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B-999.
황혼이 지는 시간대에 들판에 나간 사냥개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 마을이 있다.
무사히 개를 데려온다면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주며, 돌아올 집을 선물한다.
자신의 소속을 명확히 기억할 것. 돌아올 곳을 잊지 않을 것.
*
“개, 개를요?”
A은 저도 모르게 J3을 바라보았다. 그가 현재 이 상황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웃음을 지은 노인은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탁하네. 요즘 늑대가 기승이어서 말이지. 사냥개를 일찍이 들여올 수가 없어.”
“하지만…….”
A은 마른침을 삼켰다. 시선은 자연히 J3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J3은 무미건조하게, 약간은 지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허락이었다.
“그, 그렇다면야…….”
이거 정말로 이래도 되나. 울렁거리는 시야 탓에 속이 어지러웠다. 허락받자마자 제안을 수락한 머리와는 달리 속은 어지러웠다. 옷자락을 질끈 붙든 A을 내려다보던 J3은 말없이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그리고 단둘이 남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하자는 대로 해요…….”
“그, 그렇지만.”
“괜히 안 한다고 했다가 더 곤란해져……. 적당히 어울려주다가 마무리하는 게, 응……. 그게 깔끔해.”
J3이 저렇게 말한다면 A의 결론은 단순했다. 선배의 결정을 믿는 것. 크게 삼킨 숨과 잘게 떨리는 손으로 목덜미를 더듬거릴 때였다. J3이 흘러가듯 중얼거렸다. 작고 나지막하게.
“얼른 끝내고 돌아가요…….”
가빠지는 심박을 느끼며 A은 고개를 끄덕였다. J3이 맞았다. 그들은 이 일을 마친 후 돌아가야 했다. 현실 세계로.
경비반장 J3과 그의 후임인 A이 느닷없이 사냥개 수색꾼이 된 건 어처구니없는 연유에서였다. 첫째, 다른 부서에서 주의 관찰 중이던 B급 괴담 하나가 뜬금없이 폭주했다. 그러자 담당 부서는 이대로 가다간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판단 아래, 아무튼 어둠을 제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뒤처리는 당연하게도 경비반 몫이었다. 솔직히 저것은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고 경비반 요즘 너무 해이해진 것 아니냐고 빤질거리는 누군가의 도발이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단지 설상가상 B급 괴담에 안정적으로 진입해 제압할 만한 인원 중 태반이 각기 일로 바빴으므로 유일하게 손이 비던 A와 경비반장이 직접 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진입한 괴담에서 느닷없이 자신들과 어울려주기를 요구해 왔다는 이야기였다.
아직도 턱끝에서 일렁이는 미약한 긴장감에 A이 슬그머니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폭주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로 가기 싫었다. 어둠이 폭주한다는 건 즉 통제 불능이 된다는 말이었다. 애당초 통제 가능한 어둠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리고 그게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담당 부서에서 이건 더는 제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괴담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A을 질색하게 했다.
폭주한 어둠은 규칙을 어그러트리고 강제로 뒤틀며 진입한 대상자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제이 씨가 있으니까 그나마 안심이지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A은 제 머리통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목소리, 이를테면 언제까지 그렇게 소심하게 웅크려 있을 거냐는 일갈과 동시에 한 걸음 앞서가는 J3의 뒷모습을 보고 화들짝 몸을 떨었다.
“따라와요…….”
“네, 네!”
무럭무럭 자라나는 상념을 애써 뒤로 한 채 A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마을은 생각보다 작았다. 외곽에 다다랐을 무렵 그들은 한 여자와 마주쳤다. 크지 않은 목장이었다. 양과 소 대여섯 마리가 들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마도 그 주인일 밀짚모자를 쓴 여자는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J3을 바라보며 눈살을 미묘하게 찌푸린 여자는 곧, 마치 흥미로운 일을 발견한 사람처럼 얼굴을 A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네, 네……. 바, 방금 왔어요. 새로…….”
“아아, 새로 온 사냥개 담당이구나! 어서 와, 어서 와. 마을이 조금 부산스럽지?”
