리는 열기마저 없었다. 차게 굳은 화덕과 딱딱하게 말라비틀어진 장작이 유일한 동행이라면 동행일까. 냉기 스미는 벽면에 둘러싸인 채로 B는 수녀를, 그다음으로 제 앞에 놓인 엉성한 밀가루 반죽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고 말하기도,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뭣하다.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B가 머뭇거렸다. A를 생각하며 만든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선물이라고 정의를 내리기에는, 글쎄. 가루 묻은 손을 천천히 쥐었다 펴며 B가 자그마하게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으응?”


“그러니까……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잠깐 뜸을 들인 B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흘러내리려는 반죽을 조심스럽게 바로 세우며 힐끔 수녀의 눈치를 봤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B는 곧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마쳤다.


“선물이라기엔 너무, 별것 아니에요.”


게다가 앞에 생일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B가 준비한 건 더더욱 초라해진다.


B는 본디 생일 선물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그러니까, 그 유일성이라거나 명명이 가져오는 의미라는 것들. 어렸을 적에 익히 배운 것들이었다. 생일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교류한다. 너를 생각했다고, 나에겐 네가 소중한 존재라고. 말로 뱉지 않은 마음들의 집합 같은 거였다, 생일 선물은.


B도 생일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으레 그러하듯 한 달에 몰아 챙기는, 그런 종류의 선물이 아니라. 오로지 B 개인만을 위한 시간을.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어린 B는 손뼉을 쳤고, 웃음 사이에서 케이크에 꽂힌 초를 불었다. 보육원의 방식이 나쁘다고 매도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녀들이 내린 선택은 그들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 하지만…….


어떤 마음은 속절없다. 여상하게 손끝에서 몽글거리다가 자각하는 순간 물집처럼 터지고 만다. 그렇게 몸을 흠뻑 적신다.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옛 감각 혹은 기억에 사람을 담근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냐고 매정하게 속삭인다.


어쩌면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B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일 선물, 하나의 초, 웃음소리, 박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대비한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당신만을 위해 이곳에 서 있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은 존재를. 제게 유일한 동시에 상대에게도 자신이 단일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가족 같은 것을.


그리움인지 외로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므로 B는 그냥 움직이기로 했다.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는 것보다야 차라리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무슨 결과든 내보일 수 있으니까. 게다가, 계획한 시간까지 오래 남지 않았다.


수녀에게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B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보던 눈치도 점차 누그러진다. 간신히 불을 땐 화덕에 밀가루 반죽을 밀어 넣었을 때 수녀가 다가왔다. 쪼그려 앉아 멍하니 불을 들여다보던 어깨 위에 손이 올라갔다. 가볍게 툭, 하고 어깨를 쓰다듬은 수녀는 곧 미약한 웃음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물이라는 거, 굳이 특별하지 않아도 되지 않니.”


“…….”


“흰소리하는 게 아니야.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히 알 수밖에 없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만 진실되다면 선물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는단다.”


생각하는 마음만 진실되다면. 수녀의 얼굴을 말없이 올려다보던 B가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그런 걸까요,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 끝에 망설임이 걸렸다. 누군가를 생각했다는 증명만으로 무엇인가가 선물이 될 수 있는 걸까. 온전한 제 것을 받게 되면 기분은 또 어떨까. B가 기억하는 건 너무 오래전 일이다. 촛불을 빌고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파헤치던 심장이 어떻게 뛰었는지 B는 이제 알지 못한다.


그래도 기왕이면 좋아했으면 싶었다. 오늘은 A의 생일이니까.


그날 저녁 B는 자기 전 A를 불렀다. 침대에 누우려는 그에게 손짓해 자리에 앉혔다. 밀가루로 어설프게 구운 케이크는 촉촉하다기보다는 질척했고 겉을 두른 크림이나 꾸밈 같은 것도 없었다. 며칠 전 있었던 단체 생일잔치에서 쓰고 남은 초를 꽂고서 불을 붙였다. 일렁이는 촛불을 내려다보며 그들은 손뼉을 쳤다. 생일 축하합니다, 하고 자그마하게 노래를 불렀다.


“선물이야.”


수녀가 준 용기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을 꺼낸 건. 보잘것없는 케이크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담겼으니까. A가 알아줄까? 고작 대여섯 먹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나? 하지만 아이들은 호의에 친화적이다. 그들은 자신을 향한 애정은 놀라우리만치 손쉽게 알아차리곤 한다. 그러니까 A도 어쩌면 제 마음을 알아줄지도 몰라. 혀끝에 미약한 기대감이 고인다. 그리고 그 사실에 자신도 놀랐다.


A가 눈을 크게 떴다. 아, 하고 짧게 탄식한 아이가 자리에서 폴짝 일어났다. 그리고 닫힌 문 바로 옆에 있는 옷장으로 달려갔다. 거기까지 보았을 때 B는 살짝 후회했다. 말하지 말 걸 그랬나. 좋아하지 않는 건가. A가 당장 겉옷을 걸치고 문을 박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뭐랄까. 미묘한 씁쓸함이 혀 아래에 고인다. 침과 함께 녹여 삼키려고 해도 딱딱하게 굳어 떨어지지 않는 쓴맛이 있었다.


그때였다. A가 무언가를 단단히 움킨 채 뒤를 돈 건.


B가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달려갔던 것만큼이나 다급한 잰걸음으로 다가온 A가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 손 펴 봐, 하는 말에 B는 순순히 그렇게 했다. 손아귀 위에 무언가가 후드득 떨어졌다. A의 작은 손이 사라지고 나서야 B는 그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같아.”


“…….”


“선물이야. 생일 선물.”


자그마한 유리 조각이었다. 가장자리가 마모되어 이제는 작은 보석처럼 보였다. 그 옆에는 겨울에만 핀다는 들꽃 여러 송이가 있었다. 끄지 않은 촛불에서 비치는 빛에 유리가 반짝였다. 자그마한 결정을 투과한 빛이 꽃잎에 닿아 산란하는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B는 문득 생각했다. 선물. 마음이 담긴, 저만을 위한 선물.


오랜만이다.


B는 그제야 수녀의 말을 천천히 이해했다. 선물이라는 것, 굳이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이었다. 의미는 전달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태어난다.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마음이 담겨 있다면 분명히 상대에게 전해진다. A가 건넨 유리 조각과 들꽃처럼. 혹은 B가 직접 구운 케이크처럼. 오롯한 한 사람만을 생각했다는 감각, 누군가에게 특별해진다는 느낌은 지나치게 생생히 손끝을 간질이기에 착각할 수도, 오인할 수도 없다.


생일 선물, 하나의 초, 웃음소리, 박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대비한 것 같다고 느끼게 하는, 당신만을 위해 이곳에 서 있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은 존재가 B 앞에 서 있었다.


하나뿐인 B의 가족이 여기에 있었다.


손을 뻗어 A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들끼리 부딪치며 자그마하게 달그락거리는 선물들을 그러쥔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A의 것이겠지. 손아귀에서부터 번지는 훈기가 몸을 적시는 듯하다. 희미하게 웃으며 B가 속삭였다.


“고마워.”


별다른 대답 없이 A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