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낼지 궁금하지 않다곤 할 수 없어.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내게는 나의 삶이 있지. 어떤 궁금증은 때때로 도 넘은 간섭이 되기도 하잖아. 그들의 날개를 꺾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너는 이해할까?
*
“영웅님!”
크리스타리움 특유의 상쾌한 밤바람이 뺨을 때리고 지나갔다. 머리 위를 화려하게 수놓는 폭죽 아래에서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용의 공예관에서 몇 번 손을 빌려준 대가로 자리에 초대받은 참이었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눈이 아프도록 화려하게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색색의 빛 아래서 뛰어노는 어린이들 틈바구니에서 그는 반쯤은 공범으로, 또 반쯤은 이방인으로 서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감사 인사와 호기심 어린 질문들에 미약한 피로감을 느낄 때였다. 목소리를 들은 건.
다가온 건 에보니였다. 공예관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 중 하나였다. 부모가 모두 죄식자에게 죽고, 하나뿐인 동생을 등에 업고서 크리스타리움에 다다라 지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늘어놓았던 여자. 자신의 불행이 특출나지도, 유별나지도 않다는 사실을 큰 소요 없이 인정한 심지 굳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빛 에테르에 잠식된 동생을 몇 년 전 잃고 혼자가 된 이후에는 베스릭 아래서 수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베스릭과 그가 아마로를 위한 치료 약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텄다. 그 또한 공예관의 일원으로서 이 모든 일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당신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다가온 에보니가 말했다. 영웅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 없이 웃었다. 카트리스가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거나 뜻하지 않은 일이라거나 같은 잡다한 말을 늘어놓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직감한 탓이었다.
에보니와 영웅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 같은 밤하늘과 점점이 흩뿌려진 별, 그 위를 덧씌우듯 장식하는 불꽃의 향연을 한순간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되뇌는 것처럼. 이제는 드물어진, 그러나 언젠가는 발에 챌 만큼 흔했던 불행을 등에 업은 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영웅은 자신들이 서로 다른 지평을 보고 있음을 조용히 깨달았다. 아마 이곳에 있는 사람 대다수가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그 또한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같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르지도 않았다. 동일성과 배타성의 궤적 어딘가에 그 사람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단 그 존재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을 이루는 이야기도 매한가지다. 분명 영웅을 동경하는 그가 누군가에게는 그 자신이 영웅이듯이.
“수정공은, 잘 지내시나요?”
에보니의 질문에 놀라지 않은 까닭은 대체로 그러했다. 그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영웅은 잠시 고민했다.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고개를 꺾어 크리스탈 타워를 올려다보았다. 타워 최상층 어딘가에서 투명하게 반짝이며 아래를 굽어살피고 있을 ‘수정공’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작게 웃었고, 시선을 돌려 에보니를 바라보았으며, 그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기실 누군가와 수정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크리스타리움 사람 중 수정공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손에 꼽을 텐데도 그랬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어째서 우리가 수정공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한 거겠지요.”
에보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자신의 불행을 열거할 때만큼이나 높낮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점은 명확했다. 눈, 그의 고동색 눈 위로 색색의 불꽃이 마치 이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아끼는 장난감을 더듬는 꼬마애만큼이나 순수한 기쁨을 담은 채로 구부러졌고.
“그립기는 우리도 매한가지예요. 성견의 방으로도 모자라 크리스탈 타워를 통째로 폐쇄한 라이나의 결정이 옳았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매일 같이 그곳에 들러 그분의 어깨를, 옷자락을 매만지는 데에 몰두했을 테니까요.”
짧은 간격을 두고 에보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그 자신이 빛과 어둠의 전사요 영웅이었기에 더더욱.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때때로 나아간다는 건, 과거를 제치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디딘다는 건 끔찍하리만치 괴로운 일이다. 두고 온 것들, 떠나보낸 것들, 사랑하게 된 것들을 내버려두고서 앞으로 걸어 나가라는 말은 가히 폭력적일 정도로 무심하고 냉정하다.
하지만.
