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온 먹구름이 별을 가린 밤이다. 살갗을 어르는 추위에 떨며 A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입김은 하얗게 퍼지더니 곧 안개처럼 흩어졌다.
언덕 중턱에 잠시 멈춰 선 참이었다. 비탈진 길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딘 채로 그는 잠시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인 학교가 있었다. 잰걸음으로 걷는다면 아마 오 분 내외일 것이다. 시린 손을 입으로 후후 불고 나서야 그는 다시 걸음을 뗐다. 약속은 열두 시까지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일 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새해가 코앞이었다. 본래였다면 집에서 귤을 까먹거나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보며 보냈을 테지만, 올해는 달랐다.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에 그는 메시지를 받았다. 집 전화기를 통해서 온 연락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B였다. 그들은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고, 잡담이 잦아들 무렵 B가 물었다. 괜찮으면 학교에서 잠시 보지 않겠냐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냐면 그건 아니었다. 바깥은 우선 추웠고, 비단 추위가 아니더라도 발목 잡는 요소들은 많았다. 이를테면 새해 첫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관념 같은 것들. 다만 A는 고요한 안방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거절해도 괜찮다는 쾌활한 목소리를 향해 대답했다. 시간에 맞춰 가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지금이다. 넉넉하게 여유를 두고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얼어붙은 길 탓에 평소보다 시간이 더욱 오래 걸렸다. 이러다간 늦겠다는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성마른 걸음으로, 그러나 빙판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A가 걸음을 재촉했다.
학교는 적요했다. 운동장에서 그림자 몇몇 개가 울렁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저들의 일로 바빠 보이는 아이들을 지나쳤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 발을 털고 곧장 계단을 올랐다.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침침한 학교의 인기척 없는 한기가 뺨을 할퀼 때마다 그는 종종 몸을 떨었다. 왜 하필 학교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하는 물음은 속으로 삼켰다. 학교 옥상보다 지대가 높은 곳은 얼마 없기는 했다. 마지막 계단참에 오른 A의 앞에 굳게 닫힌 옥상 출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자마자 잠시나마 잊었던 추위가 엄습했다. 맹렬한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든 탓에 A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으으, 하는 앓는 소리가 잇새에서 새어 나왔다. 바람이 잦아든 후에야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옥상엔 간밤에 내려 채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난방을 위한 굴뚝은 연기 하나 없이 얌전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꺾어 든 A가 한층 가까워진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별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셨네요.”
“아.”
익숙한 목소리에 A가 시선을 돌렸다. 눈이 시리고 사위가 어두운 탓에 처음에는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그제야 윤곽이 잡혔다. 굴뚝 아래, 작은 처마에 기대어 앉아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으나 시침과 분침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므로, 하는 수 없이 A는 물었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혹시 늦었나요?”
“아니요! 딱 알맞게 오셨습니다.”
B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손을 휘휘 내젓는 그를 향해 A가 걸음을 재촉했다. A가 가까워지자 B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마 너머 둘둘 감겨 있던 전등을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곧 빛이 번졌다. 날카로운 바람에 백열등이 위태롭게 달그락거렸다. 전구에서 일어난 하얀 빛이 B의 옆모습을 적셨다. 손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A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처마 안쪽은 좀 따뜻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B가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미약한 웃음을 터트리며 A가 걸음을 옮겼다. 말마따나 처마 안쪽에서는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몇 시간 전까지 제 몫을 다하던 굴뚝이 채 식지 않은 듯했다. 벌겋게 언 손을 살살 비비며 A는 농담하듯 말을 던졌다.
“역시 해결사로군요. 추위를 해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깊이 눌러쓴 후드 너머로 짙은 웃음이 졌다. 잠시 주머니를 뒤적인 B는 곧 무언가를 내밀었다. 검은 색종이였다. 무엇을 위한 종이인지는 구태여 물을 필요 없었다. 되레 A는 이 종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약한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B는 태연하게 말했다.
“같이 접을래요? 방법은 한번 알면 간단하니까요!”
내민 손끝이 언뜻 붉었다. 냉기 어린 바람에 종이가 위태롭게 펄럭거렸다. 색종이가 날아가기 직전 A가 손을 뻗었다. 얇고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B가 종이 한 장을 더 꺼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는 좋은 스승이었다. 종이학을 접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는데도 B의 야무진 손끝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A가 머뭇거리고 있는 부분에서는 몇 번이고 시늉을 보여주며 그를 이끌었다. 때문에 어설픈 결과물을 바라보며 A는 조금쯤 부끄러워졌다. 손끝이 언 탓에 섬세한 작업에는 영 죽을 쒔다. 하지만 B의 손도 똑같이 벌겠는데. 같은 방법으로 접은 종이학인데도 A의 것은 반쯤 허리가 굽어 있었고 그 탓에 누군가가 엉성하게 구겼다가 편 것 같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결과네요!”
“음,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요.”
A가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B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하는 명랑한 목소리에는 즐거운 확신이 들어가 있었다.
“종이학을 접는 건 까다로운 일이 맞아요. 첫 시도에, 그것도 언 손으로 이 정도라면 아주 훌륭한 것이 맞습니다.”
“그대의 학은 제 것보다 훨씬 멋집니다.”
“저는 익숙하니까요. 이걸로 벌써 칠백 개에 육박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B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A는 무심코 생각했다. 학과 관련된 농담을 익혀둘 걸 그랬다. 그랬더라면 지금, 즐거워 보이는 B를 한층 더 기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잠시 머리를 쥐어짜 내던 A는 실속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떠오르지 않는 농담을 건네는 대신, 그는 입안에 맴돌던 궁금증을 내뱉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B.”
