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젠가 죽는다. 다른 이들보다 훨씬 가파르고 성마른 속도로. 그것이 너의 주치의로서 내가 내린 첫 판단이었다.
커다란 병실과 커다란 침대에 기대어 앉은 작은 체구 덕분에 너는 더더욱 앳되어 보였다. 침대 바로 옆에 난 큼지막한 창문, 거기서 떨어지는 빛살이 네 투명한 뺨을 비출 때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는, 그러며 삶을 갈망하는 눈은 잿빛이었고 그랬기에 나는 그 순간 속절없이 궁금해졌다. 어째서 나는 너의 주치의가 되었는가.
기실 대답을 도출해 내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어명이었으므로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그보다 훨씬 내밀하고 궁극적인, 이를테면 내가 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당신은 삼 년 안에 죽는다고 말하지 않은 까닭이 꼭 나의 충실한 직업의식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떠한 예감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하는 충동성과 비슷했다.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라는 선임의 친절한 호의에 응하고자 입을 열었을 때 시선은 어긋났다. 너는 고개를 돌리고 창밖으로 눈길을 피했으며 백성들이 뛰어다니는 알렉산드리아 거리를 무심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곧 죽는다는 소리는 안 해도 돼. 알고 있으니까.”
분명 그건 허점이라면 허점일 곳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행위였다. 단지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헤집어놓은 곳이 제 살을 파먹은 상처라는 게 문제겠지. 할 말을 잃은 선임이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시도하는 와중에도 너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태도와 신랄한 말투, 자해와 다를 바 없는 평가가 너의 특이점 중 하나일지 불현듯 궁금해진 건 그때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선임에게 말했다. 너의 주치의가 되겠다고. 선임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그건 인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일인데, 뭐 네가 좋다면 좋은 거겠지, 하고 얼버무렸다.
이후로 나는 주기적으로 너를 찾았다. 나의 일정은 국왕 폐하께서 지정해 주신 특정 날짜와 특정 시간대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그 외의 시간은 어떻게 쓰든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 만남 이후 꾸준히 이어지던 대면 치료가 여덟 번째를 맞았을 때, 너는 분명 서류상의 모든 절차가 끝났음에도 이전처럼 곧장 자리를 비우지 않는 나를 향해 미미한 의문을 드러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진 않았으나 너의 목소리에서 의문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안 끝났어?”
“아니. 끝났어.”
“그럼 가지 않고.”
글쎄, 하고 어깨를 으쓱이면서 너를 바라보았을 때 너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다지 순한 인상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어쩌면 이것이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순간적인 후회에 사로잡혔으나 곧 떨쳐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의자를 끌고 와 네 곁에 앉자 너는 귀찮다는 것처럼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굴하지 않고 말을 붙였다. 용기라기에는 지나치게 무모했으므로 그건 아마 순수한 궁금증이 만들어낸 대책 없음에 가까울 것이다.
“칼릭스.”
“…….”
“치료에 그다지 협조적으로 굴지는 않네.”
그러자 너는 그제야 눈알을 굴려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간 침묵 어린 시선이 오갔다. 너는 곧 나에게서 눈을 떼고는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도로 감았다. 그리고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그대로 입을 지그시 다물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세기의 천재 일렉트로프 과학자 칼릭스가 그 어린 나이에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아니, 정정하겠다. 상상하기에 아주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뇌광 대전이 발발하고 이 세계가 번개 에테르에 휩싸인 이후로 이러한 종류의 질병은 순식간에 번졌다. 특정한 잠복기나 예고가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마비 현상. 나를 포함한 의사들은 이 마비 병을 고칠 만한 방도를 연구 중이었지만 이렇다고 할 방법은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죽을병이라는 것이다. 한 번 걸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눈을 감은 칼릭스는 지쳐 보였다.
삶을 향한 열망으로 타오르던 눈동자가 눈꺼풀에 덮이자 너는 죽음만큼이나 창백해졌다.
천천히 굳어가는 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곱씹었다. 내가 너의 주치의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국왕 폐하의 어명 때문만은 아니다. 분명한 마음의 영역,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심장이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의 곁에 머무르라고. 이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요 얄팍한 선민의식이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직업병조차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질문해야만 했다. 무엇이지. 대체 무엇이지. 내가 너에게서 눈 뗄 수 없는 까닭, 심장이 이끄는 길을 차마 뿌리칠 수 없는 이유는.
그때 번개가 쳤다.
뇌광이 남긴 흉터 같은 빛살이 순간적으로 너의 입매에 흔적을 남겼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
고민은 짧았고 결정은 빨랐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 정도의 동기여도 상관이 없었다. 궁금증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했고 그것은 우연찮게 너의 웃음이 되었다. 그뿐이었다.
이후로도 나는 종종 너를 찾았다. 가끔보다는 잦게, 그러나 매일같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빈도로. 처음에는 몰이해를 앞세워 매섭게 날을 세우던 너도 차츰 누그러지는 모습이었다. 너는 도통 웃지 않았으나 기묘한 치료와 대면이 반년쯤 이어졌을 때 왕실 주치의 중에선 나를 가장 편안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때때로 자리를 빌려 앉아 차를 마시거나 다과를 나누어 먹었고, 왕녀 스펜과 셋이서 술래잡기 따위의 유치한 놀이를 했다. 너는 대체로 흥미가 없어 보였으나 딱 하나, 일렉트로프 연구에 관한 토론 주제를 탁상에 꺼내 들었을 때 무료하지만 열정적인 낯으로 참전하고는 했다.
