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야 작별에 가까운 건 항상 나였으니까. 그것이 눈 감은 너를 보며 내가 떠올린 최초의 상념이다.
리빙 메모리 계획을 실현에 옮기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때 나는 영혼 자원 시스템을 조금 더 견고하게, 몇백 년이고 견딜 수 있을 만큼 보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식사와 수면이 필요하지 않은 영원인의 몸은 내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편리함을 제공했고, 그 편안함에 기대어 며칠이나 밤을 지새우면서 나는 고통과 육체가 주는 인간적인 한계에 관해 근근이 고민하며 연구에 매진했다. 구축 전 거듭했던 안전성 실험과 시뮬레이션으로 증명된 당시의 리빙 메모리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서.
따라서 가장 먼저 이변을 감지한 건 너였다. 리빙 메모리가 구축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너는 내 연구실을 박차고 들어오며 말했다. 영원인들이 오류를 일으키고 있어, 라고.
검증 끝에 나는 유감스럽게도 네가 옳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정말로 오류였다. 알 수 없는 까닭, 알 수 없는 여파로 멀쩡히 존재하던 영원인들이 서버 안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그들을 다시 리빙 메모리에 불러와도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역류했다. 자아를 구축하는 기억이 사라지자 껍데기만 남은 육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구심점을 잃은 육체는 영혼 자원을 낭비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스템에 의하여 부서져 사라졌다. 이것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다.
“어떻게 할까?”
열세 번째 영원인의 기억이 역류하고 그를 구성하는 육체가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너는 그렇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땐 되레 내가 묻고 싶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몇십 번을 돌렸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와 비슷한 오류, 이를테면 수식이 잘못되어 육체와 기억이 동화하지 못한다거나 레귤레이터에서 받아온 기억이 깨지는 바람에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일들은 종종 있었지만 그것들은 진작 수정했다. 역류한 영원인들의 로그를 뜯어보아도 이상한 지점은 없었다. 그들은 충분히 교류했고, 즐거워했고, 생전 만나지 못했던, 헤어졌던,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존재들과 재회하며 기쁨을 누렸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맥없이 쓰러지는 것이다. 기억이 역류했고 육체가 부서졌다. 몇 번을 거듭해도 똑같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단지 나는 그걸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계획을 실행한 마당에 이미 만든 세계를 부수고 새로 구축하자는 제안은 너와 스펜에게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게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나에게도 일종의 패배로 받아들여졌다. 나의 설계는 완벽했다. 이것은 나의 자만이 아니다. 실제로 그러했다. 영원인의 설계도를 뜯어볼 때마다 나는 결함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존재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완벽했다면 영원인들은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너 또한 마찬가지지. 린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물론, 그래, 우리의 친분은 오래되었으므로 그 사이 몇 번인가 네가 앓는 모습을 보기야 했다. 하지만 그건 가벼운 감기나 몸살에 불과했고 너는 이튿날, 길면 사흗날 안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영원인이 된 이후에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영원인에게 병이라는 결함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너는 실제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기 전 우리가 남긴 대화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칼릭스.”
“잠시만.”
“이것 좀 봐.”
곧장 돌아보지 않은 나를 타박하듯 들리는 둔탁한 소음. 직후 울려 퍼지던 홀로그램의 맹랑한 음성, 소유자와 연결이 끊겼습니다.
너는 그때 내게 뭘 보여주려고 했던 걸까?
네가 쓰러지기 전에 나는 내가 난잡하게 켜두었던 홀로그램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네가 쓰러진 직후에는 너를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네가 쓰러지고 시간이 지났을 무렵, 다시 연구실에 돌아왔을 때 네 자리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도로 전원을 켜자 창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있었으므로 나는 아직도 네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겹겹이 떠오른 창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내가 앓을 때 너도 이것과 비슷한 몰이해를 느꼈을까.
