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od Bye, World
마침내 눈을 뜬다.
*
느리게 쏟아지는 감각 속에서 A가 첫 숨을 들이켰다.
정수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급류가 휩쓰는 듯한 아찔한 부유감에서 간신히 벗어난다. 흐리던 감각이, 그러니까, 내가 이곳에 실존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의아함이 점차 물성을 가지더니 빚어지고 굳는다. 육신이, 그러나 단단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에 관한 질문은 밀어둔 육체가, 바닥을 디딘다. 그렇게 눈을 뜬다.
사방이 어두웠다.
위아래, 양옆을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이었다. 어두운 밤 누운 침대에서 무심코 들여다보고 만 가구와 가구의 틈 같은 칠흑. 어딘가의 좁은 간격 사이에 낀 것만 같다는 착각이 발치에서 일렁인다. 저린 손을 천천히 주먹 쥐었다가 펼친다.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고,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내는 법을 잊었던 것만 같은 목소리는 성대를 비틀어 냈다.
“칼릭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A는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기억이 끊기기 전, 한도 끝도 없이 캄캄한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A는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여상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날이었다. 빛의 전사와 맞서겠다는 칼릭스의 계획에 손을 얹기로 결심했으므로. 검은 레귤레이터를 등록하는 사람들의 신상을 순서대로 나열했다. 몇 가지의 특이점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묶었으며 필요한 에테르양을 계산했다. 숫제 기계처럼.
A는 자신이 얄팍한 기준으로 나누었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부모와 아이, 형제, 남매, 절친한 친구 같은 이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납작하게 묶어 치웠다. 연인, 동료 모험가, 십년지기 친구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강 분류했다. A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그것들은. 검은 레귤레이터가 그 역할을 다하려면 죽음에의 공포를 증폭해야 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칼릭스는 몇 가지 환각을 만들었다. 그 환각에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분배하는 것, 그것이 A의 역할이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죽음의 공포를 떠올리며,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고 애원하며, 야만신 소환의 거름이 되었을 이들. 칼릭스가 의도했던 대로 돌아갔을까? 그들은 정말로 해낸 걸까?
하지만 그들의 성취가 명명백백하다면, A는 어째서 이 새까만 어둠 속에서 깨어났는가.
A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이 이윽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며 자신이 세웠던 분류의 기준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죽음의 공포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어야 했던 모순을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차원적이고 그 깊이가 얕지 않으면 결코 묶을 수 없었던 오천의 인간 군상을 반추했다.
기어코 묶겠다면 정답은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했다.
레귤레이터가 주던 안락함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는 것을 A는 알았다. 죽음과 맞닿은 공허나 단절은 사백 년 전부터 유구했다. 그들이 사람일 적에도. 칼릭스와 A에게 아직 심장이 있을 때도.
“A.”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A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곳에 칼릭스가 서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언뜻 붉어진 눈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느 때처럼 평온한 낯이 아니었다. 마치 예상치 못한 무언가에 단단히 화라도 난 사람처럼, 그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칼릭스는 서 있었다. A는 다가가지 않았고 칼릭스는 발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 거리를 둔 채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칼릭스였다.
“찾았어.”
“여기가 어디야?”
“틈.”
칼릭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A가 눈을 찌푸리자 더 알 필요는 없어, 하고 칼릭스는 덧붙였다. A는 대답하지 않고서 주위를 느리게 둘러보았다. 칼릭스의 설명은 정확했다. 사람들이 살피지 않는 틈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어두울 리가 없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A는 칼릭스를 보았다. 알 것 같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물었다.
“칼릭스.”
“…….”
“계획은 어떻게 됐어?”
칼릭스의 입가가 뒤틀렸다. 순간적이었다. 고개를 천천히 내저은 칼릭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눈동자 안에서 일렁이는 분노에 A는 입을 닫았다.
“실패했어.”
칼릭스가 낮게 말했다.
“힘을 계측하는 데에 실패한 내 책임이야.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아.”
“이젠 어쩔 셈이야?”
“새로 시작할 거야.”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덤덤히 중얼거렸다.
“그러기 위해서 널 다시 불러온 거야.”