아니요, 하고 대답하며 A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마른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들의 뺨을 간지럽혔다. 희미한 풀 내음이 코를 찔렀기에 A은 더더욱 떨리기 시작한 손을 등 뒤로 감춰야만 했다.
대신 대화해달라고 할까. 저 지나치게 친화력이 좋은 목장지기와 말을 한 마디씩 나눌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A은 반사적으로 J3을 힐끔거렸으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안 돼, 언제까지고 의지할 수는 없어, 그래, 언제까지 애새끼처럼 징징거릴 거야? 뒤통수를 후리는 것 같은 날카로운 머릿속 외침에 A은 답답한 외투를 질끈 쥐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었을 때 목장지기는 어느샌가 코앞이었다. 흠칫 몸을 물리려는 순간 목장지기는 호탕하게 웃었고, 곧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A의 머리에 가볍게 얹어주며 물었다.
“겁이 많아서 어떡해. 늑대는 본 적 있니?”
“아, 아니요…….”
“이런. 조심해야겠네.”
“네?”
“이장이 말을 안 했구나! 요새는 해가 빨리 지거든. 그래서 조심해야 해.”
목장지기의 말은 귓바퀴를 타고 굴러떨어져 고막을 한참이고 울려댔다. 해가, 해가 빨리 지는……. A은 불현듯 치솟는 욕지기를 질끈 되삼켰다. 침착하게 숨을 골랐고, 고개를 털었다. 그리고 제 머리 위에 얹힌 밀짚모자 챙을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왜, 왜요?”
“황혼이 들이치기 시작하는 시간대에는 말이야, 평야에 있으면 저 너머에 있는 그림자가 늑대인지 개인지 알 수가 없게 되거든. 심지어는 사람인지조차 헷갈린단 말이야.”
A은 J3이 목장지기의 말에 손끝을 움찔거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먼 지평선의 구릉과 그 너머로 가라앉기 시작한 태양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 목장지기를 바라보았고, 입술을 살짝 떨었으며, 곧 두려움이 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면, 그러면요…….
“헷갈리면, 어, 어떡해요?”
“외쳐야지. 여기에 늑대가 있어요, 늑대가 개를 잡아먹었어요, 뭐 그런 말들이라도. 그래야 주민들이 도와주러 갈 테니까. 우리 마을에서 주민들은 서로를 돕고 지키며 살거든. 여기가 우리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서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목장지기가 대뜸 눈을 빛내며 물었다.
“돌아갈 곳은 있니?”
엉뚱한 질문이었다. A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있어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왜, 말이……. 차오르는 당혹감과 급격히 몰려드는 갑갑함에 A이 목을 더듬거릴 때였다. 누군가 어깨를 부드럽게 밀었다. 들어 올린 시야에 J3이 담겼다. 챙에 가려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입술이 움직였다. 가자, 하고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는 미약한 재촉의 기미가 섞여 있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디로, 하고 더듬거리자 J3이 잠시 침묵했다. 대신 입을 연 건 목장지기였다.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지은.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는.
“아이참, 내 정신 좀 봐. 슬슬 사냥개들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네. 자, 활약할 시간대야.”
“아아…….”
“슬슬 가야 해……. 더 늦으면, 음…….”
J3은 어색하게 뒷말을 삼켰다. A은 구태여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목장지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서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에도 돌아보지 않고 느린 발을 디뎠다. 마을 테두리를 장식한 울타리를 넘어 마을을 벗어났다. 그러자 길이 나타났다.
먼 곳에서 양 울음이 바람에 뒤섞여 메아리쳤다. 웃자란 풀이 발목을 간질였고 상쾌한 바람이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가라앉는 태양이 내뿜는 정열적인 색채에 청명한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어둡게 지는 그림자가 앞서가는 J3의 뒷모습을 차근히 적셨고 어째서인지 그들은 멀리 떨어진 것 같았으며 A은 목장지기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황혼이 지는 시간대엔 개도 늑대도 하물며 사람마저도 알 수가 없게 되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친 짙은 그림자가…….
