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요원님이 이렇게 깊이 들어오실 줄 몰랐습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에 최요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눈앞에 그를 등지고 선 백은파의 백옥 같은 눈동자에 희미한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들은 지금 재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제법 흔한, 이제는 감히 ‘판에 박힌’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한 놀이공원 관련된 재난이었으나 그런 건조한 수식어들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관점에서나 가능한 법이었다. 제아무리 안전하고 대응 방법이 정리되었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한다. 지금이 딱 그랬다.
재난 자체의 등급은 높지 않았다. 근근이 휘말리는 민간인들이 있어 폐쇄해야 하지 않냐는 의논이 막 오가던 참이었다. 이번 구조 요청을 마지막으로 재난을 폐하자는 데에 상부의 의견이 모였고, 현무 1팀 역시 큰 걱정 없이 출동했다. 문제는 진입하고 삼십 분, 혹은 적어도 그렇게 느꼈을 무렵에 일어났다.
구조 요청자가 생각보다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재난관리국에서 파악한 것보다도 먼 곳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지도가 없습니다, 하는 청동 요원을 기억했다. 길을 잃지 않도록 부표를 꽂으며 나아가던 중 구조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옆에는 ‘그것’이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유인하는 영리한 포식자처럼.
까맣고 물컹거리는 것. 도토리묵 같은, 또 어쩌면 호롱불의 잔상 같은 ‘그것’이 울렁일 때마다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위기를 직감한 건 뼛속에 각인된 훈련 덕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조금 더 원초적이고 강렬한, 일차원적인 생존 욕구에 가까웠다.
구조자와 청동 요원을 간신히 탈출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난장판이었지, 응. 살 떨리던 순간을 되짚으며 최요원이 이마를 훑었다. 민간인이 너무 깊이 왔다고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탓에 더욱더 곤욕이었다. 식은땀이 몸에 달라붙은 탓에 희미한 오한이 서린다. 그 모든 사건을 지나, 바로 지금. 현재. 그는 제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백은파를 힐끔 곁눈질했다.
지난번 보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기야, 백은파가 어디 각양각색의 사람이던가. 다른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얀 머리칼만큼이나 일관되게 무심한 사람이다. 얼굴을 가린 부엉이 가면도, 그 안으로 엿보이는 서늘한 눈동자도.
높낮이 없는 목소리와 담담한 얼굴과 같은 진폭의 감정을 가진 것 같은, 백일몽 주식회사의 대리.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를 가진 존재. 무심코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아니, 집중해.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스스로 뇌까리며 그가 잡념을 털어냈다. 읏차, 하고 목을 가볍게 꺾어 푼다. 식은땀과 피로 축축해진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최요원이 ‘그것’을 바라보았다.
“저게 필요해서 온 건가? 백일몽은.”
“요원님은 아닙니까?”
“우리야 사람 구하러 왔지, 저런 거 보러 왔게.”
“구했습니까?”
“청동이랑 같이 나갔어.”
백은파의 새하얀 눈동자가 잠시 최요원을 향했다.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동공 너머에서 잔잔한 물결이 이는 것 같다는 생각은 찰나다. 온정적인 생각을 착각이라고 비웃듯 백은파가 도로 시선을 돌렸다. 염주 끝을 다시 한번 손에 단단히 감아쥔 백은파는 예의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다행이군요.”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
“싸울 수 있으십니까?”
“등을 맡기는 쪽이지, 맡는 쪽은 아니라서.”
“백일몽의 대리와 협력해도 괜찮은 겁니까?”
“역시 그건 좀 곤란하긴 해. 어때, 재관국으로 이직할 생각은?”
“없습니다. 준비하세요.”
“칼같네~.”
작게 웃는 사이 ‘그것’이 몸을 움츠린다. 울렁이는 크기가 아주 미세하게 줄어드는 것 같던 순간. 반동을 이용해 몸을 거칠게 펼치며 ‘그것’이 쏜살같이 쇄도했다.