“당신들이 우리에게 되찾아준 건 단순한 어둠이 아니에요. 그 어둠에서부터 우리는 다시금 삶을, 기회를, 희망을 얻었어요. 이곳 사람들은, 수정공의 아래서 이 모든 것을 일궈낸 사람들에겐 더더욱 절실히 다가오지요.”
“…….”
“그러니 별수 있겠나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삶을 일궈낼 느슨한 의무를 업게 된 거나 매한가지인데. 그리운 마음을 품고 나아가는 수밖에는.”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고 에보니의 눈은 그보다도 소란스럽게 반짝인다.
그 순간 그는 생각한다. 언젠가 그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 크리스타리움 사람들이 그립지는 않냐는 질문에 너는 웃으며 대답했다. 날개를 꺾고 싶지 않다고. 그 말은 마치 사랑하는 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준비를 마친 보호자의 태도와 엇비슷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수정공께 전해주세요.”
그로부터 등을 돌린 에보니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죽은 잦아들고 있음에도 그의 눈은 여전한 빛을 품고서 어둠을, 광막하고도 영원불멸한 사랑의 증거를 응시한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인 약간의 탄내가 코를 간질이는 순간에. 에보니는 단정하고 재치 있는 말씨로 말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에요.”
구태여 말을 덧붙이는 대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막대 폭죽을 여러 개 샀다.
연락을 받은 그와 상대가 만난 건 라노시아의 안갯빛 주택가였다. 모험가들의 거주구가 있는 그곳을 선택한 까닭은 단순했다. 거기 바다가 예쁘니까. 그들이 서로를 발견한 건 까치놀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새빨간 석양과 닮은 빛의 꼬리를 흔들며 제게 뛰어온 상대는 어딘가 상기된 것도, 불안해하는 것도 같은 묘한 낯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제 앞에 선 상대, 그라하 티아의 뺨 위로 노을이 떨어진다. 파도치는 소리가 멀리, 아주 멀게 느껴진다. 알알이 흩어지는 모래가 발밑에서 몸을 푹신하게 잡아주는 감각에 정신을 집중하며, 그런 식으로라도 의식을 환기하고자 하며, 그가 중얼거린다. 좀 걸을까.
그리하여 그들은 발을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그라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는 근래 다중 세계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느라 제법 바빴다. 구태여 논문이 아니더라도 새벽의 현인은, 그것도 알라그의 계승자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그라하가 들뜬 목소리로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까다롭고 어려웠으며 동시에 미약한 흥미를 자극하는 구석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법 오래 걸었다. 그라하의 색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새까맣게, 언젠가 보았던 최초의 어둠처럼 물들 때가 되어서야 그는 멈췄다. 그라하도 함께 멈췄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그들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또 하나의 밤하늘처럼 울렁이는 바다를, 윤슬처럼 수면에 비치는 무수한 별들을 눈에 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그라하였다.
“일 세계에 다녀온 거지?”
질문이되 의문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명이나 부정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라하는 잠시 너털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꺾어 들었다. 곁눈질한 눈동자엔 어떠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보았다고 확신하게 하는 이채가. 우습게도 그때 든 생각은 단순했다. 그러니까, 이게 그건가. 부모랑 자식은 닮는다던.
“그럴 줄 알았어. 음, 그들에게 무언가를 부탁받은 거라면 미안하지만 사양하고 싶은데.”
그라하가, 그러나 수정공이 말했다. 간격을 두고서 그는 물었다. 어째서?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아. 아, 오해는 하지 마.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들의 안부가 궁금해. 하지만, 음…….”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익히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으므로.
뜸을 들이던 그라하가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을 이었다. 애정을 담은 목소리가 먼 곳에 두고 온 가족 같은 존재들을 향한 애틋함에 젖은 채 잘게 떨렸다.
“나는 그들이 나의 존재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 그런 점에서, 어떤 종류의 인연은 사슬과도 같지. 이전에도 한 적 있는 말이지만. 내 생각은 아직 바뀌지 않았어.”
“…….”