“음?”
“나를 왜 불렀습니까?”
B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걸 말 안 했던가요,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A는 지그시 가슴께를 눌러보았다. 겨울, 밤, 새해, 흐린 하늘. 달아오른 뺨이 꼭 추위 때문은 아니리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조금 더 수그렸다. 구겨진 학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는 때였다. 마침 바람이 불었다. 마침내 B가 말했다.
“새해니까요. 곧 있으면.”
“아…….”
이어지는 말이 있을까 잠시 침묵을 고수했지만 그뿐이었다. 뾰족한 학의 날개 가장자리를 꾹 누르면서 A가 작게 날숨을 쉬었다. B가 새 종이를 꺼내 능숙하게 접는 모습이 시야 끄트머리에 걸렸다. 바삐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며 그는 입을 지그시 다물었다. 손끝에 걸린 종이학으로부터 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의문이라는 건.
기대했던 걸까? 하지만, 무엇을?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면, 지금 그를 사로잡은 이 느닷없는 실망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몸을 조금 더 웅크리면서 A가 고개를 들었다. 처마에 반쯤 가린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없었고, 여전히 사위는 어두컴컴했으며, 시계의 초침은 아직도 열두 시에 다다르지 않았다.
그 순간 A는 새삼스럽게 올해를 떠올렸다. 일상적으로 죽음을 곱씹던 것이 바로 작년이었다. 떠올리기조차 괴로운, 미지의 존재와 맞서 싸웠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나날들이었다. 종이접기에 열중한 B를 힐끔 곁눈질하며 A는 문득 궁금해했다. B는 지난 일 년간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슨 심정으로 칠백에 가까운 학을 모았을까? 그에 비하면 자신은?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하게 끈적거리는 씁쓸함에 A가 팔을 쓸어내렸다. 갑작스러운 울렁임에 당혹스러워할 틈도 없었다. 당장 어깨를 나란히 한 존재가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감각 같은 것이 혀뿌리에 걸렸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하늘이 흔들렸다. 나아가는 동안, 하고 A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B가 칠백에 가까운 사람을 도우며 나아가는 동안. 하야고로 A는 무엇이 바뀐 걸까. 거울을 들여다보지 못하던 그날, 그때로부터.
아득한 부유감이었다. 초콜릿을 부러뜨리듯이 똑,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과 유리되는 듯한. 흰 날숨이 맥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사위는 칙칙했고 녹지 않은 눈마저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미약한 어지럼은 끈질겼고 A는 힘껏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불현듯 깨어났다.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다 접었네요.”
B였다. 퍼뜩 정신을 차린 A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무언가가 그의 손에 닿았다. 자신이 무엇을 내미는지 거의 모르는 채로 A가 물체를 내밀었다. 그것이 종이학을 담는 병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아주 틀린 선택도 아닌 듯했으므로 A는 기다렸다. B가 병 안에 종이학을 집어넣고 고맙다고 인사하기를.
하지만 뜻밖에도 B는 그러지 않았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그가 진하게 웃었다.
“병은 괜찮습니다! 이건 넣으려고 만든 게 아니라서요.”
“그럼…….”
B는 다시 한번 웃었다. A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깔끔하게 접힌 종이학이 가까워졌다. A의 손을 지나더니 그의 심장께에 정확히 닿았다. 두꺼운 겉옷 너머에 맞닿은 종이학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부작거렸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도 전에 B가 입을 열었다.
“A 겁니다.”
“어,”
“올 한 해 수고가 많았으니까요. 소소한 선물입니다.”
열이 오르는 느낌은 신기하리만치 생생했다. 거칠게 박동하는 심장에 손을 올리려다가 흠칫 멈췄다. 학은 여전히 그의 가슴께에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가 없어 A는 잠시 입술을 길게 물었다. 반응하지 않는 A를 재촉하듯 학을 조금 더 높이 든 B는 곧 웃었다.
“새해에도 A를 희게 덮어주겠습니다!”
선언이었다. 명백했다.
A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제 가슴께에 맞닿아 있던 학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제 것과는 달랐다. 깔끔한 솜씨였다. 구김이 없었고 형태가 명확했다. 그리고 하얬다. 눈만큼 하얀빛으로 산란하는 학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그러며 곱씹었다. 다짐을 뛰어넘은 어떠한 명징함이라는 것. 눈이 시릴 만큼 희게 빛나는…….
“오, A.”
“네?”
“눈이 옵니다!”
A가 고개를 들었다. 하얀 눈송이가 바닥에 느릿느릿 떨어졌다. 별빛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A는 그제야 불현듯 깨달았다. 먹구름이었다. 별을 가렸던 먹구름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손아귀에 감겨든 학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리고 B. 별을 대신하는 눈송이가 함빡 쌓인 정각의 옥상.
별다른 도리가 없어 A는 B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곧바로 얽혔다.
소리를 머금는 눈발에 사위가 적요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냉기 어린 바람이 할퀸 서로의 뺨이 서서히 벌게지는 모습을 지그시 눈에 담았다. 열꽃처럼 번진 빨강이 온 얼굴로 번지는 광경에 약속한 듯 숨을 삼키면서. 그러다가 꽉 막혔던 망울진 숨을 파, 하고 터트린 바로 그 순간에.
“고맙습니다.”
A가 말했고 B가 웃었다.
붉어진 귀는 아마도 추위 때문일 것이라고, A는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