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는 재난이라고 했다. 알지 못하는 면모를 발견하게 해준다는.
앞에 커다란 전신 거울이 있었다. 그것 외에는 텅 빈 곳이었다. 재난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과도, 괴담이라는 낱말이 주는 공포심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 하얀 공간에 거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얼굴은 거기서 비쳤다.
최 요원은 말없이 전신 거울을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금 간 곳 한구석 없는 매끈한 표면이 광원 없는 빛을 받아 반질거렸다. 거울 테두리는 고풍스러운 고딕풍의 은테였고 그 크기는 최 요원보다 한 뼘쯤 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거울이었다. 어디, 빈티지 가게 같은 데에 있을 법한.
재난관리국의 베테랑 요원인 그가 이것이 재난이라고 판단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공간이 이상하다. 그림자가 없지만 빛은 존재하는 이런 공간은 통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둘째, 요구조자들의 증언을 모아둔 부록에서 이것과 비슷한 형식의 재난을 읽은 적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셋째.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비치고 있다.
익히 아는 얼굴이 눈을 똑바로 뜬 채 최 요원을 지그시 응시했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단지 모든 까닭은 제 시선에 있다는 양 집요하게까지 느껴지는 낯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재난 속 물건을 섣불리 건드리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최 요원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웃음기 없는 뺨을 슬그머니 건드렸다가 차갑고 매끈한 표면에 도로 손을 거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그는 판단한다. 이곳은 위험하지 않다. 적어도 악의나 살의를 가지고 최 요원을 대하지는 않는다. 팔짱을 끼고서 그는 떠올린다. 거울을 보는 재난. 제 마음속 깊은 곳을 비추어 상대방을 사색에 빠트린다는. 잘 활용하거나 협업을 맺는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상부의 판단이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인가? 최 요원은 태평하게 머리를 굴렸다. 일종의 베타 테스트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막 이래.
단지. 신경 쓰이는 거라면.
왜 하필 A일까?
거울 속에서 연한 회갈색 머리칼이 희미하게 나부낀다. 바람이 없음에도 그렇다. 청회색 눈은 최 요원을,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그 흔들림 없는 시선은 어째서인지 미지한 질문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진다. 허리를 한번 짚은 그는 곧 눈을 굴린다. 그러며 생각한다. 사색에 빠트린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이런 가파른 방식으로.
오염되고 있는 걸까, 하는 미약한 걱정이 발치에서 스멀거린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사고를 멈추기란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로운 일이기에 최 요원은 구태여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로 한다. 다만 곱씹는다. 질문을. 최초의 물음을.
왜 하필, A.
입에 올리기 곤란한 사건으로 시작한 인연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모르는 상태나 다름없었으니까. 재난과 오염을 거듭하다가 가까워진 사람, 혹은 생존자. 거울에 비친 A의 잔상을 바라보며 최 요원은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상냥한 사람이지. 다정하고, 선하고.
하지만 그뿐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최 요원은 숱한 선인들을 봐 왔다. 재난이라는, 묘사 그 자체에 어울리는 상황에 휩쓸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떠올리기에 달가운 기억은 아니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최 요원의 낯이 미묘하게 가라앉는다. 호선을 그리던 입꼬리가 침몰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반추한다. 그곳에 두고 오거나 이곳에서 잃었던 수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선한 이들의 특성과도 같다. 창작물에서 묘사하는 영웅과는 달리 그들은 한낱 사람이므로 두려움에 잠식되어 소름 끼칠 만큼 생생하게 죽어간다. 비단 육체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영혼이 죽는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이 변한다.
그들 영혼의 죽음을 막지 못하는 까닭은 단순했다. 그들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누군가를 살리니까.
구할 수 있다면 모두를 구하고 싶다. 아니, 구할 것이다. 누군가는 동심이라고 부를 정의감을 속에 품었으나 동시에 그는 알았다. 어떤 이들은 구원을 거부한다. 구조를 거절하고 스스로 선 두 발로 파멸을 향해 걸어간다.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거침없이 희생하는 부류를, 최 요원은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그들은 꼭 잉걸불 같다. 도깨비불과 유사하지만 다른 형태로 사람을 살린다. 그리고 끝내는 자신을 살라 먹는 불길에 한 줌 재가 되거나 그조차 남기지 않는다.
최 요원은 A이 휩쓸렸던 재난을 기억했다.
이제는 진입 불가 처리가 된 그 재난. 그곳에서의 A을 기억했다. 제이드 서튼이라는 이름을 가면처럼 뒤집어쓰고 길 잃은 자들을 인도했던 여자. 두려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기꺼이 감내하던.