이런 식의 단절은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지금에야 생각하지만, 나는 아마도 그때 나를 엄습했던 감각이 생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공포와 닮아 있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종류의 사념은 사람을 내면 깊숙한 곳까지 우악스럽게 끌고 가므로 지그시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너를 철제 침대 위에 올려두고서 먼저 모든 우선순위를 뒤엎었다. 네가 가장 최상단이었다.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첫째로 너는 프리저베이션이 이런 허망한 식으로 잃기에는 지나치게 유능한 존재였으며, 둘째로 눈앞에서 목격하고 흔적이 남은 역류를 뜯어 살핀다면 갈피 잃은 오류 해석에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육체가 부패, 아니, 단어가 옳지 않군. 육체가 소멸하기 전에 너와 연결된 터미널을 조작해 잠시간 너를 필연적인 분해의 굴레에서 끄집어냈다. 겉으로 보이는 육체를 유지해 줄 영혼 자원을 위한 튜브까지 연결하고 나자 너는 어딘가 익숙하게 보였다. 이 기묘한 기시감의 정체는 연구에 매진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던 이튿날 깨달았다.
너는 영락없이 병자처럼 누워 있었다. 발치에 죽음을 얹고서 벼랑 끝에 앉은 사람 특유의 위태로움이 너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배어 나왔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겪은 체험의 일종일 뿐이다. 너는 조금도 죽음에 가깝지 않았어. 왜냐하면 린다, 너는 영원인이었으니까. 그리고 영원인에게 육체란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며 죽음이란 허상이므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태평히 고심할 마음도 없어. 나에게는 더욱 중요한 과제가 도래해 있었다. 너도 알잖아. 그래, 오류 말이다.
너를 구성하는 일렉트로프와 기억, 영혼 자원을 하나하나 분석한 이후 나는 조금쯤 실마리를 얻었다. 다른 연구원들이 협력하지 않겠냐고 몇 번인가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너를 뜯어 살피는 데에 나 이외의 존재가 필요할 성싶지는 않았다. 나 혼자였기에 연구 진척은 다소간 더뎠지만, 그래도 나는 일주일 후 확실한 성과를 낸다. 그래, 네가 깨어난 것 말이야.
육체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의식은 회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공이었지. 의식과 육체를 다시 연결하고 봉합하기만 한다면 오류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눈을 뜨자마자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 속에서 무엇인가가 한번, 마치 커다란 파도처럼 크게 울렁였다. 분명 몸을 가눌 수 없을 텐데도 네 손끝은 순간적으로 움찔댔다. 너는 나를 향해서, 마치 할 말이 있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가, 한참을 그걸 반복하다가,
“오류야?”
끝내는 그렇게 물었다.
그때 나는 네가 깨어나며 치솟던 불안정한 수치와 변화를 기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너를 휘감은 튜브, 거기서 제공되는 영혼 자원이나 너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일렉트로프들을 순식간에 조정하는 건 아주 까다로운 일이었으니까. 잠든 너와 달리 깨어난 너는 시시각각 변화할 준비가 끝난 존재이므로 그 변화 하나하나에 맞추어 수치를 조정해 주어야 했다. 혹여나 네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는 수치를 조율하는 행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초당 자원량을 조금 내리고, 감각 수치를 조금 낮추고.
“지금은 해결했어. 육체와 연결만 끝내면 돼.”
그러자 너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기계음과 일렉트로프가 내는 미세한 소음, 서로의 숨소리가 잠시간 공간을 메웠다. 짙푸른 잔광이 우리 위로 쏟아질 때쯤에 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간호해 줘.”
“하고 있어.”
그러자 이때 넌 문장으로써 나를 멈추게 했다.
“……네 손으로 직접.”
무슨 뜻이었을까, 그건.
아니, 아니야. 네게 질문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대답을 듣고 싶지도 않고. 어떤 질문은 공백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다는 걸 알아. 나는 단지, 그래, 나는 단지…….
……해묵은 질문을 떠올렸다. 고통과 육체가 주는 인간적인 한계에 관해서. 그리고 영원인에 관해서.