칼릭스가 말했고, A는 멈췄다. 칼릭스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였다. A는 오래도록 칼릭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말을 맺었을 때, 같이 가자며 손을 내밀었을 때, 어둠에 묻히지 않고 은은하게 빛을 내는 칼릭스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칼릭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A는 그 침묵에 힘입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마주했다. 주먹을 질끈 쥐었다. 그리고 다시금 되풀이했다.
“죽음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 칼릭스?”
“너와 내가 증인이야.”
칼릭스가 마침내 말했다. 내민 손을 느리게 거두고서 그가 중얼거렸다.
“산증인이라고. 우리가.”
A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칼릭스의 손을 맞잡고 있지 않은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하고 그는 무심히 생각했다. 어쩌면 칼릭스의 말마따나, 그를 불러오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연산 시스템이라거나, 정보 처리 기관이라거나. 하지만 A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영원인이라는 존재를 설계한 건 칼릭스였다. 오류가 있다면 그만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오류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A.”
칼릭스가 A를 재촉하듯 불렀다.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은 채로 A는 우두커니 발치를 바라보았다. 가슴께에 올린 손에서는 어떠한 진동도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이를 데 없는 술렁임, 몸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는 아찔한 이질감에서 오는 몸 저림은 풀릴 기미가 없다. 심장께를 붙들었던 손을 천천히 들었다. 뜨거워진 눈가를 매만지다가 거기에 고이는 액체를 손으로 훔쳤다.
“왜 울어?”
칼릭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건 물음이라기보단 혼잣말이었다. 울렁이는 시야 너머로 바라본 칼릭스의 낯은 찌푸려진 채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진심으로 알 수 없다는 것처럼, 그래서 두렵기까지 하단 것처럼 얼굴을 찡그린 칼릭스가 거기에 서 있었다. A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차가운 액체와 손끝에 묻은 물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며 생각했다. 사람이라는 것. 심장이라는 것. 그리고 눈물이라는 것이.
얄팍한 기준을 세워 분류했던 그들 계획의 희생자들. 그들도 눈물을 흘렸을까?
그들의 울음은 미지근했을까? A의 것과는 달리?
언젠가 머나먼 옛적, A의 눈물 또한 온기를 지닌 적이 있었을까. 그랬던 순간이 존재하기나 할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난 사백 년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만하자.”
고개를 들지 않았기에 칼릭스의 표정을 헤아릴 수 없었다. 손바닥에서 몽글지는 물방울들을, 그 안에서 흔들리는 제 잔상을 들여다보며 A는 느리게 말했다.
“너는 과학자야, 칼릭스. 세상 불가해한 것들을 설명하는 것이 네 역할이지. 네 옆에서 사백 년을 지내왔기에 알 수 있어. 너는 우수한 사람이야. 네가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어.”
“…….”
“하지만 이건 아니야. 너뿐이 아닐 거야, 칼릭스.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미지라는 건, 풀 수 없는 오류라는 건 분명히 존재해. 애당초 사람은…….”
“아니야.”
“사람은, 사람의 마음은, 설명되도록 설계되지 않았잖아.”
손을 기울였다. 고인 물방울이 경사를 따라 흘러내렸다. 축축한 물기만이 남은 손바닥에서 A는 시선을 뗐다. 마침내 바라보았다. 입술을 깨문 칼릭스가 있었다.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씨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죽음은 극복할 수 있어.”
“극복하지 못해.”
“나는 설명할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완벽했어. 네가 원한다면 지금도……!”
“나는 울고 있지 않아.”
칼릭스가 입을 다물었다. A는 천천히 다가갔다. 손을 뻗어 칼릭스의 것을 잡았다. 눈두덩이에 닿은 손은 차가웠다. 하지만 겹친 손에서 서서히 온기가 번진다. 그야 당연하지, 하고 A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체온이라는 건 산 자의 특권이다. 영원인에게서 느껴지는 온도라고는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영상기가 내뿜는 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인체를 모사해서, 세심하게 인체의 변화를 조율해서, 모방 그 이상으로 거듭난 순간 그들은 사람이 되었다. 심장이 없어도. 온기를 품지 않아도. 마음이 그 모든 걸 대체해 버려서.