최 요원의 낯이 언뜻 일그러진다. 내리깐 눈이 뜻 모를 빛으로 희미하게 울렁인다. 들여다보며 그는 생각한다. 그런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기꺼이 감내한다느니 뭐라느니. 최 요원은 죽음의 공포라는 것을 단어 이상의 의미로 아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방관할 수 없다.
거울 속 그와 눈이 마주친다. 기억은 썰물처럼 쓸려오더니 발치를 축축이 적신다. 발끝을 핥아먹는 미약한 물기를 느끼며 최 요원은 떠올린다. 그가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선한 자들을. 목숨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끝내 자신을 차선으로 밀어내던 이들을.
A을 볼 때마다 그들이 떠오른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마, A은 살았고 그들은 죽었다는 것이겠지.
이것은 얕은 죄책이 아니다. 옳지 못한 애도의 방식 또한 아니다. 그보다는 표피 밑에 야트막이 스민, 그래도 종종 무심코 떠오르고 마는 기억에 가깝다. A은 최 요원에게 일종의 초상인 동시에 A이라는 개인이다. 선후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A은 A으로서 존재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표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A이 제게 단순한 A이 아닌, 이전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다는 증명에 가까울지 모른다.
뜻 모를 초조함을 느끼며 그는 입술을 살짝 사리문다. 속이 미약하게 울렁인다. 어지러운 머리를 한번 짚고서 나지막하게 코웃음을 친다. 요구조자 이상의 존재가 된 A은 최 요원의 도움을 받기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능동적이고 거침없으며 평소 보이는 맹한 면모와는 달리 자신을 불태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나만 알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건 얼마나 유치한지. 그는 이것이 독점욕과 비슷하되 다른 마음이라고 추측한다. 맹목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불씨를 꺼트릴 만한 사람을 대신 걸러주고 싶은 마음에 가깝지 않나. 기껏 살아남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주위에 두르는 바람막이 같은 존재 같은 것이 되고자 하는.
그렇다면. 최 요원은 무심코 고개를 떨군다. 팔목에 걸린 팔찌를 내려다본다. 본래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예측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재난, 악의 없는 어둠에 제 머릿속이 야금야금 오염당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결론을 향한 끌림만은 강렬하다.
오염에 의한 사고일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며, 그러나 술렁이는 마음만큼이나 맹렬한 이끌림에 몸을 내맡기며, 최 요원은 생각한다.
다층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건 곧 관계에 깊이가 생겼다는 것.
사람들은 층층이 새겨진 마음을 일컬어 지극하다고 부른다.
최 요원은 알고 있다. 직전부터 그의 사고는 A과 생존과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 또한 오염의 한 갈래라고 그는 판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생각해 봄 직한 주제다. A은. 나름대로 귀엽다고 생각했으니까. 언제? 종종. 잠든 척하는 제 어깨에 이마를 대고 낮잠을 잔다거나 할 때.
마음이 깊어진다는 건 산 자의 특권이다. 생존하지 못한 사람, 장작을 모두 태운 불꽃은 역설적으로 그 순간에 박제된다. 살아남은 잉걸불만이 변모하고 마모하거나 그 몸집을 키울 수가 있다.
그리고 A은 살아남았다. 생존함으로써 최 요원의 마음에 잔류했다. 끝도 없이 깊어지다가 거울에 맺힌 상이 되어 그를 불렀다. 따라서 그는 A을 생각했다. 선한 자들을, 자신을 불태우는 자들을, 두려워하면서 끝내 나아가는 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초상과도 같은 존재를, 살아남은 A의 곁에 머물고자 한 까닭을, 끝내는 떠올리고야 만다.
재영 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가까이서.
기왕이면 바로 곁인 편이 좋을 것 같다.
살아남았으니까. 생존한 잉걸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싶으니까.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으니까. 그 빛을 오래도록 간직하길 원하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또다시 비슷한 일, 이를테면 그 자신을 장작 삼아 타올라야 하는 일이 벌어질 때, 조심스러운 손길로 불씨를 옮겨 대신 타오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다.
거기까지 생각한 최 요원은 망설이지 않는다. 새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서 거울을 바라본다. 그리고 여전히 맹한 낯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A을 바라본다.
손목에서 방울 흔들리는 소리가 난 것도 같다.
그렇게 내디딘 한 걸음.
며칠 뒤 최 요원은 보고서를 썼다. 자신이 짧게나마 갇혀 있었던 거울 재난의 활용에 관한 글이었다. 평소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되짚을 기회를 제공하는 건 사실이라는 증언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오염이 타 재난에 비해 빠른 속도로 사고에 번지므로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소견을 덧붙이고서 그는 망설임 없이 보고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