그맘때쯤 너는 드물게 내게도 네가 진행 중인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일렉트로프와 지대한 관련이 있는 줄 알았으나 이어질수록 내가 아는 이론과 네가 펼치는 지론이 실은 공존할 수 없지 않으냐는 의구심만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단지 나는 그것을 너에게 묻는 대신 속으로만 의문스러워했는데 연구 이론과 방법을 나열하는 너의 눈동자 속에서 영구한 불길 같은 열의가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순간적으로 빛나고 사라지는 번개와는 도통 달라서 꺼지는 법이 없이 영원히 불탈 것만 같았다.
너와 지내는 것은 즐거웠다. 보기 드물지만 종종 뺨을 붉혀가며 언성을 살짝 높인다거나 보잘것없는 대결에서 경쟁심을 내비치는 의외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점차 너와 나를 객체로 부르기보다는 우리라고 통틀어 칭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내가 문을 열고 병실에 고개를 내밀 때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미하게 굳어 있던 네 낯이 희미하게 풀리는 것을 나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언젠가 우리는 함께 왕실 정원을 걸었다. 너의 재활을 겸해서였다. 비록 환경 에테르에 쉽게 그리고 크게 영향받는 네 몸이지만 언제까지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너를 부축했고 너는 내게 기대어 섰다. 발을 맞추어 우리는 느릿느릿 걸었다. 어깨에 맞닿은 손이나 목덜미에 닿는 까슬한 머리칼, 습기 어린 축축한 뺨. 그날 내 손끝에서 지글거리던 간지러움이 번개 에테르 때문이었을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조금 걷다가 너는 멈춰 섰다. 조금 쉬겠다고 말했으므로 나 또한 너에게 맞추었다. 너는 고개를 꺾어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뇌운이 몰려올 거야.”
“괜찮아. 이번에도 금방 지나갈 테니까.”
그러자 너는 오랫동안 침묵했고,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나는 애당초의 목적, 그러니까 어째서 너의 주치의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에 관한 내용은 거의 잊고 있었다. 그때 너는 미세하지만 마비 병에도 차도를 보이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종류의 고민은 이제야 완전히 잡념이 되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난스럽던 뇌운이 사라지지 않던 아흐레째 밤이었다. 한층 짙어진 번개 에테르에 영향받은 너는 이틀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었다. 눈 한번 깜빡이지 못했고 목울대를 움직이는 것조차 벅차 했다. 번개와 구름이 걷히고 마침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했을 때 너는 돌연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했다. 나는 너의 이탈을 느닷없이 통보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국왕 폐하께 알현해 너의 퇴원을 허가한 사유를 여쭈었지만 폐하는 대답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너를 찾았다. 너는 네가 설립한 기관 프리저베이션에 있었다. 요즘 칼릭스님이 조금 예민해지셔서요, 언행을 주의하세요, 하는 연구원의 조언이 끝나고서야 네 연구실 문이 열렸다.
“왜 왔어?”
침침한 빛과 냉기 어린 좁은 연구실. 그 안에서 너는 나를 등지고 서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단 한 줌도 서로를 향하지 않았다. 네 앞에는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산술식과 처음 보는 마법진 같은 것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을 온전히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대신 나는 나의 본질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퇴원했다면서. 전해 들었어.”
“정확히는 자유로운 이동 허가야. 따지고 보면 퇴원과는 다르지.”
“그 차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짧은 뜸을 들이고서 나는 말했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하면 몸이 빠르게 쇠약해질 거야. 치료는 분명 효과가 있었어, 칼릭스.”
“…….”
“돌아와.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러자 너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 그 망막에 맺힌 영구한 불길, 꺼지지 않는 화마를 바라보며 나는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열망에서 번진 들불이 너를 태울 것만 같아 무심코 두려워졌다는 말은, 그 이후로도 너에게 하지 않았다.
높낮이 없는 어투로 너는 말했다. 아니라고.
“돌아갈 수 없어. 나야말로 대비하는 중이니까.”
“어떻게?”
“돌이킬 수 있도록. 이것도 저것도.”
“죽음조차?”
“죽음마저도.”
희뿌연 빛이 너의 뺨을 적셨다. 침묵 어린 공간 안에서 나는 해묵은 의문을 떠올렸다. 너의 곁에 머무르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때 직감했다. 완전하고도 완벽한 파괴를 앞두고서야 마침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나의 까닭 또한 마찬가지다. 계시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했다. 이제야 너를 알 것 같았다.
너의 고독은 나선형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 너는 같은 공포를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다. 그렇게 윤회하듯 거듭되는 고통 속에서 너는 운명 혹은 필연이라고 불리는 절대적 섭리에 대항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너는 지금 죽음마저 정복해 보이겠다고 내게 선언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갈팡질팡 망설이는 나를 향해 너는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주치의와 환자였기에 존재했던 모든 가능성은 이제부터 전부 폐쇄될 것이다. 다름 아닌 네가 너의 손으로 직접 그 모든 막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대신 너는 새로운 손, 새로운 관계, 새로운 제안을 내게 내밀 테지.
예상대로 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예의 무심한 표정으로 제안을 건넸다. 프리저베이션에 합류해, B. 너는 유능해. 어차피 멸망할 왕국의 주치의로 남기에는 아까운 실력이야. 그러니 나를 위해, 세계를 위해 그 능력을 아낌없이 써달라고…….
그게 널 두렵게 해?
내민 손과 내려다보는 시선.
입안에서 뭉그러지는 건조한 대답을 혀로 핥으며 생각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