“그 아이들이 나를 잊는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야. 내 존재가 더는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비로소 무슨 부탁이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군.”
그는 놀라지 않는다. 실망하지도 않는다. 이럴 줄 알았다는 건조하고도 덤덤한 중얼거림만이 감상의 전부였다. 그라하 티아, 수정공, 저 다정하고도 유약해 보이는 미코테가 어디까지 엄격해질 수 있는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걸 챙겨온 것이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주머니에서는 포장된 막대 폭죽 세 대가 나왔다. 그라하는 곧장 흥미를 느꼈다. 이건 뭐야, 하고 묻는 목소리에선 직전의 연륜과 늘그막 노인 특유의 달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빈자리를 천진난만한 호기심이 대신한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성냥에 가볍게 불을 붙였다. 그리고 폭죽 끝에 불씨를 옮긴다.
파르라니 주홍빛 불티가 튀었다. 별을 끌어와 붙인 것 같은 모양새로 폭죽이 따닥거리며 타들어 갔다.
첫 번째 막대는 그라하에게 넘어갔다. 두 번째 막대는 그가 쥐었다. 두 모험가는 말없이 모래사장에 앉아 막대를 흔들었다. 순간적인 불씨가 이어지며 하나의 그림처럼 보이는 광경을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끈적한 바닷바람이 뺨을 감쌀 때면 오래되지 않은 어느 순간의 낯익은 탄내가 코끝을 간질였다.
밤과 불꽃, 바람과 탄내. 그리고 부탁과 소망까지.
“그들이 준비한 불꽃놀이를 봤어. 무지하게 화려하더라. 어둠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준비했다던데, 이야,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무서움이 가시겠다 싶더라고.”
“누가 계획했는지 궁금해지는걸.”
“카트리스. 나는 공예관 일을 좀 도와서 초대받은 자리였는데 말이지.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네 생각이 났어.”
희미한 웃음. 그리고 이어지는 미약한 한숨.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그라하의 입가를 바라보며 그는 다시 입을 연다.
“우리가 되찾아준 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고 했어.”
그라하의 눈이 언뜻 커진다. 불꽃이 비친다. 잔상이 아닌 실체 같다. 주홍빛 불티는 네 눈 속 이채처럼 보인다. 꼭 널 닮은 누군가가 그랬듯이.
“그렇기에 자신들에게는 의무가 있다고 했지. 최선을 다해서 삶을 꾸려갈 의무 말이야.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어.”
“…….”
“그들은 이미 나아가고 있어, 그라하 티아. 수정공을 뒤로하고서. 나는 그들만의 시대가 벌써 도래했다고 느껴.”
그리고 그는, 크게 뜬 그라하의 눈이 언뜻 울렁이는 것을 보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반 백 년만 기다려봐, 이제 널 알아볼 사람이 함께 반으로 줄어들지도 몰라?”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꺼진다. 손잡이만을 남기고 불티가 잦아든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잿빛 연기를 내려다보던 그라하가 고개를 든다.
폭죽은 꺼졌지만 불꽃은 여전히 그의 눈에 깃들어 있다.
에보니의, 크리스타리움 사람들의,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눈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빛과 박동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발목을 잡게 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비록 다른 곳에서, 다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같은 울림을 느낀다는 것. 끊어졌으나 이어져 있다는 그 사실. 그들의 마음을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은 끈끈하고도 단단해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도무지 끊기는 법이 없으리라는 것.
그는 확신한다. 보람을 느낀다. 전해졌다. 에보니의 부탁도, 크리스타리움의 마음도. 확실하게 이어졌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언정, 아주 먼 곳이라고 하더라도, 수정공과 크리스타리움의 사람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에게서 천천히 멀어지리라. 그렇게 느리게 가까워질 것이다.
자리를 정돈하고 돌아갈 무렵 그라하가 어색하게 얼굴을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미약한 홍조가 도는 뺨이 보였다.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주홍빛 이채를 품은 눈을 하고서,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라하 티아가 말했다.
“고마워, 영웅.”
대답은 필요치 않았다. 어깨를 으쓱이며 그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