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불현듯 심장에 꽂혀 빠지지 않는다. 사람을 밀어뜨려놓고선 이다지도 미련 없이.
저녁이어야 할 시각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빛으로 들어차 있었고 기온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텁지근한 공기를 머금은 사막 바람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검푸른 하늘을 상상하며 그들은 앉아 있었다.
민필리아와 A가 가장 가까웠다. 위리앙제와 산크레드는 그보다 한두 뼘쯤 떨어진 곳에 제각기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을 것이다. 고된 여정이니까. 쉴 수 있을 때 쉬어두어야 하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너도 한숨 자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원인이었다. ‘민필리아’는 말 한마디로 A를 애매모호한 고뇌에 빠트렸다.
민필리아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하고 물었다. ‘민필리아’가.
물론 이것은 ‘민필리아’ 본인을 묻는 말이 아닐 것이다. 저 아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자의 이름은 온전한 그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짊어진 것에 가깝다. 그 이름 넉 자는 되레 주술에 가까우니까.
그러므로 ‘민필리아’가 물은 민필리아는, 그들이 익히 아는 민필리아다.
A는 반사적으로 어깨 너머를 곁눈질했다. 산크레드가 누워 있었다. 그는 두 여자를 등진 채로 얇은 모포를 덮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 희미하고 가는 숨이 들렸다. 부풀었다가 꺼지는 흉곽이 ‘민필리아’의 질문에 순간 불규칙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그의 숨결이 미약하게 가빠졌다는 것을 A는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고개를 떨어트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었냐고. 민필리아가.
글쎄, 하고 잠시 뜸을 둔다. 고뇌는 일상적이다. 그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럴 자격이 제게 있느냐는 것부터가 문제다. 이런 종류의 물음엔 보통 가장 가까웠던 사람, 이를테면 민필리아와 이름을 나누었던 산크레드 워터스나 오랫동안 새벽으로 함께 했던 위리앙제가 대답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적어도 그것이 조금 더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불분명한 말들을 정보로써 전달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진의가 흐려진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제가 내뱉는 말들이, 위한다는 탈을 뒤집어쓴 그것들이 종내에 민필리아를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A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주저한다. 망설인다. 어떠한 말도 내뱉을 수 없다는 깨달음이 A를 강타한다.
하지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는 건, 거절의 말조차 입에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대답을 보류한 채 A는 하릴없이 민필리아를 떠올린다.
새벽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사람. 행성 하이델린과 그곳에 살던 사람을 사랑하던 그 여자. 사랑이 그렇게나 숭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은인. 많은 것을 얻고 배웠던, 바람이 스칠 때마다 금빛 머리칼을 흩날리며 창공 같은 눈을 접어 웃던…….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떨군다.
이건 아니라고 스스로 중얼거린다. 내리깐 눈동자 안에 빛이 일렁인다. 빛의 광채가 잠식한 하늘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싶다. 곁에 앉은 ‘민필리아’가 자그마하게 이름을 부른다. A, 하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하고 앳된 떨림. 버석한 모래바람에 흔들리는 금발과 유백의 에테르를 품고 오묘한 빛으로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가 꼭.
그는 이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작게는 ‘민필리아’가 부여받은 이름에서부터, 크게는 누군가의 사랑에 빗대어 연명하는 세계까지.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많다. A는 더는 손댈 수 없는 필연적인 비극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다. 체감하고 반복했다. 이건 아니라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떤 운명은 억압이다. 슬픔과 좌절의 또 다른 형태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냉랭하게까지 느껴지는 친절한 얼굴로 민필리아는 떠났다.
속절없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건 온전히 A의 몫이고.
‘민필리아’는 민필리아를 닮았다. 찬란한 금발과 시원한 창공을 담은 눈. A가 사랑했던 굳은 의지와 단단한 심성. 때가 된다면, 적합한 순간이 온다면, 망설임 없이 자신을 내던질 것처럼 느껴지는 그 아득함이.
그리고 민필리아는 노아나를 닮았어.
외관뿐이 아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민필리아를, ‘민필리아’를 볼 때마다 그는 수없이 생각한다. 노아나. 내 동생.
노아나를 사랑하듯 그들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들을 사랑하자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야속했다. 깨부수지 않고 응하는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들의 다짐, 앞에 펼쳐질 여정, 굳은 사랑 앞에서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입이 있어도 뱉을 수 없고 마음이 있어도 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간직하려는 마음조차 내비칠 수 없게 한다. 단단한 걸음으로 웃으며 빛으로 떠난다. 남겨진 자들을 돌아보지 않고. 작별조차 허용하지 않고. 찬란한 뒷모습을 눈으로 좇는 것만을 허락한 채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A는 ‘민필리아’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남겨질 이들을 차마 떨치지 못한 채 멈춰 서기를 원한다. 그리고 끝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노아나에게 그랬듯이.
하지만.
다짐할 때마다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사무친 그리움이란…….
돌이킬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린다는 건 쓴맛 나는 고형의 마음을 꼭꼭 씹어 삼키는 것. 스치듯 지나치는 타인, 무심결에 듣는 목소리, 파편 같은 조각들 사이에서 기어코 흔적을 발견하고야 마는 것.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떠올리고야 마는 것.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있다고 A는 느낀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포화의 상태로 그는 서 있다. 지금 그들이 앉은 아므 아랭의 사막만큼이나 뜨겁고 버석한 심장에서 모래가 떨어진다. 폐부를 지나 뱃속으로 굴러간다. 혈관을 타고 몸 곳곳으로 퍼지더니 온몸을 따끔거리게 한다.
그 미세한 통증들이 A의 입을 막는다.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게끔 한다. 민필리아는 좋은 사람이었고 너 또한 그렇다는 설탕 발림조차 하지 못하게. 아직도 민필리아를 그린다는 말은 무용하다. 필연적인 슬픔은 고통과 엇비슷한 형태라는 사실을 아냐는 질문도. 내게는 동생이 있었다는 고백도. 하다못해 대답할 수 없다는 거절조차도. 사랑과 후회는 전부 제 것이니까. 묵은 감정들을 ‘민필리아’에게 쏟아낼 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A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로 가닿을지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민필리아’에게 읍소하듯 중얼거릴 것이다. 잡히지 말라고. 도망치라고.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터전으로 나아가라고. 동시에 물을 것이다. 너의 삶을 살면 안 되는 거냐고. 숭고함, 고결함, 아득함과 맞물린 사랑 따위 버리고.
하지만 기어코 세계를 사랑하게 될 거라면, 내가 보는 곳에서 결심해 주면 안 되겠냐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너는 민필리아가 아니니까. 그들이 아무리 너를 그와 닮은 형상으로 빚으려 애쓴대도 너는 결코 그가 될 수 없으니까. 그들 손에서 너는 영원히 민필리아를 닮아가겠지만 닮는다는 건 즉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같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민필리아’는 A에게 민필리아도, 노아나도, 그들을 투영한 무엇인가조차도 될 수 없다.
그러니 A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심장을 저미는 듯한 그리움도 슬픔도 사죄도 하다못해 과거 사랑의 편린조차도 네 몫이 아니니.
“A.”
떠나간 자들과 닮은 눈을 하고서 ‘민필리아’가 속삭인다. 어떠한 재촉도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지만 A는 직감한다. 더는 대답을 미룰 수 없다.
천천히 고개를 든다. 시선을 맞추며 A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