검붉은 까치놀을 향해서.
어느 순간 A은 멈췄다. 그 순간 그는 분명히 들었다. 또 깨달았다. 이것은 그의 일이었다. 그림자를 구분하는 것. 개라면 그를 데려오고, 늑대라면……. 알려야 해,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지금 늑대가, 개가, 아니 사람인가, 어쩌면 그 전부가, 아니,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여기는 당신의 마을, 당신이 지내는 곳, 당신이 돌아올 곳이니까,
“늑대가…….”
“…….”
“여, 여기 늑대가……!”
해치워야 해!
누군가가 부추겼다, 달아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바로 그거라고, 늑대를, 감히 개와 양을 노리는 늑대를, 개를, 사람을, 아니, 그것이 설령 무엇이든 간에, 잡아! 잡으라고! 외치는 소리, 울리는 고함, 젖어 드는 뺨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손, 주먹, 엎어지는 무언가, 정의할 수 없는 사람, 늑대, 개, 아니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이건 아니라고, 그렇게 계속해, 잡아먹어, 양을 위협하는 늑대를, 저 끔찍한 늑대를, 사람을, 정신 차려!
“……저기.”
“헉!”
번쩍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더는 들판이 아니었다. 주홍빛 노을 대신 희붐한 백열등이 빛을 뿜어냈다. A은 더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고, 그 대신 멀쩡한 경비복을 입고 있었으며, 바닥에 닿은 무릎을 간질이는 냉기는 소름 끼치도록 생생했다. 몸을 떨며 A은 내려다보았다. 질끈 꼬나쥔 제 주먹과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채 입술이 찢어진 J3을 번갈아 보았다. 눈을 깜빡였다. 잘게 호흡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힘껏 비웃는 목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쓰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 그, 저…….”
“음……. 괜찮아요?”
“네, 네?”
“미안……. 판단을 잘못했네. 방심했어…….”
J3이 팔을 들어 터진 입술을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여전히 무미건조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나 슬슬 등 시려서. 차라리 벼락을 맞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A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수면 위를 자꾸만 둥둥 떠다녔다. 더듬거리며 제 목깃을 말아쥐고서 A이 몸을 움츠렸다. 그러니까, 지키겠다고, 돌아갈 곳을, 양을, 개를, 늑대를……. 그래서 제이 씨를…….
“진정……. 나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제가…….”
“아니, 뭐……. 괜찮아요. 오히려 주민들 이목 끌어줘서 편했으니까…….”
바짝 마르는 입안을 애써 훑으며 A이 숨을 들이켰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어떻게 해도 가라앉으려는 기미가 안 보였다. 기억은 통째로 날아간 건지 저변에 묻힌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명징한 사실은.
괴담에 영향을 받아 주먹질했다. 그것도 제이 씨한테.
뒤통수를 긁적이는 J3을 바라보며 A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을 잡았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습은 뗐으니까, 조력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심장이 울렁거리고 머리는 어지럽고 욕지기가 솟는다, 몸이 통째로 파형처럼 우그러지는 것만 같은 기이한 감각에 휩싸이는 순간, 그 찰나에.
“가요…….”
제 앞에 내민 손이 있다.
A은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소란한 침묵이 잦아들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J3이 보였다. 예의 건조한 낯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며, 마치 정말로 A이 손을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딱 한 걸음 앞선 곳에 서 있는 경비반장이. 입이 말랐다. 몸이 굳었다. 내민 손과 J3을 번갈아 바라보던 A의 다문 잇새를 비집고 한 줄기 질문이 흘러나왔다.
“어, 어디로…….”
“경비실?”
대답은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일말의 지체도 없다. 어떤 말에는 질서를 다잡게 하는 힘이 있듯이 J3의 반문에 혼란하던 머릿속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A 또한 속수무책으로 생각하고 만다. 돌아가야 한다고.
이것은 귀향일까?
결심이 남기는 잔향은 길고 머뭇거림은 짧았다. A은 손을 뻗었다. 내민 손을 맞잡고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장서는 경비반장을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경비실로.
돌아가야 할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