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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b 2026.06.04.  13:47



“이상하지. 꼭 네가 날 위로하는 것처럼 들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A는 고개를 돌릴까 아주 잠시 고민했으나 결국 묵묵히 시선을 고정했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갈대밭이 눈동자에 맺힌다. 그 너머 한도 끝도 없을 듯 광활히 펼쳐졌을 검은 호수를 상상하며 얕은 숨을 삼켰다. 여상 같은 풍경이었다. 조금 빠른 박자로 맥동하는 심장이 유별나다고 느껴질 정도로.


늦가을이었다. 어쩌면 초겨울이라는 말이 더 걸맞을지도 몰랐다. 날씨는 점차 추워졌고 아이들은 덩달아 몸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일 년 간 바람 잘 날 없던 호그와트도 적잖이 고요했다. 적어도 호수 근방은 말이다. 아침마다 서리가 조금씩 끼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검은 호수를 잘 찾지 않았다. 갈대밭은 유난스럽게 서늘했고, 아직 얇은 가을용 교복은 추위를 온전히 막아주기에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본래라면 이곳엔 A 혼자여야 했다. A에게 검은 호수 방면이란 날씨나 계절과는 조금 동 떨어진 오롯한 존재기에 그랬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소소한 취미 비슷한 거였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는 호수 근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심심할 땐 근처에 있는 자갈을 던지기도 하면서. 파도 소리를 닮은 갈대밭의 울음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은 금세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A는 그러한 이점을 이용해 몇 번이고 갈대밭에 몸을 파묻었다. 호울러를 받았을 때도. 평범한 편지를 받았을 때도. 방학이 끝난 직후에도. 몇 번씩이나.


물론 그렇다고 호수가 A의 소유물인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니 타인이 이곳에 발을 들이는 일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 타인이란 게 저 여자애라면 말이 좀 달라질 뿐이지. A는 괜히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바닥에 진하게 남은 흉터가 어쩐지 눈에 어른거렸다.


B. 더 정확하게 부르자면, B. 이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붉은 머리칼이 잔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A는 무릎을 끌어모아 머리를 기댔다. 조금 피로한 눈을 감았으나 잔상은 선명했다. 예의 무뚝뚝한, 혹은 무표정한, 또 어쩌면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을 한 B. 빛이 옅은 홍채는 늦가을의 저녁놀에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중일지도 모른다. 조금은 창백한 피부에서 유일하게 혈색이 도는 입술이 잠시 움찔한다. 이윽고 벌어지며 말을 내뱉는 것이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그랬어. 위로라는 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거라고.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라고. 모든 말이 그렇지만 위로는 그 성질이 유별나게 강하다면서 말이야.”


담담한 목소리였다. A는 감았던 눈을 올려떴다. 눈꺼풀이 말려 올라가며 흐린 정경을 고스란히 담았다. B가 맞았다. 잔상이나 상상이 아니었다. 유령 또한 아니었다. 또렷한 모습을 가진 그대로, 제 곁에서 몇 발짝 물러난 채 서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시선은 잠시간 머물더니 비켜갔다. 갈대밭을 한번 선회하곤 다시금 제게 떨어졌다.


“그러니까 네가 위로라고 받아들였다면 위로가 되는 거겠지. 내 의도가 어떻든 간에.”


B의 목소리는 평소와 똑같았다. 차분했고 흔들림 없었다. 실바람에 머리칼과 망토가 펄럭이는데도 B는 굳건했다. 생각을 읽을 수는 없으나 A는 어쩌면,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B 나름의 허락인지도 모른다고. 위로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뱉은 말은 두 말하지 않고 위로인 거라고.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기이한 일이다. A는 술렁이는 가슴께를 지그시 눌렀다. B의 낱말은 분명 서툴렀으나 심장에 맞닿은 말은 그렇다면 위로받지 않았느냐 묻고 있었다. 기분은 설명하기 오묘했다.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모욕감을 느끼거나, 치욕스럽다거나, 그 비슷한 계열의 감정을 느끼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숨통이 트인 것 같기도, 반대로 아예 꽉 막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감각의 공통점들을 꼽자면, 아마 B라는 사람으로부터 받으리라 예상치 못했던 것들일 테다.


갈대 꺾이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거림보단 사부작대는 것에 가까웠다. 걸음걸음에 힘이 있었다. 멀리 떨어지나 싶었으나 곧장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삐걱대던 고개가 돌아갔다.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B가 풀썩 앉았다. 흔들리는 머리칼을 정리하는 B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심했다. 대리석 석상처럼 고요했고 어쩌면 이 세상에 달관한 듯 담담하게도 보였다. 그래서 A는, 적잖이 충동적인 마음으로, 어쩌면 지금껏 노력해왔던 모든 것이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렇게 물었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무슨 뜻이야?”


“B답지 않은걸. 그리핀도르를 향한 위로라니.”


B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그러졌다 말하기도 미묘한 변화였다. 목소리는 딱 그만큼의 동요를 품고 있었다.


“글쎄.” 하고 B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음 말을 고른다기보단 자신도 모르게 내는 공백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B는 말했다. “이러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모호한 말이었다. A는 잠시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이러는 편이 더 나을 테니까. 또렷한 목적어도, 주어도 없었다. 실없이 웃음만 나왔다. 이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실은 정말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반추한다면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A는 그저 퀴디치를 언제 관둘 거냐는, 어쩌면 일상이라고도 부를 만한 편지 한 장을 받았을 뿐이니까. 심지어 A로선 호울러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쯤 기뻐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실은 많은 일들이 그렇다. 정확한 까닭을 캐내지 않은 채 덮어두는 것으로, 발을 그저 호수로 돌리는 것만으로, 나는 무엇인가 행동했노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엄연히 말하자면. A는 자신의 발걸음이 왜 항상 이곳으로 향하는지 모른다. 가슴이 왜 이리 술렁이는지 알지 못한다. 왜 알지 못하느냐 묻는다면, 모르는 편이 더 나아서라고 대답할 거였다.


A는 종종 생각했다. 알지 못하는 것과 알지 않아도 되는 것. 모르는 편이 나은 것과 모르고 싶은 것. A.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A에겐 항상 판도라의 상자가 눈앞에 있었다. 어른들은 열지 말라고 당부했고 A 본인 또한 뚜껑을 젖히면 제 세상이 온통 뒤집히리란 사실을 알았다. 굳게 닫힌 상자를 품에 안은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퀴디치를 택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는 것. 그렇게 공을 향해, 때때론 골든 스니치를 찾아 눈을 바삐 굴리는 때에만큼 더할 나위 없이 몸이 가벼웠으니까.


내려선 땅 위에서 A는 항상 무거웠다. 상자 무게가 숨통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원래 사람이라는 족속이 다 그러니까. 얕은 공감은 가능할지언정 진정한 이해는 불가능하고, 또 어쩌면, 불필요하다 생각했을지도.


“그런데 아니었나.” 하고 A가 중얼거렸다. B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하지만 무슨 뜻이냐는 되물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뭉스러운 빛을 품은 눈이 살짝 빛났다가, 이내 A를 스치고는, 저 먼 허공을 향한다. 고작 그뿐이었다. A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지. 고작 그뿐이지. 하지만 전과 다른 파동으로 울렁이는 가슴을 두고 사람들은 때로 기쁘다고 말하리라.


긴 말은 불필요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그래서 A는 그냥 눈을 감고 고개를 파묻었다. 갈대 흔들리는 소리 너머 아주 어렴풋한 타인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