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울음이 들렸다.
A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닫힌 방문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툭툭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작은 솜털 같은 것이 부딪히는 것 같았다. 소음에 맞추어 눈을 깜빡였다. 톡톡, 깜빡깜빡, 톡톡, 깜빡깜빡.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제 앞에 앉은 B도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을 확인한 A가 다시 방문을 바라보았다.
생일을 앞두고서 가진 만남이었다. B가 A의 집에 찾아왔다. 예쁘게 포장한 생일 선물을 품에 안고서. 뺨을 희미하게 붉힌 B가 생일 선물을 건넸을 때 A는 얼핏 떨리는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에 우두커니 선 몸을 살짝 비키고서 말했다. 들어올래? 입을 동글게 오므린 B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A의 방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A는 자리에 앉은 채 잠시 고민했다. 방문에서 나는 저 소리는 마치 가벼운 포켓몬이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글레이시아와 블래키는 모두 그들의 옆에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글레이시아가 크게 하품했다. 까뒤집은 배를 천천히 쓰다듬는 A의 눈이 언뜻 가늘어졌다. 그럼 누구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가? 가능성과 가능성을 이어보려 애쓰는 것도 잠시였다. A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서 고심하는 것보단 직접 확인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은 빨랐다. B는 잠깐 앉아 있어, 하고 걸음을 돌렸다. 문고리를 돌려 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누군가가 노크했다.
“아, A.”
“……아버님?”
A의 눈이 언뜻 커졌다. 얼핏 긴장한 것처럼 앉아 있던 B가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B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A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시선을 내렸다. 검은 솜뭉치 두 개가 아비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 붉고 푸른 목털이 마치 불꽃처럼 흔들렸다.
“잠깐 실례할게. B, 오랜만이다.”
남자가 A를 지나쳤다. 솜뭉치들이 뒤따랐다. A의 시선이 솜뭉치들을 따랐다. 포켓몬 도감을 펼 필요는 없었다. A는 저 검정 솜뭉치들의 정체를 알았다. 하지만, 뭐랄까. 당혹스러운 까닭이 그 정체 때문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생뚱맞은 자리에서 생뚱맞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느끼는 황당함과 놀라움에 가까웠다. A가 버릇처럼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솜뭉치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말간 눈이 한번 끔뻑이더니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알다시피, 히스이 조로아야. 파견을 나갔다가 설원에 버려져 있는 걸 구조했지.”
남자가 무릎을 굽혔다. 조로아 두 마리가 남자의 손 주위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조로아들을 쓰다듬으며 남자가 설명했다.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건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근방에 조로아크의 서식지가 될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도 흔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대로 놓아두다간 죽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구조를 진행했고, 책임자인 남자를 잘 따라 보호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A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로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꼭 닮은 두 마리가 한 쌍을 이루듯 발치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글레이시아와 블래키에게 다가가려는 듯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가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한 몸으로 살아왔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아다녔다.
조로아들을 내려다보며 A는 직감했다. 남자가 조로아들을 집으로 데려온 까닭이 있을 것이다. 어려운 추론은 아니었다. 마침 생일이 지척이었고, 운 좋게도 딸은 포켓몬 트레이너였다. 그렇다면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A의 시선이 간신히 조로아들로부터 떨어졌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맡아주겠니?”
A는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내렸다. 시선 끝엔 B가 있었다. 까만 솜뭉치 같은 조로아가 용감하게 B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B가 눈을 끔뻑였다. 조로아의 푸른 털끝이 파르르 흔들렸다. A는 B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것을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듯 날을 세우던 조로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곧이어 몸을 바짝 낮추고 다가간 조로아의 코끝이 B의 손가락과 맞닿았다.
B의 얼굴이 짙은 기쁨으로 물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A가 말했다.
“B. 데려갈래요?”
“응? 내, 내가?”
B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B의 손바닥에 주둥이를 비비던 조로아도 함께 펄쩍 뛰었다. 오랜 친구를 대하는 것보다도 자연스럽게 조로아가 B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쓰다듬어줘요, 하고 A가 말했다. B의 얼굴이 언뜻 붉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이나 분노 같은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내리깐 눈동자 너머에서 언뜻 보이는 건 그보다 작고 밝은 빛을 띠고 있었다. A가 희미하게 웃었다. 색이 다른 조로아의 푸른 털은 B의 머리칼과 아주 잘 어울렸다. 조로아는 그걸 알았던 걸까? 그래서 저렇게 익숙하게 대하는 걸까?
붉은 털을 가진 조로아가 쭈뼛거리듯 다가왔다. 발목에 제 목을 천천히 비비고서 A를 올려다보았다. A는 허리를 굽혔다. 조로아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정말 데려가도 되냐는 질문하는 B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A는 조로아를 품에 살살 끌어안고 B를 보았다.
“조로아가 B를 선택한 것 같은걸요.”
정말로 그렇다며 남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B의 뺨이 언뜻 붉어졌다. 조로아를 껴안은 B의 팔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가 몸을 동그랗게 말며 조로아에게 잘 부탁한다고 속삭이는 모습을 A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어울려요, B.”
그러자 B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사랑하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 오! 라일락 中, 고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