오해하지는 마. 나는 영원인을 발명한 데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를 바라보면서, 손으로 직접 간호해달라고 묻는 너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하릴없이 떠올렸다. 내가 아직 사람일 적. 네가 나를 돌보던 시절. 우리가 함께 정원에 산책하러 나간 적이 있었지.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하늘에서 불길한 뇌우를 직감했다. 내가 불안해하자 너는 괜찮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괜찮지 않았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바로 그때 느꼈던 단절과 지금에야 되짚게 된 물음이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실없이 느꼈던 것 같다.
들어 봐, 린다. 나는 영원인을 구축하며 인간의 외피만을 참고했다. 그들의 외관을 모사할 뿐인 우리에겐 뼈와 피와 살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연약한 심장 대신 딱딱하고 견고한 코어만이 우리를 지탱하고 그것은 내부에서 파괴될 수 없는 기억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육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상이란 거야.
그런데 너는 왜 내 손길을 바랐을까.
설계에 삼십육 점 오 도의 온기가 남은 이유는 또 뭐고?
더욱 알 수 없는 지점은, 너의 요구에 내가 응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육체의 불멸성에 관한 의문에 휩싸인 채로.
우리는 분명 육신을 벗고 진화한 한계에서 도망친 자들일진대. 접촉으로 대표되는 물리적인 간호란 허상의 육체에 덧씌워진 우리에겐 불필요할 텐데도. 손과 발, 눈물과 심장, 미지근한 온기, 그 접촉이 자아내는 희끄무레한 안심과 평온, 우리가 멀리 두고 온 그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런 비효율의 극치가…….
그러나 다음 순간 너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을 모사한 너의 거짓된 눈이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조율을 포기했다. 너의 상태에 맞추어 가쁘게 조정하던 화면에서 손을 거두고 의자를 끌며 너에게 다가갔다. 최적의 상태에서 비껴 나가게 된 네 숨이 조금 가빠졌고, 또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이건 너의 선택이었으므로 너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았을 뿐. 마치 기다리듯이. 갈구하듯이.
나는 손을 뻗어 과열되기 시작한 너의 이마 위에 올려놓았다. 후끈거리는 네 육체에 냉각수가 삐질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건 마치 열감 있는 사람이 흘리는 식은땀과 닮아 있었다. 혼곤해진 눈으로, 또 어쩌면 그것을 모방한 눈으로, 너는 천천히 내 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침묵하기를 잠깐, 이어 감기는 눈.
“괜찮아.”
나지막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내게 안녕을 속삭이던 매 순간 너도 이런 마음이었나.
……이야기는 대충 거기서 한 단락이 끝난다. 한 번 전원이 꺼졌다가 깨어난 너는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실은 오류를 맞은 영원인들 간의 공통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쓰러지기 직전 생전 친밀하던 존재와 재회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야 나는 나의 패착을 깨달았다. 영원인들은 지나치게 빈틈없이 설계된 나머지, 영영 만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존재와 재회하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지난 기억에서 톺아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기억 속에 존재했던 건 완벽한 단절이었으므로 결괏값을 도출하지 못하고 과부하 후 오류를 일으켰다는 흐름이었다.
영원인들의 설계를 조금 느슨하게 조정하자 이 모든 오류는 간단하게 사라졌다. 너를 포함한 영원인들은 다시 멀쩡하게 기능했고, 설령 이전 삶에서 이별했던 존재와 재회하더라도 역류를 일으키는 일이 없어졌다.
이제 의문만이 남았다. 영구히 남을 패배처럼.
너는 무엇을 보고 오류를 일으켰을까. 내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그 어지럽던 창의 무엇이 너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고자 하게 했고. 삼십육 점 오 도의 온기를 남긴 이유는? 불필요한 손길을 원했던 까닭은?
이후 너는 한 번도 그날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네가 침묵했으므로 나 또한 묻지 않았다. 암암리에 이뤄진 합의를 따라 이 의문은 결국 나만의 것이 되었다. 그다지 슬프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단지.
어떤 질문들은 지나치게 까다롭고 그 의미가 광막하여 확고한 결론까지 영원으로도 부족할 것 같다고, 무심코 생각할 뿐.