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모드 토글 들여쓰기 토글
약 1천 자, 실제 작업물, 캐릭터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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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b 2026.06.04.  13:48





탁상 위를 노니는 손이 매끄럽다.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특유의 거침없는 손길이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뚜껑을 닫고, 탁, 불 위에 올리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불을 켜고, 잔을 끌고 오고. 딱. 페루산 원두에서 쌉싸름한 향이 퍼진다. 한 번 태운 커피 원두 냄새가 사무실 전체를 메우기 직전, 꽉. 노끈으로 입구를 묶는다. 탁상 근처를 헤매는 잔향을 들이마시며 그라인더에 원두를 쏟는다.


손님 대접용이니 잔을 신경 써야겠지.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간혹 껍데기에 목을 매니까. 가지고 있는 종류 중 가장 깔끔한 잔을 꺼낸다. 오물이 묻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한 번 더 확인하는 건 말하자면 소소한 유희다. 확답을 얻었을 때는 또 다른 확신을, 오답을 택했을 때는 짧은 기쁨을. 이번에는 여지없는 확신이다. 미약한 실망을 뒤로 한 채 잔을 내려놓는다. 한 손으로 그라인더를 단단히 고정한다. 손잡이를 잡고 느리게, 그러나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린다. 집중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원두를 갈아 내린다. 무엇인가를 모방하듯, 혹은 연기하듯 몸이 움직인다.


커피를 좋아하는 까닭은 별것 없다. 커피라는 것은 생각보다 민감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같은 원두와 같은 환경에서 내려도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고급스러운 원두로도 싸구려 커피를 내릴 수 있고 싸구려 원두로도 고급스러운 커피를 내릴 수 있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무작위성을 그는 즐긴다. 그는 확실한 것에 다소 싫증이 난 사람이다. 사소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존재를 내심 기다린다. 말하자면 커피 같은.


갈린 원두를 드리퍼에 옮긴다. 이번엔 주둥이가 크고 폭이 좁은 종류다. 커피의 단맛을 끌어내기에 적합하다. 저울 위에 도구들을 켜켜이 쌓는다. 원두 삼십 그램. 끓다 만 물은 팔십칠 도. 탁상 위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량하며 그는 조용히 기대한다. 상상하는 맛이 있다. 예상에는 손님의 반응 또한 포함되어 있다.


내린 커피를 잔에 옮기는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게, 하고 그는 대답한다. 손님이다. 사무실이 어색하다는 듯 연신 쭈뼛거리는. 그는 개의치 않는다. 신중히 잔을 트레이에 올리고 걸음을 돌린다. 긴장한 사람을 안정시키는 데엔 어떤 말이 좋을까 짧게 고민하며 커피를 내려둔다. 제가 앉을 소파는 평소의 보폭으로 세 걸음. 돌아보지 않고서 그는 앉는다.


“자네 왔군.”


손님이 뚫어지라 바라보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다. 씁쓸하고 무게감 있는 액체를 입에 잠시 머금는다. 정답인가. 아니면 오답일까. 고민은 짧다. 결론은 빠르다. 둘 이상 모여 있을 때 사색을 가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으니. 적어도 그의 손님은.


커피 향에 파묻힌 채로 그는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