기다렸다는 듯 최요원이 도약했다. 동시에 하얀 머리칼이 해일처럼 요동친다. 함께, 같은 궤도로, 마치 약속했다는 것처럼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다. 오래된 파트너처럼 합이 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대하는 자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월하다.
제 발을 쫓아오는 물컹거리는 촉수를 피해 가볍게 뒷걸음질 친다. 그러며 살핀다. 약점이 될 만한 곳. 없나? 있나? 당장 작두를 꺼내어 받아치는 것도 분명한 방법이겠으나 상대는 재난이다. 영리해야 한다. 일격에 다스릴 수 없다면 간파할 때까지 몸을 숙이는 것도 방법임을 그는 안다.
쿵! 빠른 속도로 쇄도하던 ‘그것’의 물컹한 몸이 거칠게 바닥을 내리쳤다. 움푹 갈라진 바닥에서부터 번진 금이 발밑을 덮친다. 작게 혀를 찬다. 몸을 날린다. 크레바스처럼 깊고 어두운 금이 직전까지 서 있던 곳을 사납게 가르고 지나간다. 매서운 시선은 놓치지 않는다. 갈라진 벽면에 점성 있는 액체처럼 들러붙은, 혹은 질척이며 묻은 검은 ‘그것’의 파편을.
어쩌면.
“생각이 있습니다.”
시선이 맞닿는다. 최요원은 직감한다. 같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같은 것을 생각한다.
“일격에 갈라야 합니다. 가능합니까?”
“이러니까 꼭 같은 팀 같네. 막 이래.”
“요원님은 태평하시군요. 본받을 만한 태도기는 합니다.”
다시 한번 새까만 ‘그것’이 둘 사이를 송곳처럼 꿰뚫는다. 몸을 틀어 가뿐히 피하면서도 최요원은 무심코 생각했다. 괜찮은 타이밍이었어. 이러면 적어도 얼굴은 못 볼 테니.
최요원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확신한다. 지금 그와 태평함은 상당히 먼 거리에 놓여 있다. 비단 목숨을 위협하는 재난의 이변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구조자가 맞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혹은 자꾸 눈앞에서 물결치는 저 존재가 신경 쓰이는 탓에.
이젠 너무 멀리 와버린 것만 같아서…….
땅에 발을 디딘다. 두 발을 온전히 닿고 선 바로 그 순간. 저 무심한 얼굴을 읽어낼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더라. 백은파의 낯만큼이나 서늘한 의문 또한 찰나다. 눈이 마주친다. 시선이 오간다. 광채가 인다고 착각할 만큼 새하얀 눈동자에 오묘한 빛이 깃든다. 살짝 벌어진 입이 속삭인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절경.
사방으로 뻗친 묵주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몸을 뒤튼다. 괴성을 내지르는 ‘그것’을 향해 질풍처럼 쇄도한다. 슬라임 같은 몸을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린다. 최요원에겐 보인다. 백은파가 몸을 낮춘다. 발을 디딘다. 그리고 짓쳐 달린다. 펼친 손이 날뛰는 묵주 줄을 강하게 그러잡으면. 진을 치듯 뻗어나갔던 것이 손길을 따라 순식간에 ‘그것’을 옭아맨다.
“지금!”
지체할 틈 없이 최요원이 달려 나갔다. 맑게 울리는 방울 소리를 디디고 도약한다. 과도하게 크지도 보잘것없이 작지도 않다.
쏟아진다. 내리친다. 파고든다. 짓이긴다. 조각낸다!
손끝에 닿는 묵직한 감각. 사방으로 튀는 검고 끈적한 파편들. 그 사이에서 백은파가 보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심한 낯, 그러나 아주 희미한 혈색이 도는 뺨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백은파가.
어, 웃는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최요원은 생각했다. 역시 너무 멀리 왔다. 때때로 부표조차 무용지물이 되는 깊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상황 또한 그렇다. 뜻하지 않았지만.
돌아갈 수 없다면 나아갈 뿐이다. 몸을 멈추는 순간 침몰하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선택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러한 종류의 대담함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백은파를 바라보며 최요원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합이 잘 맞는다니까? 이직 생각, 정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