A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안다. 한때 의사였으니까.
“사백 년 동안 난 한 번도 운 적 없어.”
“난,”
“우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칼릭스.”
“…….”
“심장 없는 내가 어떻게 눈물을 흘릴 수 있어?”
오래 묵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A의 질문은 조금 다른 형태로 변모하며 칼릭스에게 향했다.
“과열을 막기 위해 분비되는 냉각수를 눈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너는 알아?”
A는 그 순간 있지도 않은 제 심장을 상상했다. 목구멍을 타고 울렁이는 갈증이 조급함이라는 사실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간결한 결론이었다. A는 간절했다.
“육체를 빚는다고 하더라도, 에테르를 모방한다고 하더라도, 기억을 복사해 주입하더라도, 그렇게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고 해도, 사람은 결국 사람이야.”
칼릭스가 맞잡은 손을 뿌리쳤다. A가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이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다.
“마음이야, 칼릭스.”
“…….”
“마음이 있어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야.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그들이 슬프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하는 거야.”
“A,”
“심장이 없는데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게 아니야. 네가, 너의 마음이, 고작 냉각수를 눈물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눈물이 된 거야.”
그 순간 A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분류했던 오천의 사람들을. 오백의 사람이 있다면 오백의 마음이, 오천의 사람이 있다면 오천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제각기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며 동시에 슬프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은 거기서 생겨난다. 단절에 대한 공포는 그렇게 싹튼다. 잃고 싶지 않다는, 행복을 꿈꾸는, 설명할 수 없는 지극한 마음에서부터.
마음이 있는 한 죽음을 탈피할 수는 없었다.
고작 냉각수를 눈물이라고 부르는 무의미한 행위를 버리지 못하는 한, 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뿌리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한. 사람의 탈을 쓰고서 진화를 이루고자 하는 한. A가 손을 뻗었다. 칼릭스의 뺨을 쓸어내리다가 느리게 심장께로 향했다. 아무것도 있지 않을 텅 빈 허무를 감싼 표피를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다가 시선을 든다. 칼릭스를 본다. 진화를 이뤄낸 존재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를 향한 지긋한 응시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
“…….”
“영원히 불가해한 개념들이 있어, 칼릭스.”
사백 년 동안 A는 질문했다. 심장 없는 존재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까닭을. 칼릭스 또한 그랬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의 여정은 실체 없는 홀로그램에 기억을 부여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실체 없는 허무를 사람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을, 그 마음을, A는 알았다. 곁에 있었으니까. 바로 옆에서 사백 년을 지냈으니까.
속절없는 마음으로 A는 바랐다. 검은 레귤레이터를 찬 오천의 사람이 사랑을 믿는 만큼 마음을 믿기를. 마음을 믿는 만큼 죽음을 믿기를. 그리고 칼릭스 또한 그러하기를.
칼릭스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침묵은 길고 지난했다.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은 진심을 묻고 있었고 그랬기에 A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몇 번 입을 고쳐 물었다. 한참이나 달싹이다가 어떠한 말도 뱉지 못한 채 다물었다. 심장 없는 가슴에서 A가 마침내 손을 뗐을 때 칼릭스는 천천히 물러났다.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고서 A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칼릭스가 중얼거렸다. A는 그 대답에 절망하지 않는 자신에게 조금쯤 놀랐다. 그는 좌절하지도, 슬픔에 빠지지도 않았다. 단지 곱씹었다. 자신을 불러왔다던 칼릭스의 말과 실패한 계획. 어느 순간 끊긴 기억과 무심코 떠올리고 말았던 아득한 부유감. 눈을 뜨던 최초의 순간 A를 덮쳤던 급작스러움은 마치 새로 태어난 존재가 질겁하여 마시는 들숨과 닮았고…….
“다시 할 수 있어.”
“…….”
“다시 할 거야. 돕지 않을 거라면,”
칼릭스는 말을 잇지 않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채 A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주먹을 질끈 쥐고서 칼릭스는 천천히 멀어졌다. 때때로 멈춰 섰으나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A는 조용히 제 눈가를 매만졌다. 그리고 제가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며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